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63자) · 서하

삼 초식

망각검 · 한도윤

— 서하

망각검은 초식이 스물넷이다.

한 번에 셋까지 가질 수 있다.

넷째를 익히려면 가진 셋 가운데 하나를 버려야 한다.

버린다는 말을 우리는 그냥 쓴다. 정확히 말하면 잊는 것이다.

잊으면 그 초식이 몸에서 빠진다.

빠지면 그 자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어긋난다.

어긋난다는 것은 이렇다.

초식은 손이 아니라 박자다.

하나 · 둘 · 셋 하고 나가는 것이 있고 하나 · 셋 하고 나가는 것이 있다.

박자를 하나 버리면 걸을 때 발이 반 박자 어긋난다.

사흘쯤 어긋나고 그 뒤로는 몸이 맞춘다.

맞추고 나면 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잊는다.

본산은 안개 골짜기에 있다.

기와 전각이 다섯이고 돌계단이 백스무 단이다. 석등이 열둘 서 있다.

안개가 소리를 먹는다. 그래서 여기서는 크게 말한다.

크게 말하는 것이 법도가 됐다.

대전에서는 더 크다.

대전은 외우는 데다.

문하가 여든셋이고, 아침마다 여든셋이 동시에 제 초식을 소리 내어 외운다.

외우는 소리가 벽에 부딪쳐 돌아온다.

바깥에서 들으면 무슨 소린지 모른다. 안에서는 제 소리만 들린다.

그것을 아는 데 나는 두 해가 걸렸다.

대전 뒤에 부엌이 있다.

부엌에서 밥을 펴는 사람이 은금 할머니다.

문하가 아니다. 초식이 없다.

사십 해 동안 여기서 밥을 폈다.

아침에 외우는 소리가 끝나면 부엌에서 주걱 소리가 난다. 여든셋이 그 소리를 듣고 줄을 선다.

할머니는 우리를 이름으로 안 부른다.

밥그릇 수로 부른다.

“열둘아.”

열두 번째로 온 사람이 대답한다.

날마다 순서가 바뀌니 이름이 날마다 바뀐다.

내가 그것을 처음 물어본 것이 열다섯이다.

“할머니, 왜 이름으로 안 부르십니까?”

할머니가 주걱을 놓았다.

“너희 이름을 알면 정이 든다.”

“…정이 들면 안 됩니까?”

할머니가 말했다.

“나가면 안 돌아오는 것들한테 정이 들면 내가 못 산다.”

나는 그 말을 그때 웃어넘겼다.

지금은 안 웃는다.

사십 해면 나간 사람이 얼마인지 나는 세어 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세었을 것이다.

왜 소리 내어 외우는지 나는 열아홉이 되도록 안 물어봤다.

안 물어본 까닭이 있다.

나는 열셋에 한 번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일이 나서 그 뒤로 안 물었다.

무슨 일이 났는지는 대전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나만 안다. 그리고 사형이 안다.

열셋에 나는 넷째를 익히려고 했다.

셋을 가지고 있었다. 일 초식, 삼 초식, 구 초식이다.

구 초식을 버리기로 했다.

버리는 날 아침에 어머니가 골짜기 초입까지 올라왔다.

문하 어머니는 안으로 못 들어온다. 초입에서 만난다.

나는 그날 못 내려갔다.

버리는 자리에 서 있었고, 거꾸로 세고 있었다.

셋 · 둘 · 하나.

놓았다.

놓고 내려가니 어머니가 없었다.

눈이 왔고 초입에 발자국이 있었다. 올라온 것과 내려간 것이 겹쳐 있었다.

그날 저녁에 아래 마을에서 사람이 올라왔다.

어머니가 돌아가는 길에 얼어 죽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대전에서 들었다.

듣고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다.

안 떠올랐다.

그날 아침에 놓은 것이 구 초식인데, 구 초식을 놓은 자리에서 어머니 얼굴도 같이 놓였다.

사형은 그럴 리 없다고 했다.

초식은 박자고 얼굴은 박자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여섯 해 동안 어머니 얼굴을 못 떠올린다.

