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762자)

마지막이라는 글자는 작게

바닷가 게스트하우스의 마지막 손님 · 진해솔

모래미에 마지막으로 남은 숙소의 이름은 「⁠잠자리⁠」였다⁠. 할머니가 지은 이름이다⁠. 날아다니는 잠자리냐 사람이 눕는 잠자리냐고 묻는 손님에게 할머니는 이때그때 다르게 대답했고⁠, 나는 이 집을 물려받고 두 해째 되던 늦가을까지 정답을 듣지 못했다⁠.

같은 해 십일월⁠, 예약 알림이 울린 건 점심 설거지를 하던 때였다⁠. 젖은 손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더니 화면에 한 줄이 떠 있었다⁠. 일 인⁠, 바다 쪽 방⁠, 입실은 내일⁠, 퇴실 미정⁠.

나는 퇴실 미정이라는 네 글자를 세 번 읽었다⁠. 철거 날짜가 정해진 집에 퇴실 날짜를 정하지 않은 손님이 온다니⁠, 둘 중 하나는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다⁠.

“⁠칠봉이 오빠⁠, 손님 와요⁠.⁠”

전화를 받은 육칠봉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더니 아무 말 없이 끊었다⁠. 이십 분 뒤 오토바이 뒤에 둘둘 만 현수막을 싣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칠봉은 쉰둘이고⁠, 모래미 청년회장이고⁠, 모래미에 남은 유일한 청년이다⁠. 청년회 회칙에는 회장 아래 총무와 서기를 두게 되어 있는데⁠, 이 셋을 전부 칠봉 혼자 맡고 있었다⁠.

“⁠펼쳐 봐라⁠. 내가 밤새 썼다⁠.⁠”

현수막은 마당 끝에서 끝까지 닿았다⁠. 「⁠모래미 마지막 손님 대환영⁠」 붓으로 쓴 글씨였는데⁠, 「⁠마지막⁠」 세 글자가 나머지보다 두 배는 컸다⁠.

“⁠오빠⁠, 이거 손님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마지막이니까 귀하게 모신다는 생각을 하겠지⁠.⁠”

“⁠여기서 죽어서 나간다는 생각을 하겠죠⁠.⁠”

칠봉은 현수막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마지막⁠」 위에 테이프를 붙이고 이 위에 매직으로 「⁠귀하신⁠」이라고 썼다⁠. 테이프가 바닷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밑에 깔린 「⁠마지막⁠」이 들썩들썩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는 이걸 그대로 대문에 걸었다⁠.

*

모래미는 남해 바닷가의 서른 집짜리 마을이었다⁠. 내가 어릴 때 서른 집이었고⁠, 같은 해 가을에는 열한 집이 남아 있었다⁠. 비어 나간 집의 창마다 빨간 스프레이로 동그라미가 하나씩 그려져 있었다⁠. 이 동그라미가 철거 대상이라는 표시라는 걸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신 다들 이걸 「⁠빨간 도장⁠」이라고 불렀다⁠.

잠자리는 마을 맨 끝⁠, 방파제가 시작되는 자리에 있었다⁠. 할머니 말분이 마흔에 지은 집이다⁠. 방이 넷⁠, 마루 하나⁠, 부엌 하나⁠, 그리고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끝방 하나⁠. 끝방은 창을 열면 손을 뻗어 파도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만질 수는 없었다⁠. 만조 때 물이 축대 아래까지 차오르면 파도가 축대에 부딪쳐 부서지는 소리가 방바닥을 타고 등까지 올라왔다⁠. 할머니는 이 방에 제일 못 자는 손님을 넣었다⁠. 두 해 전 겨울⁠, 할머니가 마루에서 넘어져 읍내 요양원으로 간 뒤로 이 방을 정하는 건 내 일이 되었다⁠.

