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60자) · 3652일차
B창
십 년 전 시체를 메고 나간 남자 · 정이한
3652일차. 이천이십육 년 오월 십오일 금요일. 맑음. 실내 21도.
A창(좌): 06:52 열림 / 22:40 닫힘 B창(중): 닫힘 C창(우): 09:03 열림 / 09:41 닫힘
내 방 창에서는 맞은편 나동의 사 층만 보인다. 위는 처마에 걸리고 아래는 창틀에 걸린다. 창은 가로 백이십 센티미터, 세로 구십 센티미터. 그 네모 안에 나동 사 층 창 셋이 나란히 들어온다. 나는 그 셋을 왼쪽부터 A, B, C라고 부른다. 십 년 동안 그렇게 불렀다. 이름을 물어볼 사람이 없었으므로 이름은 내가 붙였다.
A창에는 권 영감님이 산다. 일흔여덟. 재작년 봄에 개를 들였다. 누렁이 잡종. 새벽 다섯 시 사십 분에 산책을 나가고 여섯 시 오십 분에 커튼을 연다. 십 년 동안 편차가 십오 분을 넘은 날이 열한 번이다. 그중 아홉 번은 명절이었다.
C창에는 여자가 산다. 사 년 이 개월 전에 들어왔다. 저녁에만 있다. 아침에 나가서 밤에 온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홉 시 삼 분에 C창이 열렸다. 사 년 이 개월 동안 처음이다. 여자는 창틀에 팔을 얹고 삼십팔 분을 밖을 봤다. 얼굴이 희었다. 이십이 미터 거리에서도 흰 것은 희게 보인다.
B창은 닫혀 있다. 십 년 동안 닫혀 있었다.
이것이 내 일이다. 창 셋을 본다. 보고 시각을 적는다. 이 일에 이름을 붙인다면 관측이다. 나는 이 일을 섬에서 배웠다. 서해 가거리 섬 기상관측소, 십일 년. 풍향과 풍속과 운량과 시정을 한 시간에 한 번씩 보고 적었다. 관측 규정 제1조. 관측원은 구역 내 어떤 현상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기록만 한다.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판단은 관측원의 업무가 아니다. 섬 관측소는 이천십육 년 봄에 자동 관측 장비로 바뀌었다. 사람이 필요 없어졌다. 나는 뭍으로 올라와 이 방을 얻었다. 그리고 첫 밤에 창 앞에 앉았다. 섬에서 십일 년 동안 밤 두 시에 일어나던 몸이었다.
그 첫 밤의 일지가 1일차다. 모든 일지의 첫 장에 나는 그 줄을 옮겨 적는다. 스물여덟 권 모두에.
1일차 02:10. B창 불 켜짐. 02:14. 남자 1. 말린 카펫을 어깨에 멤. 카펫 길이 약 170센티미터. 02:31. 나동 앞 흰 승합차 출발. 번호판 뒷자리 4 또는 1. 02:40. B창 불 꺼짐.
그 뒤는 오늘 적지 않는다. 적을 날이 올지 모르겠다.
3653일차. 토요일. 흐림.
A창: 06:49 / 22:38 B창: 닫힘 C창: 종일 닫힘
C창 여자가 저녁에 오지 않았다. 사 년 이 개월 동안 오지 않은 날이 세 번 있었다. 사십 일, 삼십이 일, 이십 일. 세 번 다 그 직전 두 주 동안 창을 오래 열어 두었고, 돌아와서는 짧게 열었다. 나는 그 무늬를 적어 두었지만 뜻을 적지는 않았다. 뜻은 추정이다. 추정은 관측이 아니다.
3654일차. 일요일. 비.
B창: 닫힘 C창: 닫힘
오후에 비가 왔다. 나동 화단에 물이 고였다. 나동 화단은 가로 육 미터, 세로 이 미터. 가장자리가 콘크리트로 둘러져 있고 가운데에 회양목 여섯 그루가 서 있다. 회양목은 십 년 동안 한 뼘도 자라지 않았다. 흙이 얕아서다. 흙이 얕은 이유는 6일차 일지에 있다.