목소리는 떠오른다. 손도 떠오른다.

얼굴만 없다.

나는 그 뒤로 여섯 해 동안 아무것도 안 버렸다.

삼 초식에서 멈춘 것을 사람들은 내가 게을러서라고 한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무엇이 같이 나갈지 몰라서다.

물어본 것은 그해 겨울이다.

그해 겨울에 내가 넷째를 익히려고 했다.

셋을 가지고 있었다. 일 초식, 삼 초식, 칠 초식이다.

넷째로 십일 초식을 고르고 삼 초식을 버리기로 했다.

버리는 자리는 대전이다. 위패 벽 앞이다.

위패 벽에 위패가 이백 넘게 서 있다. 죽은 문하 것이다.

사형이 옆에 섰다.

“서하야.”

“예.”

“버리기 전에 한 번 해 봐라.”

나는 삼 초식을 해 봤다.

하나 · 둘 · 셋 · 셋.

마지막 셋이 짧다. 그 짧은 데가 삼 초식이다.

사형이 말했다.

“됐다. 이제 잊어라.”

잊는 법은 이렇다.

박자를 거꾸로 센다.

셋 · 셋 · 둘 · 하나.

거꾸로 세고 나면 몸이 그것을 놓는다.

나는 거꾸로 셌다.

셋 · 셋 · 둘 · 하나.

놓았다.

놓는 순간에 발이 어긋났다.

반 박자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사형이 말했다.

“어긋나지.”

“어긋납니다.”

“사흘 간다.”

나는 물었다.

“사형.”

“왜?”

“버린 것은 어디로 갑니까?”

사형이 나를 봤다.

“…없어지지.”

“없어지는 것이 있습니까?”

사형이 대답을 안 했다.

그때 위패 벽에서 소리가 났다.

나무 쪼개지는 소리다.

사형이 그리로 갔다.

위패 하나가 갈라져 있었다.

가운데가 세로로 갈라졌다.

새 위패가 아니었다. 오래된 것이다.

사형이 그것을 들었다.

들고 나를 봤다.

“…서하야.”

“예.”

“너 방금 몇 시에 놓았냐?”

나는 말했다.

“지금입니다.”

사형이 위패를 도로 세웠다.

세우면서 말했다.

“…스무 해 전에도 그랬다.”

나는 물었다.

“무엇이 그랬습니까?”

사형이 말했다.

“누가 버리면 위패가 갈라진다.”

“…”

“한 해에 두엇 갈라진다.”

나는 물었다.

“왜 갈라집니까?”

사형이 말했다.

“모른다.”

나는 그날 밤에 위패 벽 앞에 앉아 있었다.

갈라진 위패를 봤다.

글자가 있었다.

죽은 문하 이름이다.

이름 아래에 초식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 사람이 죽을 때 가지고 있던 셋이다.

삼 초식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일어섰다.

이 사람은 삼 초식을 가지고 죽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삼 초식을 버렸고 이 위패가 갈라졌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물었다.

우리는 왜 소리 내어 외우는가.

— 위패를 지키는 노인

내 일은 위패를 닦는 것이다.

이백스물넷이다.

하루에 스물씩 닦으면 열이틀이 든다. 열이틀마다 한 바퀴 돈다.

닦으면서 세는 것이 있다.

갈라진 것을 센다.

한 해에 둘쯤 갈라진다. 어떤 해는 넷이고 어떤 해는 없다.

갈라지면 붙인다. 아교로 붙인다.

붙인 자국이 남는다. 자국을 세면 그 위패가 몇 번 갈라졌는지 안다.

제일 많이 갈라진 것이 아홉 번이다.

아홉 번 갈라진 것을 나는 삼십 년 동안 아홉 번 붙였다.

붙이는 아교는 내가 쑨다.

쌀풀에 나무 진을 섞는다. 섞는 법을 나한테 가르쳐 준 사람은 앞서 위패를 닦던 노인이다.

그 노인이 죽을 때 나한테 한마디 했다.

“붙이는 것은 고치는 게 아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노인이 말했다.

“자리를 잡아 두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삼십 년 동안 생각했다.

