1화(7,266자)

겨울 손님

파도가 닿는 곳까지 · 진해솔

십일월 말 이진리에서 제일 먼저 들리는 것은 바람이다.

파도가 아니다. 파도는 그다음이다. 바람이 먼저 오고, 바람이 방파제에 부딪히고, 그 뒤에 파도가 온다. 순서가 그렇다. 삼십삼 년을 여기서 산 사람도 있고 십 년을 떠났다 온 사람도 있는데, 순서는 안 바뀐다.

배소랑은 게스트하우스 현관에서 분필을 들고 서 있었다.

칠판에 그날의 물때를 적는다. 만조 오전 열한 시 사십 분, 간조 오후 다섯 시 오십 분. 적어 놓으면 손님이 본다. 문제는 십일월 말에 손님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적어야지.”

소랑은 혼잣말을 했다.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언제 생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보일러가 고장 난 건 아침에 알았다.

정확히는 새벽 다섯 시에 알았다. 발이 시려서 깼고, 깨서 보니 방바닥이 차가웠다. 기름은 있었다. 순환펌프가 죽은 것 같았다. 읍내 설비 아저씨한테 전화했더니 오늘은 못 온다고 했다.

“내일 갈게.”

“오늘 손님 와요.”

“손님?”

“네.”

“이 철에?”

“……네.”

“그럼 내일 가야지.”

전화가 끊겼다. 아저씨는 삼 년째 이런 식이고 소랑은 삼 년째 익숙해지지 않는다.

예약은 이틀 전에 들어왔다.

한 명. 십일월 이십칠일부터. 퇴실일 칸이 비어 있었다. 소랑이 문자를 보냈다.

**퇴실일이 안 적혀 있어요.**

답이 왔다.

**봄까지요.**

소랑은 그 문자를 세 번 읽었다.

**봄이 몇 월인가요?**

**모르겠어요.**

이런 손님을 받아야 하나 십 분쯤 고민했다. 고민하는 동안 통장 잔액을 봤고, 고민이 끝났다.

버스는 오후 세 시에 온다. 하루에 네 번 오는 버스 중 세 번째다.

소랑은 정류장까지 걸어 나갔다. 걸어 나가면서 머리를 두 번 고쳐 묶었다. 왜 고쳐 묶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은 하나였다.

키가 소랑보다 조금 컸다.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고, 목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았다. 십일월 말 바닷가에서 목에 아무것도 안 두르는 건 여기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짐이 두 개였다. 캐리어 하나, 그리고 딱딱한 케이스 하나.

“차은결 씨?”

“네.”

“배소랑입니다. 물때 주인이요.”

“……물때요?”

“게스트하우스 이름이요.”

“아.”

“물이 드나드는 시간이요. 물때.”

“네.”

“…….”

“…….”

소랑은 삼 초쯤 기다렸다. 보통 여기서 사람들은 뭐라고 한다. 이름 예쁘네요, 라든지, 여기 원래 이렇게 추워요, 라든지.

차은결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짐 들어드릴게요.”

“괜찮아요.”

“그 케이스 무거워 보이는데.”

“이건 제가 들게요.”

“왜요, 안에 뭐 들었는데요.”

“…….”

“시체요?”

은결이 소랑을 봤다.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은결의 눈이 좀 커졌다.

“……아니요.”

“농담이에요.”

“네.”

“웃으셔도 돼요.”

“……네.”

안 웃었다.

소랑은 캐리어를 끌고 앞장서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 봄까지 있겠다고 했지.

넉 달이다.

넉 달을 이 속도로.

게스트하우스는 정류장에서 칠 분 거리다. 언덕을 하나 넘으면 바다가 한 번에 나온다. 여기 처음 오는 사람들은 그 지점에서 다들 멈춘다.

은결도 멈췄다.

“……어.”

“왜요.”

“여기.”

“네.”

“소리가.”

소랑이 돌아봤다.

은결은 바다를 안 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소리가 뭐요.”

“……왼쪽이 더 큰데요.”

소랑이 왼쪽을 봤다. 방파제가 있었다. 파도가 방파제 안쪽으로 들어와서 콘크리트에 부딪히고 있었다.

“거긴 안쪽이라 소리가 갇혀요.”

“갇혀요?”

“나갈 데가 없으니까 계속 돌아요.”

은결이 눈을 떴다.