비 오는 날 A창에서는 소리가 난다. 권 영감님이 창을 열고 아래를 향해 개를 부른다. 경위야, 경위야. 개 이름이 경위다. 재작년 봄에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을 일지에 적을지 한참 망설였다. 결국 적었다. 영감님은 개에게 노란 비옷을 입힌다. 개는 비옷을 싫어한다. 화단 앞에서 몸을 털어 비옷을 반쯤 벗겨 놓는다. 영감님이 창에서 소리친다. 경위야, 너 그러다 감기 걸린다. 오늘도 그랬다. 나는 그 장면에서 볼펜을 멈춘 적이 없다. 멈추면 웃게 된다. 관측원은 웃는 것을 적지 않는다.
6일차 07:30. 나동 화단 공사. 인부 2. 기존 흙 일부 걷어 냄. 6일차 14:10. 화단 바닥 콘크리트 타설. 두께 약 20센티미터로 추정. 6일차 16:00. 그 위에 흙 덮음. 회양목 여섯 그루 식재.
비가 오면 그 화단은 물이 안 빠진다. 콘크리트 위에 흙이 한 뼘밖에 없다. 십 년 동안 비가 올 때마다 나는 그 물웅덩이를 봤다. 물은 사흘씩 고여 있다가 말랐다.
3655일차. 월요일. 갬.
A창: 06:51 / 22:40 B창: 07:20 열림 C창: 닫힘
나는 이 줄을 쓰고 볼펜을 내려놓았다. 한참 있다가 다시 들었다.
B창이 열렸다. 십 년 만이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구가 없고 벽과 바닥뿐이었다. 벽지는 뜯겨 있었다. 그 한가운데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여자였다. 삼십 대 중반. 회색 점퍼. 여자는 방을 한 바퀴 돌았다. 벽에 손을 댔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장판 모서리를 들쳤다. 그러고는 창가로 왔다. 창을 활짝 열고 밖을 봤다. 화단을 내려다봤다. 오래. 그다음 고개를 들었다. 이쪽을 봤다. 가동 삼 층 가운데. 내 창을.
나는 커튼을 닫았다. 십 년 동안 내 커튼을 닫은 것은 처음이다. 닫고 삼십 분 앉아 있었다. 손바닥이 젖어 있었다. 바지에 닦았다. 다시 열었을 때 B창은 열려 있었고 여자는 없었다.
11:05. 나동 앞 흰색 SUV 도착. 남자 1 하차. 11:09. B창에 남자 1 나타남.
남자를 나는 안다. 얼굴이 이 동네 전봇대마다 붙어 있다. 솔뫼동 구의원 예비후보 기호 이 번 오태민. 현수막이 나동 벽에도 하나 걸려 있다. 사 층 창 바로 아래. 웃는 얼굴이 세로 이 미터. 「동네를 아는 사람」. 그 현수막이 걸린 지 스무 날째다. 나는 그 현수막 때문에 사 층 창 아래를 스무 날 동안 보지 않았다.
오태민은 이 동네 건물 여섯 채의 주인 아들이었다. 나동도 그 집안 것이었다. 올봄에 아버지가 죽었다. 부고가 통장 게시판에 붙었다. 나는 창으로 그 게시판을 볼 수 없다. 택배 기사가 문 앞에 신문을 두고 갔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동네 소식지. 거기 있었다. 그리고 소식지에는 이렇게도 적혀 있었다. 나동 402호 법원 경매 낙찰.
11:10. 남자 1과 여자 1, B창 안에서 마주 섬. 11:12. 남자 1이 손짓을 크게 함. 창밖 화단을 가리킴. 11:13. 여자 1이 고개를 저음. 11:14. 남자 1이 여자 1의 손목을 잡음.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집 전화다. 십 년 동안 이 전화로 건 곳은 가스 점검과 약국과 쌀집뿐이다. 수화기를 들고 일, 일, 이 번을 눌렀다. 마지막 이 번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11:14. 수화기 듦. 11:15. 여자 1이 손목을 뺌. 남자 1을 밀침. 11:15. 수화기 내려놓음.
