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68자) · 암실

두 번째 봉투

을지로 지하, 열리지 않는 붉은 방 · 한도윤

암실의 등은 붉다. 붉은색이 예뻐서가 아니라 인화지를 상하게 하지 않는 유일한 빛이 붉은색이라서다. 나는 십오 년째 그 등 아래서 일했다. 신문사 사진부에 필름 암실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내가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다들 디지털로 넘어간 뒤에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이 방에 들어와 흑백 필름 한 롤을 현상한다. 약품 냄새, 식초 같은 정지액 냄새, 물 흐르는 소리. 붉은 등 아래서는 손이 검게 보이고 종이가 하얗게 보인다. 그 두 가지만 보인다. 나는 그게 좋았다.

그래서 붉은 방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 방을 떠올렸다. 사 년 전이었다. 이 년 전에도, 작년에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오늘 다시 떠올렸다.

십이월 십칠일 목요일 오후 네 시. 지금 그 붉은 등 아래 봉투가 놓여 있다.

봉투를 받은 것은 두 시간 전이었다. 신문사 일 층 로비. 나는 법원 취재를 마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경비 데스크 앞에 남자가 서 있었다. 서른 중반쯤. 검은 패딩, 검은 모자, 목에 택배 회사 목걸이 같은 것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손에는 상자가 아니라 봉투 한 장뿐이었다. 붉은 봉투. 그 남자가 나를 보고 웃었다. 아는 사람한테 웃듯이.

“임서결 기자님.”

“누구세요.”

“배달입니다. 직접 드리라고 해서요.”

남자가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손이 주머니에서 안 나왔다. 사 년 전에 한 번 받아 본 색이었다.

“안 받으시면 댁으로 갑니다. 성북구 정릉동 이백십일 번지. 삼 층. 어머님 혼자 계시죠. 요즘 오후엔 복지관 가시고.”

그 사람은 그 말을 택배 주소 확인하듯 했다. 목소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나는 봉투를 받았다. 종이가 두꺼웠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곽입니다. 그냥 곽이요.”

“누가 보냈습니까?”

“열어 보시면 압니다. 아, 그리고.”

곽이라는 남자가 로비 천장의 조명을 올려다봤다. 형광등 한 줄이 깜빡이고 있었다.

“기자님 사진 잘 찍으시더라고요. 사 년 전 겨울 우체국 앞에서 찍힌 거, 저도 봤는데 잘 나왔어요.”

남자는 모자를 한 번 들었다 놓고 회전문을 밀고 나갔다. 나는 그 등을 찍지 않았다. 회전문 유리에 비친 내 얼굴만 봤다. 입을 조금 벌리고 있었다. 사진기자가 찍히는 쪽 얼굴을 하고 있었다. 로비 안내 화면에서는 오늘의 날씨가 흘러갔다. 흐림, 영하 사 도, 저녁부터 눈. 카메라가 목에 걸려 있었는데 손이 안 올라갔다. 경비원이 아는 분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회전문이 아직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 유리에 로비 조명이 한 바퀴씩 미끄러졌다. 경비원이 방명록을 보여 주었다. 방문자 칸에 곽, 이라고 한 글자만 적혀 있었다. 방문 목적 칸에는 배달.

유리판 위에 봉투를 반듯하게 눕히고 삼각대를 세웠다. 접사 렌즈를 물리고 조리개를 조였다. 붉은 등만으로는 색이 안 나오니까 백색등을 켰다. 순간 방이 하얘지면서 봉투의 붉은색이 제 색으로 돌아왔다. 벽돌색에 가까운 붉은색. 우체통보다 조금 어두운. 나는 스물두 장을 찍었다. 앞면, 뒷면, 봉함, 모서리. 찍는 동안에는 봉투가 내 앞에 있는 게 아니라 프레임 안에 있다. 그 차이로 나는 십오 년을 버텼다. 붕괴 현장에서, 불탄 집 앞에서, 물에서 건져 올린 것 앞에서. 셔터를 누르는 동안에는 그것이 내 것이 아니었다.

봉투 안에는 세 가지가 들어 있었다.