“그거 어떻게 아세요?”

“여기서 살았으니까요.”

“계속요?”

“……중간에 십 년 없었고요.”

은결은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소랑은 그게 고마웠고, 동시에 조금 서운했다. 두 가지가 동시에 되는 게 이상했다.

방은 이 층 끝 방이었다.

“여기가 제일 조용해요.”

“네.”

“그리고 제일 추워요.”

“……네?”

“보일러가 오늘 고장 났어요.”

은결이 소랑을 봤다.

“고쳐 주시는 거죠?”

“내일 아저씨 와요.”

“오늘은요?”

“오늘은.”

소랑이 벽장을 열었다. 전기장판을 꺼냈다.

“이게 있어요.”

“…….”

“그리고 이불 세 채요.”

“…….”

“그리고 제가 미안해서 저녁 해 드릴게요.”

은결이 잠깐 서 있다가 코트를 벗었다.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여기 밤에 영하 가요.”

“바닷가인데요?”

“바닷가라서요. 바람이.”

“…….”

“여기는 온도가 아니라 바람이에요.”

저녁은 여섯 시에 먹었다.

주방 겸 거실이었다. 난로가 하나 있었고 그 앞에 낮은 상이 있었다. 소랑이 만든 건 김치찌개와 계란말이였다. 은결은 밥을 반쯤 먹고 젓가락을 놓았다.

“맛없어요?”

“아니요.”

“그럼 왜요.”

“원래 조금 먹어요.”

“그럼 살이 안 찌겠네.”

“……네.”

“부럽다.”

소랑이 계란말이를 하나 더 집었다.

“저는 여기 오고 육 킬로 쪘어요.”

“…….”

“겨울에 할 게 없어서 먹어요.”

은결이 소랑을 봤다.

“여기서 뭐 하세요? 겨울에.”

“어…….”

소랑은 젓가락을 놓고 손가락을 폈다.

“일단 물때 적고요.”

“네.”

“보일러 고장 나고요.”

“…….”

“보일러 고쳐지고요.”

“네.”

“또 고장 나고요.”

은결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소랑은 그걸 봤다. 봤고,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요?”

“그리고 뭐, 텔레비전 보고. 근데 여기 채널이 열두 개밖에 안 나와요.”

“열두 개면 많은 거 아니에요?”

“여덟 개가 홈쇼핑이에요.”

이번엔 웃었다.

소리는 안 났다. 그냥 얼굴만 웃었는데, 소랑은 그 얼굴이 아까 정류장에서 본 얼굴이랑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차은결 씨.”

“네.”

“그 케이스 안에 뭐예요, 진짜.”

은결이 잠깐 망설였다.

“……녹음기요.”

“녹음기?”

“네.”

“무슨 일 하세요?”

“음악 해요.”

“오, 가수?”

“아니요.”

“작곡?”

“……비슷한 거요.”

“비슷한 게 뭔데요.”

은결이 밥그릇을 봤다.

“다큐멘터리 음악이요.”

“와.”

“…….”

“진짜요?”

“네.”

“그럼 제가 본 것도 있을 수 있겠네요.”

“……글쎄요.”

소랑은 더 물어보려다 말았다. 은결의 어깨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사람이 어떤 얘기를 그만하고 싶으면 어깨가 먼저 안다.

“밥 더 드릴까요?”

“아니요.”

“그럼 술 드릴까요?”

은결이 고개를 들었다.

“……있어요?”

“여기 게스트하우스예요. 술이 없으면 뭘로 버텨요.”

소주 한 병을 반씩 나눠 마셨다.

난로가 타는 소리가 났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그 두 소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다.

“조용하다.”

은결이 말했다.

“여기 원래 조용해요.”

“아니요.”

“네?”

“조용한 게 아니라, 다른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소랑이 은결을 봤다.

“그게 뭐가 달라요.”

“달라요.”

은결이 잔을 내려놓았다.

“조용하다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고, 지금은 되게 많이 들려요.”

“뭐가요.”

“난로, 바람, 파도, 저 위에서 뭐 삐걱거리는 거, 냉장고.”

“……냉장고요?”

“네. 저거 소리 큰데요.”

소랑이 냉장고를 봤다.

“저거 십오 년 됐어요.”

“그러니까요.”

“…….”

“죄송해요.”

“아니에요.”

소랑은 잔을 채웠다.

