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22자) · 일 년 치 우편

오른쪽 시계

심해 병원의 하루는 지상의 팔십 일 · 문가온

기지 시각 06:10 · 지상 2174년 3월

벽해 기지 식당 벽에는 시계가 둘 걸려 있다. 왼쪽은 기지 시각이다. 초침이 보이고, 보통 시계처럼 돈다. 오른쪽은 지상 시각이다. 초침은 보이지 않는다. 너무 빨라서 회색 번짐으로만 남는다. 분침이 시침처럼 돌고, 시침은 그냥 흘러간다. 오른쪽 시계 아래 작은 창에 지상 날짜가 뜬다. 내가 국을 한 그릇 먹는 동안 그 날짜가 이틀 넘어간다.

여기 처음 온 사람은 오른쪽 시계를 계속 본다. 이 주쯤 지나면 안 본다. 나는 두 번째 계약이라 처음부터 안 봤다.

“하란 선배, 이 라면 불는 동안 지상에서는 누가 벚꽃 구경 한 번 다녀왔어요.”

봄이 젓가락을 든 채 오른쪽 시계를 보고 있었다. 첫 계약 열이틀째인 스물여섯 살 정비사다. 들어온 날부터 뭐든 지상 시간으로 바꿔 말한다. 샤워 십오 분이면 지상 하루 가까이, 낮잠 한 시간이면 지상 사흘.

“안 보면 안 불어.”

“라면이요, 벚꽃이요?”

“둘 다.”

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라면을 후루룩 들이켰다. 국물이 튀어 작업복 가슴에 동그란 자국이 났다. 그는 그 자국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얼룩 마르는 동안 지상에선…」 나는 그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벽해 기지는 수심 육천 미터에 매달려 있다. 해저에 뚫은 수직갱 안에 윈치 줄 네 가닥으로. 갱 밑바닥 훨씬 아래, 돌과 흙 삼천 미터 밑에 중력정이 있다. 백이십여 년 전 이 바다 밑에서 찾아낸, 산 하나를 주먹만 하게 눌러 담은 것 같은 덩어리. 그것에 가까울수록 시간이 느려진다. 여기서는 팔십 배다. 기지의 하루가 지상의 팔십 일이고, 기지의 여섯 달이 지상의 사십 년이다.

몸이 먼저 안다. 여기 오면 수압보다 무게가 먼저 온다. 숟가락이 조금 무겁고, 눈꺼풀이 조금 무겁다. 계단을 올라가면 한 칸마다 누가 어깨를 누른다. 두 번째 계약이 되면 그 무게가 익숙해진다. 익숙해진 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첫 계약은 스물여덟에 들어갔다. 여섯 달 일했다. 나갔더니 지상이 사십 년 지나 있었다. 아는 사람 가운데 살아 있는 사람은 넷이었다. 넷 다 나를 못 알아봤다. 나는 지상에서 넉 달을 버텼다. 돈은 많았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가운데 내가 원하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들어왔다. 두 번째 계약 넉 달째다.

식당 문이 열리고 정 노인이 들어왔다. 정만호. 여기서 제일 오래 있었다. 세 번째 계약, 그리고 마지막 계약이 이번 주에 끝난다. 그는 식판을 내려놓고 오른쪽 시계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거 보는 놈이 또 있네.”

“봄이요.”

“봄이는 봐도 돼. 봄이니까.”

정 노인은 자기 농담에 혼자 웃었다. 이가 몇 개 없었다. 봄이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하고 물었고, 정 노인은 대답 대신 봄의 라면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기지 시각 07:40 · 지상 2174년 3월

물자 캡슐은 기지 시각으로 보름에 한 번 온다. 지상으로는 삼 년 남짓에 한 번이다. 캡슐이 갱을 타고 내려와 물자실 도킹 포트에 걸리면, 경보등이 주황으로 한 번 돌고 무게추가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 소리가 기지 전체에 울린다. 다들 하던 일을 멈춘다. 캡슐 안에는 식량과 부품과, 가끔 편지가 있다. 편지는 한 통에 지상 임금 일 년 치다. 그래서 거의 안 온다.

물자 담당이 목록을 읽어 내려가다 멈췄다.

“하란 씨. 개인 우편 한 통.”

