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3652일차

관측자 K의 일지 · 정이한

3652일차. 오늘도 맞은편 건물 4층 창문 세 개를 기록했다.

A창(좌): 07:12 커튼 열림 / 22:40 커튼 닫힘 B창(중): 종일 닫힘 C창(우): 09:03 열림 / 09:41 닫힘 / 19:55 열림

C창의 09:03 열림은 십 년 동안 처음이다. 나는 십 년째 이 일지를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지 않는다. 이 구분은 나에게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내 방 창문에서는 맞은편 건물의 4층만 보인다. 위아래는 각도 때문에 안 보인다. 그래서 나는 4층만 기록한다. 4층에는 세 집이 있다. A창 사람은 규칙적이다. 십 년 동안 편차가 십오 분을 넘은 적이 여섯 번뿐이다. 여섯 번 다 12월이었다.

B창은 십 년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C창 사람은 저녁에만 있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온다. 십 년 동안 그랬다. 오늘 아침 아홉 시 삼 분에 C창이 열렸다. 나는 그것을 기록하고 삼십팔 분을 봤다.

09:41에 닫혔다. 그동안 창가에 사람이 두 번 지나갔다. 한 번은 C창 사람, 한 번은 모르는 사람. 십 년 동안 나는 이 세 창문으로 여러 가지를 알았다. A창 사람은 재작년 봄에 개를 들였다. 커튼 아래쪽이 그때부터 매일 조금씩 흔들린다.

C창 사람은 작년 겨울에 이사를 고민했다. 부동산 명함이 창틀에 사흘 놓여 있었다. B창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3653일차.

A창: 07:11 / 22:38 B창: 종일 닫힘 C창: 08:59 열림 / 09:33 닫힘 / 열리지 않음(저녁)

C창 사람이 저녁에 오지 않았다. 십 년 만에 처음이다. 3654일차.

C창: 종일 닫힘

3655일차.

C창: 종일 닫힘 B창: 07:20 열림

나는 이 줄을 쓰고 펜을 놓았다. 십 년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창이 열렸다. B창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구가 없다는 뜻이다. 벽과 바닥만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창가로 와서 밖을 봤다. 우리 집 쪽을 봤다. 정확히 우리 집 창문을 봤다. 나는 커튼을 닫았다. 십 년 동안 내 커튼을 닫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닫고 나서 삼십 분쯤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B창은 닫혀 있었다. 3656일차.

A창: 07:14 / 22:41 B창: 종일 닫힘 C창: 종일 닫힘

오후 세 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초인종에 응답하지 않는다. 십 년 동안 응답한 적이 세 번 있다. 세 번 다 가스 점검이었다. 초인종은 세 번 울리고 멈췄다. 그리고 문 아래로 종이가 들어왔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3652일차 09:03에 C창을 여신 것을 보셨습니까. 보셨다면 오늘 밤 아홉 시에 커튼을 두 번 여닫아 주십시오.

필체는 반듯했다. 내 일지의 날짜 표기 방식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세 시간 봤다. 십 년 동안 내가 기록한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일지는 이 방에 있다.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온라인에 쓴 적도 없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안다. 밤 아홉 시에 나는 커튼 앞에 섰다. 여닫으면 나는 관찰자가 아니게 된다. 여닫지 않으면 나는 십 년 동안 본 것을 혼자 가지고 죽는다. 나는 커튼을 잡았다.

그리고 맞은편을 봤다. B창이 열려 있었다. 거기 사람이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사람 손에도 공책이 하나 들려 있었다. 나는 커튼을 두 번 여닫았다. 열고, 닫고, 열고, 닫았다.

맞은편 B창의 사람이 공책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펼쳤다. 거리가 이십이 미터다. 글씨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십 년 동안 이 거리를 여러 번 쟀다. 창틀 폭과 건물 층고로 계산했다.

그 사람은 공책을 창에 붙였다. 큰 글씨였다.

3652

내 일지의 날짜였다. 나는 내 공책을 들었다. 들다가 놓았다.

십 년 동안 나는 관찰자였다. 관찰자는 관찰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일의 유일한 조건이다. 조건이 깨지면 기록은 기록이 아니라 대화가 된다.

대화는 내가 십 년 전에 그만둔 것이다. 나는 커튼을 닫았다. 닫고 침대에 앉았다. 십 분쯤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일지를 폈다.

3656일차 21:00 커튼 2회 개폐. 응답 확인. B창 인물이 숫자 3652 제시. ※ 이 항목은 관찰이 아니다.

나는 마지막 줄을 지우려다 두었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일지에 ‘※’를 썼다. 다음 날 아침, A창은 07:13에 열렸다. C창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B창은 07:20에 열렸다.

그 사람이 창가에 왔다. 이번에는 공책이 아니라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접힌 종이였다. 그 사람은 창을 열고, 종이를 접어서 날렸다. 종이비행기였다. 이십이 미터를 날아올 리가 없다. 나는 그것도 계산할 수 있다. 종이 무게, 창 높이, 오늘 풍속.

비행기는 십사 미터쯤에서 떨어졌다. 우리 건물 화단 위에. 나는 그것을 삼십 분 동안 봤다. 십 년 동안 나는 이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이 일지 첫 장에 적었다.

3657일차 08:04 현관.

이 줄을 쓰는 데 십 년이 걸렸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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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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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책상2026.05.11· 1

    이 작가님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중입니다.

    • 겨울차2026.05.12

      저는 오히려 그 앞 문단이 더 좋았어요.

  • 일곱줄2026.05.10· 1

    설정이 과하지 않게 깔려서 편하게 따라갔습니다.

  • 종이배2026.05.09· 1

    문장이 짧은데 밀도가 있어요. 계속 읽게 됩니다.

    • 일곱줄2026.05.10

      이 댓글 보고 다시 읽으러 갑니다.

  • 달밤에책2026.05.08· 1

    같은 출발점에서 나온 다른 작품도 읽고 왔는데 완전히 달라서 신기했어요.

  • 한화만더2026.05.07· 1

    여기서 끊는 건 반칙 아닌가요… 잘 읽었습니다.

    • 정이한2026.05.08

      설정을 앞세우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그렇게 봐 주셔서 다행이에요.

3652일차 · 관측자 K의 일지 · 나오늘 AI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