“그거 좀 신기하다.”

“뭐가요.”

“나는 저 소리 안 들려요. 삼 년 살았는데.”

“…….”

“계속 들리는 건 안 들리게 되나 봐요.”

은결이 소랑을 봤다.

한참 봤다. 소랑은 그 시선을 받으면서 잔을 만지작거렸다.

“……왜요.”

“아니에요.”

“말해요.”

“지금 그거 되게 좋은 말이었어요.”

소랑이 웃었다.

“저 원래 좋은 말 잘해요.”

“…….”

“술 마시면요.”

밤 열한 시에 은결이 방으로 올라갔다.

소랑은 설거지를 하면서 창밖을 봤다. 이 층 끝 방에 불이 켜졌다.

십 분쯤 뒤에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소랑은 손을 멈췄다.

이 추위에 창문을?

밖으로 나가 봤다. 마당에서 올려다보니 이 층 창이 열려 있었고, 그 창밖으로 팔이 하나 나와 있었다.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녹음기였다. 털이 복슬복슬한 게 씌워져 있었다.

은결은 그걸 밖으로 내민 채 가만히 있었다.

오 분쯤.

소랑은 마당에서 그걸 올려다보고 있었다. 목도리도 안 하고 나와서 목이 시렸는데 안 들어갔다.

십 분쯤 됐을 때 은결이 아래를 봤다.

눈이 마주쳤다.

“…….”

“…….”

“뭐 해요?”

소랑이 물었다.

은결이 대답했다.

“바람 녹음해요.”

“바람을요?”

“네.”

“바람은 매일 부는데요.”

은결이 잠깐 말이 없었다.

“오늘 바람은 오늘밖에 없어요.”

소랑은 마당에 서서 그 말을 들었다.

들으면서, 삼 년 동안 아무한테도 못 한 말이 목까지 올라오는 걸 느꼈다.

**나는 여기 돌아온 게 도망이었어요.**

올라온 것을 그대로 삼켰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추워요. 창문 닫아요.”

“네.”

“감기 걸리면 제가 미안해요.”

“네.”

창문이 닫혔다.

소랑은 마당에서 조금 더 서 있었다. 방파제 쪽에서 바람이 왔다. 그 바람은 오늘밖에 없는 바람이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설비 아저씨는 다음 날 열한 시에 왔다.

순환펌프가 아니라 온도 조절기였다. 삼만 원짜리 부품이었고 십오 분 만에 끝났다.

“이걸 왜 어제 안 오셨어요?”

“어제는 어제 일이 있었지.”

“무슨 일이요?”

“낚시.”

소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가 가고 나서 방바닥이 따뜻해졌다. 소랑은 이 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다.

“보일러 됐어요.”

문이 열렸다.

은결은 자다 깬 얼굴이었다. 머리가 한쪽으로 눌려 있었고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네.”

“아침 드셨어요?”

“아니요.”

“내려오세요.”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여기 근처에 밥집이 없어요.”

“…….”

“진짜 없어요. 십오 분 걸어가야 있고, 그것도 열두 시에 열어요.”

은결이 잠깐 생각하는 얼굴이 됐다.

“……그럼 열두 시에 갈게요.”

“걸어서요?”

“네.”

“오늘 바람 십사 미터예요.”

“네?”

“초속 십사 미터요.”

“그게 얼마나 센 건데요.”

소랑이 팔짱을 꼈다.

“나가 보시면 알아요.”

은결은 나가 봤다.

이 분 만에 돌아왔다.

“……밥 주세요.”

“네.”

소랑은 웃음을 참으면서 부엌으로 갔다. 참으려고 했는데 계단 중간에서 실패했다.

“왜 웃어요.”

“안 웃었는데요.”

“웃었는데요.”

“아니에요.”

그날 오후에 두 사람은 방파제에 나갔다.

소랑이 먼저 제안했다. 정확히는, 은결이 “여기서 소리 좋은 데가 어디예요” 하고 물었고 소랑이 “방파제요” 하고 대답했고, 대답하고 나서 자기가 왜 따라 나가고 있는지 몰랐다.

방파제는 삼백 미터쯤 됐다. 끝에 등대가 있었다. 흰색이고 낡았고,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저거 안 켜져요?”

“켜져요. 불은 켜져요.”

“불은요?”

“소리를 안 내요.”

은결이 소랑을 봤다.