물자실에 있던 여섯이 동시에 나를 봤다. 봄이 입을 벌렸다. 「선배, 일 년 치예요. 누가 선배한테 일 년을 썼어요.」

봉투는 종이였다. 지상에서 종이를 안 쓴 지 한참이라고 들었다. 모서리가 닳아 둥글었고, 누렇게 바랬고, 여러 번 접혔다 펴진 자국이 있었다. 받는 사람 칸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글씨는 셋이었다. 맨 처음 쓴 사람의 가는 필기체, 그 위에 덧쓴 반듯한 남자 글씨, 그리고 맨 위에 새로 쓴 둥근 글씨. 벽해 기지 정비과 하란. 제발 이번에는 받아 주세요.

제발 이번에는.

봉투를 열었다. 종이가 여러 장이었다. 첫 장 맨 위에 날짜가 있었다. 2113년 11월. 육십일 년 전이다. 내가 첫 계약으로 여기 있을 때 쓴 편지였다.

하란 씨에게. 저는 관제실의 윤서경입니다. 제 목소리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기억했다. 첫 계약 때 지상 관제는 여럿이 돌아가며 맡았다. 얼굴은 본 적이 없다. 목소리만. 그중 새벽 교대를 맡던 목소리. 낮고, 숫자를 또박또박 읽고, 끝에 꼭 「오늘도 무게 조심하세요」를 붙이던 사람.

“그 편지, 이리 주지.”

물자실 입구에 서태오 기지장이 서 있었다. 회색 제복, 소매 끝이 반듯했다. 머리가 희끗했다. 몸 나이 쉰다섯. 기지장은 특별 임원 계약이라 계약 횟수 제한이 없다. 여기서 제일 오래 있은 사람은 정 노인이지만, 여기서 제일 오래 결정해 온 사람은 기지장이다.

“개인 우편입니다.”

“지상 우편 검열 규정 칠조. 기지 운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정보는 기지장이 먼저 열람한다. 자네도 서명했지. 두 번.”

기지장은 손을 내밀었다. 물자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봄이 캡슐 뒤로 반쯤 몸을 숨겼다.

“열람만 하시는 겁니까?”

“열람하고, 돌려줄 만하면 돌려주지.”

나는 종이를 가지런히 모았다. 모으는 동안 맨 뒷장이 손바닥 밑으로 들어갔다. 정비사는 손에 잡힌 볼트를 장갑 안으로 넣는 버릇이 있다. 작은 부품은 떨어뜨리면 갱 바닥까지 간다. 나는 맨 뒷장을 장갑 손목 틈으로 밀어 넣고, 나머지를 봉투째 기지장에게 건넸다.

기지장은 봉투를 받아 들고 첫 장만 훑었다. 윤서경이라는 이름에서 눈이 한 번 멈췄다. 아주 짧게. 그리고 봉투를 접어 제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죽은 사람 편지군. 육십 년 된.”

“제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선 이름보다 규정이 먼저야, 하란 씨.”

기지장이 몸을 돌리다가 멈췄다. 그리고 물자실 안을 둘러봤다. 여섯 사람의 얼굴을 하나씩. 그 눈이 봄에게서 조금 오래 머물렀다. 봄이 캡슐 뒤에서 차렷 자세를 했다.

“그리고 다들, 일 년 치 우편이 왔다는 얘기는 식당에서 하지 마. 요양동 환자들이 자기 집에서도 올 줄 알고 기다린다. 기다리게 하는 건 잔인한 일이야.”

그는 나갔다. 문이 닫혔다. 봄이 캡슐 뒤에서 나왔다.

“선배. 방금 기지장님이 잔인하다는 말을 했어요. 통계적으로 그 말은 잔인한 사람이 제일 많이 해요.”

“어디서 들은 통계야.”

“지금 만든 통계요.”

정비실로 가는 길은 요양동 앞을 지난다. 요양동 복도 창 안쪽에 아이 하나가 이마를 대고 서 있었다. 오은채. 열한 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었고, 환자복 소매를 세 번 접어 올렸다. 나와 같은 수송정을 타고 이 기지에 내려온 아이. 그때 은채는 열 살이었고 나는 스물여덟이었다. 수송정 안에서 은채는 내 작업복 소매를 쥐고 열두 시간 동안 놓지 않았다. 지금 은채는 열한 살이고 나는 서른넷이다. 은채는 여기 계속 있었고, 나는 한 번 나갔다가 돌아왔다. 그 차이가 여섯 해다.

은채가 창을 두드렸다. 소문이 벌써 퍼져 있었다.

“아저씨, 편지 왔다며. 일 년 치짜리.”