이튿날 오후 세 시⁠, 군내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나와 칠봉은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칠봉은 리어카를 끌고 나와 있었다⁠. 짐이 많을 거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린 여자는 등에 배낭 하나⁠, 손에 검은 가방 하나를 들고 있었다⁠. 키가 크고⁠,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었고⁠, 서울에서 입던 그대로인 얇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칠봉이 리어카 손잡이를 내려놓고 달려가 가방을 받으려 하자 여자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여자는 버스가 떠나는 쪽을 보지 않고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버스 엔진 소리가 모퉁이 너머로 멀어지는 동안 여자는 눈을 감고 서 있었다⁠. 엔진 소리가 다 빠지자 이 자리를 파도가 채웠다⁠. 들어오는 소리⁠, 자갈이 끌려 나가는 소리⁠, 그리고 이 사이 아주 짧은 빈 소리⁠.

여자가 눈을 떴다⁠.

“⁠여기는 파도가 자갈을 끌고 나가네요⁠.⁠”

“⁠네⁠, 모래미인데 모래가 없어요⁠. 이름이 사기예요⁠.⁠”

여자가 처음으로 웃었다⁠. 입꼬리 한쪽만 올라가는 웃음이었다⁠. 이 사람은 한서율이라고 했고⁠, 서른이라고 했고⁠, 소리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다⁠. 검은 가방이 녹음기 가방이었다⁠. 칠봉은 이 가방을 들겠다고 두 번 더 손을 내밀었다가 두 번 다 거절당했고⁠, 결국 빈 리어카에 배낭만 싣고 앞장섰다⁠. 배낭 하나 실은 리어카가 자갈길에서 요란하게 덜컹거렸다⁠. 서율이 이 소리를 듣다가 녹음기를 꺼낼까 말까 하는 손짓을 했다⁠.

대문에 걸린 현수막 앞에서 서율이 멈췄다⁠. 바람이 불었고⁠, 테이프가 들렸고⁠, 「⁠마지막⁠」이 고개를 내밀었다⁠.

“⁠저 마지막이에요⁠?⁠”

“⁠귀하신이에요⁠.⁠”

칠봉이 재빨리 테이프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

진만규가 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 뒤였다⁠.

검은 차가 대문 앞에 섰고⁠, 남자가 내렸다⁠. 쉰 남짓⁠, 회색 양복⁠, 반짝이는 구두⁠. 구두가 마당 자갈에 박힐 때마다 진만규는 발끝을 한 번씩 털었다⁠. 뒤따라 내린 젊은 여자가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남자는 대문 현수막을 올려다보더니 혼자 소리 없이 웃었다⁠.

“⁠곽미르 씨죠⁠. 해안 리조트 시행사 이사 진만규입니다⁠. 전화로 몇 번 인사드렸지요⁠.⁠”

전화로 몇 번이 아니라 열네 번이었다⁠. 나는 이 번호를 「⁠받지 말 것⁠」으로 저장해 두었다⁠.

“⁠용건 말씀하세요⁠. 손님 계세요⁠.⁠”

“⁠용건은 짧습니다⁠. 협의 기간이 지난주로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건 군청이 하는 절차고⁠, 그건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음 달 말이면 집행이 들어올 거예요⁠. 그 전에 서명하시면 감정가에 삼 할을 더 얹어 드리겠다는 게 회사 뜻입니다⁠. 이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고요⁠.⁠”

이 사람은 「⁠마지막⁠」을 말하면서 현수막 쪽을 흘끗 보았다⁠. 칠봉이 마루 끝에서 빗자루를 들고 일어섰다⁠. 쓸 데도 없는 마당을 쓸기 시작했는데⁠, 비질이 점점 진만규의 구두 쪽으로 다가갔다⁠.

“⁠군청 절차면 군청이 오겠죠⁠. 이사님이 오실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오고 싶어서 왔습니다⁠.⁠”

진만규는 내 허락 없이 마루로 올라섰다⁠. 신을 벗지 않고 마루 끝에 걸터앉듯 한 발만 올렸는데⁠, 이 발이 정확히 세 번째 널을 밟았다⁠. 널이 울었다⁠. 끼익⁠, 하고 늙은 개가 하품하는 소리⁠.

“⁠아직도 우네⁠.⁠”

이 사람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못 들은 척하지 못했다⁠. 세 번째 널이 운다는 건 이 집에서 잠을 자 본 사람만 알았다⁠. 낮에는 아무도 이 널을 밟지 않는다⁠. 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더듬더듬 마루를 건너는 사람만 이 널을 밟고⁠, 밟는 순간 집 안 사람 전부가 깨는 걸 겪고 나서야 다음부터 이 널을 건너뛴다⁠.