“소리요?”

“무적이요.”

“무적.”

“안개 낄 때 부웅— 하는 거요.”

“그거 언제 껐어요?”

“삼 년 됐어요.”

“왜요.”

“GPS 있으니까 필요 없대요.”

은결은 등대를 봤다. 오래 봤다.

“……아쉽네요.”

“왜요.”

“그거 소리 좋은데.”

“들어 보셨어요?”

“어릴 때 한 번요.”

“어디서요?”

“기억이 안 나네요.”

바람이 세게 왔다. 소랑의 머리가 다 헝클어졌다. 은결의 코트 자락이 뒤로 넘어갔다.

은결이 케이스를 열었다. 녹음기를 꺼내서 헤드폰을 꼈다.

그리고 소랑에게 다른 헤드폰을 내밀었다.

“……저요?”

“네.”

“왜요.”

“들어 보세요.”

소랑이 헤드폰을 썼다.

세상이 갑자기 커졌다.

파도가 방파제 안쪽에서 도는 소리, 콘크리트에 물이 부딪히고 흩어지는 소리, 바람이 등대 난간을 스치는 소리, 멀리서 배 엔진 소리, 그리고 아주 작게 새소리.

소랑이 알던 소리가 아니었다. 소랑이 삼십삼 년 동안 안 듣고 살았던 소리였다.

“……이게 여기예요?”

“네.”

“여기 소리가 이래요?”

“원래 이래요.”

“나는 왜 안 들렸지.”

“계속 들리는 건 안 들리게 된다면서요.”

소랑이 은결을 봤다.

은결은 바다를 보고 있었다. 헤드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못 들을 텐데, 그 얼굴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소랑은 헤드폰을 낀 채로 그 옆얼굴을 봤다.

십 초쯤 봤을 것이다.

은결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다 헤드폰을 끼고 있어서 아무 말도 안 들렸다.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있었고, 귀 안에서는 파도가 돌고 있었다.

소랑이 먼저 헤드폰을 벗었다.

“……추워요.”

“네.”

“들어가요.”

“네.”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방파제 폭이 좁아서 어깨가 두 번쯤 부딪혔다.

부딪힐 때마다 소랑은 반걸음 옆으로 갔고, 바람 때문에 다시 돌아왔다.

“배소랑 씨.”

“네.”

“여기 소리 나는 거 또 뭐 있어요?”

소랑이 걸으면서 생각했다.

“음…… 김 발 걷는 소리요.”

“그게 뭐예요?”

“김 양식이요. 겨울에 해요. 말순 할머니가 하시는데.”

“소리가 어떤데요.”

“설명 못 해요.”

“그럼 보여 주세요.”

소랑이 멈췄다.

“……보여 달라고요?”

“네.”

“왜요.”

은결이 케이스를 고쳐 들었다.

“녹음하려고요.”

“그거 팔 거예요?”

“아니요.”

“그럼 왜요.”

은결이 잠깐 대답을 안 했다.

“……그냥요.”

“그냥은 없죠.”

“…….”

“말 안 하실 거예요?”

은결이 걸음을 다시 뗐다.

“이 년 동안 곡을 못 썼어요.”

소랑이 멈췄다.

“…….”

“그래서 왔어요.”

“…….”

“소리를 못 듣겠어서요.”

“지금 듣고 계시잖아요.”

“여기 와서 처음 들었어요.”

바람이 한 번 더 왔다.

소랑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이럴 때 보통은 농담을 한다. 삼 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이번에는 농담이 안 나왔다.

“……할머니한테 물어볼게요.”

“네.”

“내일 새벽에 나가세요. 다섯 시요.”

“네.”

“추워요.”

“네.”

“진짜 추워요.”

은결이 소랑을 봤다.

“같이 가 주실 거예요?”

소랑은 대답하기 전에 삼 초쯤 걸렸다.

“……가야죠. 손님인데.”

그날 밤 소랑은 현관 칠판을 지웠다.

새로 적었다. 만조 오전 열두 시 이십 분, 간조 오후 여섯 시 삼십 분.

적고 나서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내일 새벽 다섯 시 출발.**

적어 놓고 한참 봤다. 손님한테 남기는 말을 이 칠판에 적어 본 게 처음이었다.

지울까 하다가 그냥 뒀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겨울 손님 · 파도가 닿는 곳까지 · 나오늘 AI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