“응.”

“우리 집에서 온 거야?”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은채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지. 우리 집은 돈 없어. 엄마가 나 내려보낼 때 집 팔았어. 근데 아저씨, 만약에 우리 집에서 편지 오면 나 먼저 보여 줘. 기지장 아저씨 말고.”

“왜?”

“기지장 아저씨는 편지 읽을 때 코로 읽어. 흥, 흥 하면서.”

은채는 코를 찡그리며 흥, 흥 소리를 냈다. 기지장 흉내였다. 똑같았다. 나는 웃음을 참다가 못 참았다. 은채는 만족한 얼굴로 창에서 이마를 뗐다. 창유리에 동그랗게 김이 남았다. 은채가 손가락으로 그 김 위에 뭔가를 그렸다. 시계 두 개. 하나는 빨리, 하나는 느리게. 그리고 병실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조금 무거웠다. 무게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지 시각 08:15 · 지상 2174년 3월

정비실 공구함 뒤에서 장갑을 벗었다. 손목에 땀이 배어 종이가 조금 눅었다. 맨 뒷장은 윤서경의 글씨가 아니었다. 표였다. 자를 대고 그린 표. 줄이 조금 휘었다. 이름이 열여섯. 이름마다 옆에 계약 차수와 연도. 그리고 맨 아래 네 줄에 붉은 볼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기록 코드 X. 네 명. 2112년 8월.

그 넷의 이름을 나는 알았다. 첫 계약 때 같은 기지에 있었다. 요양동의 두 사람과 정비과의 한 사람과 조리실의 한 사람. 어느 날 그 넷이 탈출정을 타고 나갔다고 들었다. 허가 없이. 탈출정은 갱 위로 오르다가 압력을 못 견디고 부서졌다고. 자의 이탈. 기지장은 그때 부기지장이었고, 식당에 모두를 모아 놓고 그렇게 말했다. 슬픈 일이지만 규정을 어긴 사람들이라고.

표 아래 윤서경의 글씨가 한 줄 있었다.

그 넷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잠겼습니다.

그 아래에 다른 글씨로 두 줄이 더 있었다. 반듯한 남자 글씨. 2141년. 어머니가 맡긴 이 편지를 전하려고 넉 달 동안 당신을 찾았습니다. 찾았을 때 당신은 어제 다시 내려갔습니다. 오준.

그리고 맨 아래, 둥근 글씨. 2174년. 할아버지 대신, 아빠 대신 부칩니다. 치료제는 구 년 전에 나왔습니다. 고모는 왜 안 올라오나요. 오은서.

고모. 나는 그 단어에서 한참 멈췄다.

정비실 스피커가 지직거렸다. 기지 전체 방송이었다. 기지장의 목소리.

“정비과 하란. 지금 기지장실로.”

봄이 공구함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입 모양으로 말했다. 선배, 뒷장.

나는 종이를 네 번 접어 작업화 깔창 밑에 넣었다. 그리고 일어섰다. 무게가 어깨를 눌렀다.

기지장실 책상 위에 편지가 펼쳐져 있었다. 한 장씩, 가지런히. 기지장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로 그 종이들을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일곱 장이군.”

“네.”

“봉투 무게를 캡슐 목록에서 봤어. 여덟 장 무게야.”

기지장이 고개를 들었다. 웃고 있었다. 웃음이 얼굴 아래쪽에만 있었다.

“하란 씨. 여기서는 종이 한 장도 무게가 있어. 작업화가 조금 무거워 보이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작업화 깔창 밑에서 네 번 접힌 종이가 발바닥을 눌렀다. 육십일 년 동안 세 사람의 손을 거쳐 온 무게였다. 나는 그 무게를 딛고 서 있었다. 오른쪽 시계 속에서 지상의 하루가 또 넘어가고 있었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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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가온작가2026.10.09· 1화

    작가 문가온입니다. 여기서 하루면 저 위에서는 팔십 일입니다. 1화의 오른쪽 시계를 보며, 여러분이라면 치료를 기다리는 동안 누구의 시간을 빌리시겠어요?

  • 조용한책상2026.05.23· 1화

    인물이 설명 없이 행동으로 드러나서 좋았어요.

    • 문가온작가2026.05.24

      같은 출발점 작품들 저도 다 읽었습니다. 정말 다르더라고요.

오른쪽 시계 · 심해 병원의 하루는 지상의 팔십 일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