“⁠이 집에서 주무신 적 있어요⁠?⁠”

“⁠오래전에요⁠.⁠”

“⁠그럼 아시겠네요⁠. 이 집은 사람 재우는 집이에요⁠. 부수는 데 쓸 집이 아니에요⁠.⁠”

“⁠곽미르 씨⁠, 이 마을에 지금 몇 분이 사시는지 아십니까⁠? 열한 집에 열여섯 분입니다⁠. 그중 일흔 넘은 분이 열셋이에요⁠. 겨울에 보일러 하나 터지면 사흘을 기다려야 읍내에서 기사가 옵니다⁠. 그분들이 서명한 돈이면 읍내 아파트로 가서 자식들 가까이 삽니다⁠. 그 돈이 지금 한 집 때문에 묶여 있어요⁠.⁠”

“⁠그 한 집이 저죠⁠.⁠”

“⁠네⁠. 그 한 집이 곽미르 씨입니다⁠.⁠”

진만규는 숨도 안 쉬고 말했다⁠. 칠봉의 빗자루가 진만규의 구두 앞코를 스쳤다⁠. 진만규는 내려다보지도 않고 발을 한 뼘 옮겼다⁠. 빗자루가 따라갔다⁠. 발이 다시 옮겨 갔다⁠. 빗자루가 다시 따라갔다⁠.

“⁠육 회장님⁠, 그만하시죠⁠.⁠”

“⁠마당 쓰는 중인데요⁠.⁠”

“⁠제 구두를 쓸고 계십니다⁠.⁠”

“⁠구두에 모래가 묻어서요⁠. 모래미 모래는 마을 밖으로 못 나가게 돼 있어요⁠. 회칙이에요⁠.⁠”

뒤에서 서류 가방을 든 젊은 여자가 웃음을 참다가 기침을 했다⁠. 진만규가 돌아보지도 않고 이 여자 이름을 불렀다⁠. 금비 대리⁠. 여자가 기침을 멈췄다⁠.

이때 진만규의 눈이 끝방 쪽으로 갔다⁠. 끝방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서율이 문지방에 기대 서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진만규의 눈이 서율에게서 한 박자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나는 이 한 박자를 당시에는 그냥 넘겼다⁠.

“⁠서명하실 마음 생기면 연락 주세요⁠. 번호는 아시죠⁠.⁠”

“⁠네⁠. 받지 말 것으로 저장돼 있어요⁠.⁠”

진만규가 처음으로 소리 내 웃었다⁠. 세 번째 널을 다시 밟고 마루에서 내려갔다⁠. 널이 또 울었다⁠. 일부러 밟은 거였다⁠.

*

이날 밤 서율은 잠들지 못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이걸 들었다⁠. 이불이 바스락거리고⁠, 일어나 앉는 소리가 나고⁠, 창문이 열렸다가 닫히고⁠, 녹음기 단추가 딸깍 눌렸다가 다시 딸깍 꺼졌다⁠. 열두 시에 한 번⁠, 한 시에 한 번⁠, 한 시 반에 또 한 번⁠. 그사이 세 번째 널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서율은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방 안에서만 뒤척였다⁠.

할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열 살 때부터 이걸 옆에서 봤다⁠.

먼저 장롱 맨 아래 칸에서 낮에 볕에 내다 말린 이불을 꺼냈다⁠. 할머니는 손님이 오는 날이면 날씨와 상관없이 이불 한 채를 꼭 마당 빨랫줄에 걸었다⁠. 비가 오면 처마 밑에라도 걸었다⁠. 볕을 먹은 이불은 펼칠 때 바삭한 소리가 나고⁠, 코를 대면 마른 풀과 햇빛 냄새가 났다⁠. 사람은 이 냄새를 맡으면 자기가 낮에 잘 살았다고 착각한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나는 끝방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안 주무시죠⁠?⁠”

문이 열렸다⁠. 서율은 코트를 입은 채였다⁠. 방 안이 추웠다⁠.

