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23자) · 시월 십이일 월요일
의자 셋
사람이 떨어진 옥상에 매일 밤 앉는 세 사람 · 오세림
우리 회사 옥상에는 의자가 셋 있다. 플라스틱 의자다. 흰색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회색이다. 누가 갖다 놨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안다. 내가 갖다 놨다. 작년 삼월이었다.
야근하다가 숨이 안 쉬어져서 옥상에 올라갔다. 십오 층 건물의 십육 층. 철문을 밀면 바람이 먼저 들어온다. 앉을 데가 없었다. 실외기 여섯 대와 물탱크와 담배꽁초뿐이었다. 다음 날 사무실에서 폐기 스티커 붙은 의자를 하나 들고 올라갔다. 등받이에 금이 간 것. 일주일 뒤에 의자가 둘이 됐다. 내가 안 갖다 놨다. 이 주 뒤에 셋이 됐다.
우리 팀은 여덟 명인데 여덟 명 다 나를 조용한 사람으로 안다. 작년 워크숍에서 팀장이 나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린 씨는 말수가 적은데 일은 꼼꼼합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속으로 열두 문장쯤 반박했다. 하나도 밖으로 안 냈다. 말수가 적은 게 아니라 말할 자리가 없는 것이다. 회의에서 내가 말하려고 숨을 들이켤 때마다 누가 먼저 말한다. 세 번 그러고 나면 그날은 안 하게 된다.
옥상에서는 아무도 안 말하니까 나도 안 한다. 여기서는 그게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는 여덟 시에 모인다. 약속한 적 없다. 첫 번째 의자는 나. 두 번째는 총무팀 김상현 과장님. 서른여덟이고 가방에 늘 각이 잡혀 있다. 세 번째는 품질팀 도영 과장님. 마흔하나. 일 년 넘게 같이 앉았는데 이름을 안 지 석 달밖에 안 됐다. 사원증이 뒤집혀 있어서 그동안 몰랐다. 여기서는 그런 걸 안 묻는다. 하는 일은 없다. 앉아 있는다. 가끔 말한다.
“오늘 덥네요.”
“네.”
끝. 이게 우리가 하는 거다. 시월 십이일 월요일. 그날도 그럴 줄 알았다.
여덟 시 사 분에 철문이 열렸다. 바람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구두 소리가 넷.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옥상에서는 누가 올라와도 안 돌아본다. 그런데 소리가 우리 쪽으로 왔다. 그리고 멈췄다. 정장 바지 자락이 내 의자 옆에 섰다.
“여기 앉아 계시는 분들이군요.”
목소리가 컸다. 여덟 시 옥상에 맞지 않는 크기.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쉰 남짓. 넥타이 없는 셔츠에 재킷. 사원증 줄이 다른 색이었다. 임원 줄. 뒤에 셋이 따라 서 있었다. 하나는 안전모를 옆구리에 끼고 줄자를 들었고, 둘은 도면 통을 메고 있었다.
“경영지원실 차승호입니다.”
차 상무. 이름은 알았다. 얼굴은 엘리베이터 안 인사 사진으로만 봤다. 사옥 관리와 총무와 인사가 다 그 사람 밑에 있다. 그 사람이 여기 올라온 이유를 나는 그때 몰랐다. 상무는 우리 셋을 한 번씩 봤다. 세는 눈이었다.
“편하게 계세요. 저희는 잠깐 재기만 하고 갑니다.”
줄자 든 사람이 난간 쪽으로 갔다. 줄자가 딸깍 소리를 내며 풀렸다. 도면 통 든 둘이 옥상 바닥에 도면을 펴고 무릎으로 눌렀다. 바람이 도면 귀퉁이를 들썩였다. 나는 그 종이에 그려진 것을 봤다. 옥상 평면도. 실외기 여섯 개 자리에 엑스가 쳐져 있었다. 그 위에 새로 그린 선. 유리벽. 바 카운터. 소파. 글씨가 있었다. 스카이 라운지(임원·VIP 전용).
김상현 과장님이 일어섰다.