첫째, 카드. 손바닥만 한 두꺼운 종이에 인쇄된 글자. 십이월 이십일일 월요일 저녁 일곱 시. 장소는 적혀 있지 않았다. 당일 오후에 알린다고 되어 있었다. 그 아래에 항목이 둘. 참석, 서명. 사 년 전 카드에는 항목이 셋이었다. 참석, 서명, 그리고 거절. 거절 옆에는 빈칸이 있었고 그 빈칸 밑에 작은 글씨로 대신 초대할 분의 성함을 적어 보내 주십시오, 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 카드에는 거절이 없었다.

둘째, 종이 한 장. 사 년 전 내가 그 빈칸에 적어 낸 종이였다. 카드 아랫부분을 뜯어 보관한 것. 내 필체가 있었다. 그때 나는 왼손으로 카드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적었다. 글씨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민해원.

셋째, 사진 한 장. 사 년 전 겨울, 동네 우체국 앞 우체통. 목도리를 턱까지 올린 남자가 투입구에 봉투를 밀어 넣고 있다. 옆모습이지만 나는 그 외투를 안다. 지금도 옷장에 있다. 촬영 위치는 길 건너 버스 정류장쯤. 망원 렌즈. 해가 진 뒤였는데 노이즈가 적었다. 잘 찍은 사진이었다. 곽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 아무것도 없었다. 등 아래쪽이 한 번 조여들었다. 그게 다였다.

사 년 전 첫 봉투를 받고 나는 사흘을 앓았다. 사흘째에 자료실에서 옛 기사철을 뒤져 십 년 전 사회면 구석의 짧은 기사 하나를 찾아냈다. 겨울마다 붉은 봉투가 돈다는 괴담 같은 기사. 기자는 이미 퇴사했고, 기사에 인용된 사람 하나가 을지로에서 열쇠 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열쇠를 깎으며 내 말을 다 듣고 말했다. 거절하세요. 대신 모르는 사람 이름을 적으세요. 아는 사람 적으면 못 견뎌요.

그해 시월에 나는 성북구 재개발 구역 철거 현장을 찍었다. 벽에 붙은 이주 대상자 명단도 찍었다. 그 파일이 노트북에 있었다. 이름 열아홉 개. 나는 그중 아홉 번째를 골랐다. 이유는 없었다. 모르는 이름이었다. 그게 이유였다. 그리고 나는 사 년을 살았다. 그 이름을 한 번도 검색해 보지 않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백색등을 껐다.

한여름 선배는 노크를 세 번 하고 대답을 안 기다린다. 문이 열리고 복도의 형광등 빛이 붉은 등 안으로 한 줄 밀려들었다. 인화지 상자가 닫혀 있는지 나는 반사적으로 확인했다.

“여기 왜 이렇게 빨개.”

“암실입니다.”

“알아. 농담 아니라 오늘은 좀 그렇다.”

선배가 봉투 쪽을 봤다. 이 초쯤.

“받았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거 물어볼 시간 없어. 앉아.”

선배는 나보다 여섯 살 위고 사회부에서 십 년을 있었다. 남의 문장 끝을 밟는 버릇이 있다. 처음엔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그 사람은 말이 어디로 갈지 먼저 보고 거기서 기다리는 사람이다. 선배가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유리판 위에 쏟았다. A4 여덟 장. 복사본이었다. 원본은 공책이었던 모양이다. 줄 간격과 가장자리 그림자가 보였다.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 옆에 연도가, 그 옆에 짧은 메모가. 거절함. 확인. 못 찾음. 연락 끊김.

스물셋.

“석 달 전에 우편으로 왔어. 보낸 사람 없이. 확인한 게 여섯이야. 여섯 다 붉은 봉투 받은 사람이었어.”

선배가 세 번째 장을 짚었다. 열여섯 번째 줄. 임서결. 옆에 사 년 전 연도. 메모는 없었다. 오른쪽 등이 한 번 더 조여들었다. 나는 종이를 조금 돌렸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손을 움직여야 해서.

아홉 번째 줄에서 멈췄다. 민해원. 사 년 전. 메모: 받음. 거절 안 함. 방에 감. 다른 줄의 메모는 남에 대해 쓴 말투였다. 이 줄만 달랐다. 방에 감. 주어가 없었다. 자기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쓰는 사람의 메모였다.

나는 그 줄을 오래 봤다. 오래라는 것은 삼십 초쯤이었을 것이다. 선배가 그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선배는 이미 그 줄을 봤다.

“아는 이름이야?”

“사 년 전에 제가 적어 냈습니다.”