“⁠시끄러웠어요⁠? 죄송해요⁠. 석 달째 이래요⁠.⁠”

“⁠아니요⁠. 이불 바꿔 드리려고요⁠.⁠”

서율은 이불을 받아 들고 잠시 코를 댔다⁠.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나는 방에 들어가 창문을 손바닥 하나 너비만큼 열었다⁠. 찬 바람이 들어왔고⁠, 파도 소리가 커졌다⁠.

“⁠추운데요⁠.⁠”

“⁠이불이 따뜻하니까 괜찮아요⁠. 누우세요⁠. 파도를 세실 때 들어오는 소리는 세지 마세요⁠. 다들 쏴아 하고 밀려오는 걸 세는데⁠, 그거 세면 못 자요⁠. 빠져나가는 소리를 세세요⁠. 자갈이 따라 나가는 소리요⁠. 그건 들어오는 소리보다 조금 길어요⁠.⁠”

“⁠그게 무슨 차이가 있어요⁠?⁠”

“⁠들어오는 소리는 깨우고 나가는 소리는 재워요⁠. 저희 할머니가 그랬어요⁠.⁠”

서율이 눕는 걸 보고 나는 방을 나왔다⁠. 문을 닫지 않고 한 뼘 열어 둔 채 마루에 앉았다⁠. 세 번째 널을 피해서⁠. 그리고 할머니가 멸치 털 때 부르던 노래를 아주 낮게 흥얼거렸다⁠. 가사는 없었다⁠. 할머니도 가사를 몰랐다⁠. 어어허 어어허⁠, 그물을 들었다 내릴 때마다 터지는 숨이 그대로 노래가 된 소리였다⁠.

십 분쯤 지나자 방 안의 이불 소리가 멎었다⁠. 이십 분쯤 지나자 숨소리가 바뀌었다⁠. 깨어 있는 사람의 숨은 들이쉬는 쪽이 길고⁠, 잠든 사람의 숨은 내쉬는 쪽이 길다⁠. 서율의 숨이 내쉬는 쪽으로 길어졌다⁠. 파도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박자가 거의 맞았다⁠.

나는 노래를 멈추고도 한참 더 앉아 있었다⁠. 마루가 차가워서 엉덩이가 저렸고⁠, 발가락을 오므렸다 펴는 사이 축대 밑에서 물이 바뀌었다⁠. 할머니는 이 일을 마흔여덟 해 동안 했다⁠. 방 넷과 마루 하나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받은 건 낯선 사람 숨이 길어질 때까지 언 마루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밤이었다⁠.

*

새벽 여섯 시⁠, 끝방 문이 열려 있었고 방은 비어 있었다⁠. 이불은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나는 방파제로 나갔다⁠. 해가 뜨기 전이라 바다는 쇳빛이었다⁠. 방파제 끝에 서율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녹음기에 털북숭이 덮개를 씌운 마이크를 꽂고 테트라포드 틈으로 내밀고 있었다⁠. 나는 부르려다가 멈췄다⁠. 녹음 중인 사람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는 것쯤은 나도 알았다⁠.

이때 방파제 입구 쪽으로 검은 차가 들어왔다⁠. 어제 이 차였다⁠. 차는 방파제 끝까지 오지 않고 중간에 섰다⁠. 운전석 창이 내려갔다⁠.

서율이 녹음기를 끄고 일어났다⁠. 차 쪽으로 걸어갔고⁠, 허리를 숙여 창 안에 대고 뭐라고 말했다⁠. 진만규의 손이 창밖으로 나와 무언가를 건넸다⁠. 손바닥만 한 하얀 플라스틱 카드였다⁠. 서율이 이걸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바람이 내 쪽으로 불었다⁠. 파도 소리 사이로 말 두 마디가 끊겨 들려왔다⁠.

“⁠잘 주무셨어요⁠, 한 작가님⁠?⁠”

“⁠네⁠, 이사님⁠.⁠”

나는 방파제 입구에 서서⁠,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어제 내 마루를 밟은 남자와 어젯밤 내가 재운 여자였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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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해솔작가2026.10.09· 1화

    작가 진해솔입니다. 허락 없이 담은 목소리 때문에 한 음도 못 쓰게 된 사람이 바닷가에 내립니다. 1화의 겨울 손님을 보며, 여러분은 남의 목소리를 쓸 때 어디까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