갈라진 위패는 붙여도 금이 남는다.

금이 남은 자리가 다음에 또 갈라진다.

늘 같은 자리다.

그러니 붙이는 것은 다음에 갈라질 자리를 정해 두는 일이다.

나는 그것이 사람하고 같다고 생각한다.

한 번 잃은 사람은 다음에도 같은 데서 잃는다.

이름이 「연」이다. 성은 안 적혀 있다.

백십 해 전 사람이다.

아홉 번 갈라졌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나는 삼십 년 동안 몰랐다.

그해 겨울에 알았다.

서하라는 아이가 삼 초식을 버린 날 밤에 나한테 왔다.

“어르신.”

“왜 왔느냐?”

“위패가 왜 갈라집니까?”

나는 말했다.

“모른다.”

“…삼십 년 닦으셨는데요.”

“닦는 것하고 아는 것은 다르다.”

아이가 다시 물었다.

“어르신은 무엇을 닦으십니까?”

나는 말했다.

“나무를 닦는다.”

아이가 말했다.

“이름을 닦으시는 것 아닙니까?”

나는 걸레를 놓았다.

삼십 년 동안 나는 이것을 나무로 알고 닦았다.

나무로 알아야 닦인다. 이름으로 알면 손이 무거워진다.

“…아이야.”

“예.”

“이백스물넷을 이름으로 알면 하루에 스물을 못 닦는다.”

아이가 말했다.

“몇을 닦으십니까?”

나는 말했다.

“다섯쯤 닦겠지.”

아이가 물었다.

“그럼 스물을 닦으시려고 나무로 아십니까?”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아이가 말했다.

“…저는 다섯이 나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안 했다.

그날 밤에 나는 다섯만 닦았다.

다섯을 닦는 데 스물을 닦는 만큼 걸렸다.

이름을 하나씩 읽으면서 닦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말했다.

“오늘 갈라진 위패에 삼 초식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손을 멈췄다.

“…읽었느냐?”

“읽었습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위패 벽으로 갔다.

갈라진 것을 들어 보였다.

“여기 이름 아래 번호가 셋이다.”

“…예.”

“죽을 때 가지고 있던 셋이다.”

아이가 말했다.

“그중에 삼 초식이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그렇다.”

아이가 물었다.

“제가 삼 초식을 버려서 갈라진 것입니까?”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대신 다른 위패를 들었다.

「연」이다. 아홉 번 갈라진 것이다.

“이걸 봐라.”

아이가 봤다.

이름 아래 번호가 셋이다.

일 · 삼 · 칠이다.

아이가 그 자리에 섰다.

“…제가 가진 셋입니다.”

나는 말했다.

“그렇다.”

아이가 물었다.

“…그럼 아홉 번 갈라진 것은.”

나는 말했다.

“아홉 번 누가 이 셋 가운데 하나를 버렸다는 것이겠지.”

아이가 물었다.

“백십 해에 아홉이면 적습니다.”

나는 말했다.

“적다.”

“…”

“일 초식하고 삼 초식하고 칠 초식은 제일 많이 쓰는 것이다. 한 해에 열은 버린다.”

아이가 물었다.

“그런데 아홉입니까?”

나는 말했다.

“아홉이다.”

아이가 오래 서 있었다.

그리고 물었다.

“어르신, 갈라지는 것이 버릴 때입니까, 주울 때입니까?”

나는 그 물음을 삼십 년 만에 처음 들었다.

아이가 가고 나서 나는 「연」을 무릎에 놓고 오래 앉아 있었다.

백십 해 된 나무다.

나무는 백 해가 넘으면 결이 뜬다. 뜬 결 사이로 손톱이 들어간다.

나는 그 결을 손끝으로 따라가 봤다.

아홉 번 붙인 자리가 다 한 줄에 있었다.

세로로 한 줄이다.

사람으로 치면 등뼈다.

---

나는 그 밤에 처음으로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봤다.

“연.”

안개가 그 소리를 먹었다.

먹었는데 돌아왔다.

돌아온 소리를 나는 한 번 더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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