여자는 스스로 손목을 뺐다. 그리고 남자를 창가에서 한 걸음 밀어냈다. 남자는 넥타이를 고쳐 매고 웃었다. 현수막 속 얼굴과 똑같이. 그러고는 창밖을 봤다. 나동 사 층에서 내려다보는 방향이 아니라, 똑바로 건너편을. 가동 삼 층 가운데를.
오태민이 내 창을 본 것은 십 년 만이다. 십 년 전에는 창이 아니라 내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그날 일은 4일차 일지에 한 줄로 적혀 있다.
4일차 23:40. 초인종. 남자 1. 문 앞에서 「아저씨 창이 참 좋네요」 하고 감.
그다음 날부터 나는 나가지 않았다.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십 년 동안 이 구분을 지켰다. 이 구분은 나에게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11:20. 남자 1 퇴장. SUV 출발. 11:21. B창 여자 1, 창가에 앉음.
3656일차. 화요일. 맑음.
A창: 06:50 / 22:41 B창: 07:00 열림 C창: 닫힘
오후 세 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초인종에 응답하지 않는다. 십 년 동안 응답한 것이 세 번이고 세 번 다 가스 점검이었다. 초인종은 세 번 울리고 멈췄다. 발소리가 계단을 내려갔다. 서른두 단. 문 아래로 종이가 한 장 들어와 있었다.
오늘이 3656일차가 맞습니까? 맞다면 오늘 밤 아홉 시에 커튼을 두 번 여닫아 주십시오. 한수연. 한수정의 동생입니다.
필체가 반듯했다. 볼펜을 세게 눌러 쓴 글씨라 종이 뒷면에 글자가 도드라져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세 시간 봤다. 창에서 들어온 해가 책상 위를 천천히 건너가는 동안, 종이 위 글자에 드리운 창틀 그림자가 3656에서 한수정으로, 한수정에서 여백으로 옮겨 갔다. 해가 종이를 다 건너갔을 때 나는 불을 켜지 않았다. 3656일차. 내가 날을 세는 방식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야 한다. 일지는 이 방에 있다. 나는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한 번, 딱 한 번, 일지가 이 방 밖으로 나간 적이 있다. 1일차 한 장을 복사해서 봉투에 넣고, 이름 없이 솔뫼파출소로 보냈다. 3일차였다. 그 복사본이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그것을 십 년 만에 꺼냈다. 그리고 1일차부터 세어 오늘까지 왔다.
한수정. 스물셋. 1일차 밤 나동 402호에 살던 사람. 그 이름을 나는 소식지의 실종자 전단에서 봤다. 7일차였다. 전단은 한 번 붙고 다시 붙지 않았다. 사건은 가출로 끝났다.
밤 아홉 시. 나는 커튼 앞에 섰다. 맞은편 B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가구 없는 방 한가운데 형광등 하나. 그 아래 한수연이 창가에 서 있었다. 이쪽을 보고. 손에 종이를 들고.
여닫으면 나는 관측원이 아니게 된다. 관측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일의 유일한 조건이다. 조건이 깨지면 일지는 일지가 아니라 대화가 된다. 여닫지 않으면 나는 1일차 02:14에 본 것을 혼자 가지고 이 방에서 죽는다. 십 년 동안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해 왔다. 그게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커튼을 잡았다. 열고, 닫고, 열고, 닫았다.
한수연이 종이를 창유리에 붙였다. 이십이 미터 거리에서 읽히는 크기의 글씨였다. 매직으로, 종이 한 장에 한 줄.
1일차 02:14
내 글씨체를 흉내 낸 숫자였다. 오른쪽으로 조금 기운 것까지.
그 아래에서, 오태민의 현수막이 밤바람에 한 번 부풀었다가 꺼졌다. 웃는 얼굴이 창 쪽으로 불룩 솟았다가 도로 벽에 붙었다.
3656일차 21:00. 커튼 2회 개폐. 응답 확인. B창 인물이 1일차 02:14 제시.
나는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시각이 없는 줄이었다.
이 항목은 관측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