과장님이 옥상에서 일어서는 것을 나는 처음 봤다. 여덟 시에 그 사람은 늘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앉아서 가방을 무릎에 올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도면 앞으로 갔다. 무릎을 꿇고 도면을 봤다. 오래. 그러고는 일어나서 상무한테 말했다.
“상무님. 이 도면, 철문이 없습니다.”
“예?”
“출입구요. 여기 유리벽이 서면 지금 철문 자리가 막힙니다. 도면에 새 출입구가 라운지 안쪽으로 나 있는데, 그러면 라운지가 잠겨 있을 때 옥상으로 못 나옵니다.”
상무가 웃었다. 피곤한 웃음이 아니라 여유 있는 웃음이었다.
“그러라고 짓는 겁니다. 아무나 올라오면 라운지가 아니죠.”
“이 건물 옥상은 피난층입니다. 십오 층 이상 건물은 옥상 피난문을 잠글 수 없습니다. 소방법입니다. 비상시에 누구나 열고 나올 수 있어야 됩니다. 작년 봄 소방 점검 때 그것 때문에 잠갔던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제가 열었습니다.”
옥상이 조용해졌다. 실외기 3번이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줄자 든 사람이 줄자를 감았다. 딸깍.
상무는 김 과장님을 오래 봤다. 이름표를 읽는 눈이었다.
“총무팀 김상현 과장.”
“네.”
“그 소방 점검, 자네가 받았지.”
“네.”
“그럼 자네가 제일 잘 알겠네. 잠그는 게 아니라 카드 출입으로 바꾸는 거야. 비상시엔 카드 없이 열려. 화재 신호 들어오면 잠금이 풀리는 거. 요즘 다 그렇게 해. 소방서도 그걸로 승인 내 줘.”
김 과장님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 사람은 규정을 아는 사람이었다. 규정을 아는 사람은 규정이 맞을 때 입을 다문다. 상무 말이 맞았다. 카드 출입은 잠그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사람 등을 봤다. 조금 굽어 있었다.
도영 과장님이 그때 입을 열었다. 삼 년 동안 옥상에서 스무 마디쯤 한 사람이.
“상무님. 삼 년 전에는 왜 잠그셨습니까?”
상무가 도영 과장님을 봤다. 그 사람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지는 데 이 초쯤 걸렸다.
“품질팀 도 과장.”
“네.”
“그 얘기는 여기서 할 얘기가 아니지.”
“여기서 있었던 일입니다.”
두 사람은 한참 서로를 봤다. 나는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삼 년 전. 나는 그때 이 회사에 있었다. 사 년 차였다. 그 가을에 옥상이 잠겼다. 이유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소문은 있었다. 나는 소문을 듣는 자리에 없었다. 말수가 적은 사람은 소문도 못 듣는다.
상무가 먼저 눈을 돌렸다. 도면 든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도면이 말렸다. 줄자가 가방에 들어갔다. 상무는 철문 앞에서 돌아섰다.
“십일월 삼십일 착공입니다. 그때까지는 편하게 쓰세요. 의자도 그냥 두시고.”
문이 닫혔다. 바람이 다시 왔다. 시월 바람은 아직 따뜻한 데가 있었다. 낮에 데워진 타일이 발바닥으로 온기를 올려 보냈다. 나는 그 온기를 발끝으로 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있던 발이 옥상 타일에 닿을 때, 그 미지근함이 내가 옥상에 오는 이유 중 하나였다.
김 과장님이 자기 의자로 돌아와 앉았다. 도영 과장님도 앉았다. 셋이 앉았다.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십 분. 십오 분. 나는 열두 문장을 속으로 만들었다가 지웠다. 삼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카드로 막히면 우리는 어디 앉아요. 상무님은 왜 여덟 시에 올라왔어요. 다 지웠다.
십 분쯤 지났을 때 김 과장님이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도면 쪽이 아니라 난간 쪽이었다. 그 사람은 난간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을 펴서 위에 얹고, 엄지를 아래로 내려 뼘을 쟀다. 한 뼘, 두 뼘, 손가락 셋. 그러고는 손을 뗐다. 나는 그 난간을 일 년 반 동안 한 번도 만져 본 적이 없었다. 의자에서 난간까지 네 걸음인데 그 네 걸음을 안 갔다. 갈 이유가 없었다. 그날 처음으로 손을 대 봤다. 낮 동안 데워진 타일과 달리 쇠는 벌써 식어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에서 녹이 손바닥에 묻어났다. 위쪽 한 뼘은 색이 달랐다. 아래는 오래된 회색이고 위는 새 회색. 이어 붙인 자리에 용접 자국이 볼록했다. 내 가슴께까지 왔다.