선배가 볼펜을 놓았다. 볼펜이 유리판에 닿는 소리가 났다. 이 방은 방음이 좋아서 그런 소리가 크게 들린다.

선배가 루페를 달라고 했다. 필름 검판용 확대경. 선배가 종이에 얼굴을 붙이고 한참 봤다.

“이름 밑에 연필로 뭐가 있어.”

나는 루페를 받아 봤다. 복사하면서 거의 날아갔지만 남아 있었다. 동그라미. 스물세 줄 가운데 아홉 줄 밑에 있었다. 민해원 밑에는 없었다. 내 이름 밑에도 없었다.

“이게 뭘까.”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안 되는데.”

선배는 그 말을 하고 목도리를 다시 감았다. 그러고는 나를 봤다. 붉은 등 아래서 선배 얼굴은 반쯤 검었다.

“나 이거 쓸 거야. 이번 주에.”

“아직 안 됩니다.”

“왜?”

“이십일일입니다. 나흘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쓰는 거야. 기사 나가면 걔들 움직이기 어려워.”

“기사 나가면 걔들이 먼저 움직입니다. 로비에서 봤습니다. 제 어머니 집 주소를 알아요.”

선배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봉투를 봤다. 붉은 등 아래서 붉은 봉투는 색이 없었다. 하얗게 보였다. 이 방에서는 붉은 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붉은 방이라고 부르는지도 몰랐다.

“그럼 뭐 할 건데?”

“이 사람부터 찾겠습니다.”

나는 아홉 번째 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선배가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보냈다. 내 주머니가 떨렸다.

“주소. 이주 대상자 명단 그거, 네가 찍은 원본 회사 서버에 있더라. 민해원. 세대주 아니고 세대원. 딸이 하나 있었어. 연서동 임대아파트로 옮겼다.”

“선배는 왜 저를 돕습니까?”

선배가 문틀에 손을 얹은 채로 잠깐 서 있었다.

“돕는 거 아니야. 취재하는 거야. 그 둘이 같아 보이면 그건 네 문제고.”

문이 닫혔다. 붉은 등 아래 다시 나와 봉투만 남았다.

나는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여섯 번 갔다. 일곱 번째에 받았다. 뒤에서 탁구공 소리가 났다. 딱, 딱, 딱.

“어, 서결아. 엄마 지금 복지관. 탁구 치는 중이야.”

“누가 찾아온 사람 없었어요?”

“누가 와. 아, 아침에 택배 왔더라. 빈 상자. 이상하지. 상자 안에 아무것도 없어. 주소는 우리 집 맞는데.”

나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 상자 버리지 마세요. 오늘은 저녁에 제가 갈게요. 문 꼭 잠그시고요.”

“얘가 왜 이래. 엄마 지금 복식이야. 박 여사가 서브 넣는다. 끊어.”

전화가 끊겼다. 딱, 딱, 딱 소리가 귀에 남았다. 빈 상자. 곽은 로비에 오기 전에 정릉동에 먼저 다녀간 것이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상자를 문 앞에 두고. 여기 왔었다는 표시로.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봉투를 한 장 더 찍으려다가 내려놓았다. 대신 사진 속 우체통 앞의 남자를 오래 봤다. 목도리를 턱까지 올린 사람. 모르는 이름을 적어서 봉투에 넣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찍은 누군가는 그 봉투가 어디로 갈지 알았다.

연서동 주소를 지도에서 찾았다. 신문사에서 지하철로 사십 분. 어머니 집에서는 버스로 이십 분. 곽이 어머니 집에서 이 로비까지 온 길과, 내가 이 로비에서 연서동까지 갈 길이 지도 위에서 한 번 겹쳤다. 나는 그 겹친 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가 뗐다.

나는 백색등을 다시 켰다. 방이 하얘졌다. 인화지 상자는 닫혀 있었다. 아무것도 상하지 않았다. 사진 속 남자의 얼굴만 선명해졌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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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도윤작가2026.10.09· 1화

    작가 한도윤입니다. 초대장은 한 번 거절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이름을 적으면요. 1화의 두 번째 봉투를 받은 서결의 자리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 종이배2026.05.03· 1화

    인물이 설명 없이 행동으로 드러나서 좋았어요.

    • 한도윤작가2026.05.04

      그렇게 읽어 주시니 다음 화 쓰는 게 덜 무섭습니다.

두 번째 봉투 · 을지로 지하, 열리지 않는 붉은 방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