“이거 나중에 올린 거예요?”
내가 물었다. 옥상에서 뭘 물어본 것도 처음이었다.
“작년 봄에요. 백이십에서 백이십오로. 규정은 백이십입니다.”
“오 센티 더 올린 이유가 있어요?”
“없습니다.”
김 과장님은 그렇게 말하고 의자로 돌아갔다. 이유가 없다는 말을 그 사람 입에서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사람은 이유 없이 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손바닥의 녹을 바지에 문질렀다. 잘 안 지워졌다. 그날 밤 집에 가서 비누로 씻을 때까지 손바닥에 쇠 냄새가 남아 있었다. 손을 코에 대 보면 옥상이 났다.
여덟 시 반에 도영 과장님이 일어섰다. 늘 그 시각에 먼저 내려간다. 그런데 그날은 철문 앞에서 멈췄다. 돌아서지 않고 말했다.
“십일월 삼십일이면 마흔아홉 일입니다.”
그 사람은 그 말만 하고 내려갔다. 계단 소리가 멀어졌다.
김 과장님이 가방을 열었다. 각 잡힌 가방 안쪽 칸에서 클리어파일을 꺼냈다. A4 한 장. 사내 동아리 등록 신청서. 동아리명 칸이 비어 있었다. 인원 3. 활동 장소 본관 옥상. 활동 내용 미기재.
“이거 작년에 써 둔 겁니다.”
“왜요.”
“사규 27조. 등록 동아리의 활동 장소를 없앨 때는 동아리와 협의해야 됩니다. 협의는 막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협의는 협의입니다. 한 번은 앉아서 얘기해야 됩니다.”
“작년에 왜 안 내셨어요.”
“낼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그 사람은 볼펜을 꺼냈다. 동아리명 칸에 뭔가 쓰려다가 멈췄다. 볼펜 끝이 종이 위에서 떴다.
“이름을 뭐라고 합니까?”
나는 그 질문에 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일 년 반 동안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붙이면 뭔가가 된다. 뭔가가 되면 회의가 된다. 그런데 이름이 없으면 협의도 없다.
“옥상연구회요.”
내가 말했다. 말하고 나서 놀랐다. 밖으로 나온 말치고 길었다.
“뭘 연구합니까?”
“옥상을요.”
김 과장님이 나를 봤다. 그러고는 썼다. 옥상연구회. 그 사람 글씨는 자로 댄 것 같았다. 회원 칸에 이름 셋. 예린, 김상현, 도영. 도영 과장님 이름은 그 사람이 대신 썼다. 대리 서명이라고 옆에 작게 적었다.
“내일 아침에 냅니다. 총무팀은 총무팀이 내는 걸 반려 못 합니다.”
“과장님이 총무팀이잖아요.”
“네.”
“그럼 과장님이 과장님한테 내는 거네요.”
“네.”
나는 웃었다. 일 년 반 만에 여기서 처음 웃었다. 김 과장님도 웃었다. 입꼬리만.
계단을 내려가면서 나는 마흔아홉 일을 셌다. 하루에 한 번, 주 오 일. 서른다섯 번. 여덟 시가 서른다섯 번 남았다. 그 숫자가 계단참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것 같았다. 나는 오 층에서 멈춰 섰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싫었다. 왜 싫은지는 몰랐다. 그냥 발이 안 움직였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사 분에 사내 게시판에 공지가 떴다.
[사내 동아리 등록 안내] 신규 등록 — 옥상연구회 (인원 3명 / 활동장소: 본관 옥상 / 활동내용: 미기재) 담당: 총무팀
그 밑에 열 시까지 댓글이 셋 달렸다. 열두 시에 여덟이 됐다. 첫 댓글은 기획팀 한지우였다.
옥상연구회 가입 신청은 어디로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