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74자) · 서하

삼 초식

망각검 · 구슬안

— 서하

망각검은 초식이 스물넷이다⁠.

한 번에 셋까지 가질 수 있다⁠.

네 번째를 익히려면 가진 셋 가운데 하나를 버려야 한다⁠.

버린다는 말을 우리는 그냥 쓴다⁠. 정확히 말하면 잊는 것이다⁠.

잊으면 이 초식이 몸에서 빠진다⁠.

빠지면 이 자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어긋난다⁠.

어긋난다는 것은 이렇다⁠.

초식은 손이 아니라 박자다⁠.

하나 · 둘 · 셋 하고 나가는 것이 있고 하나 · 셋 하고 나가는 것이 있다⁠.

박자를 하나 버리면 걸을 때 발이 반 박자 어긋난다⁠.

사흘쯤 어긋나고 이후로는 몸이 맞춘다⁠.

맞추고 나면 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잊는다⁠.

본산은 안개 골짜기에 있다⁠.

기와 전각이 다섯이고 돌계단이 백스무 단이다⁠. 석등이 열둘 서 있다⁠.

안개가 소리를 먹는다⁠. 그래서 여기서는 크게 말한다⁠.

크게 말하는 것이 법도가 됐다⁠.

대전에서는 더 크다⁠.

대전은 외우는 데다⁠.

문하가 여든셋이고⁠, 아침마다 여든셋이 동시에 제 초식을 소리 내어 외운다⁠.

외우는 소리가 벽에 부딪쳐 돌아온다⁠.

바깥에서 들으면 무슨 소린지 모른다⁠. 안에서는 제 소리만 들린다⁠.

이것을 아는 데 나는 두 해가 걸렸다⁠.

대전 뒤에 부엌이 있다⁠.

부엌에서 밥을 펴는 사람이 은금 할머니다⁠.

문하가 아니다⁠. 초식이 없다⁠.

사십 해 동안 여기서 밥을 폈다⁠.

아침에 외우는 소리가 끝나면 부엌에서 주걱 소리가 난다⁠. 여든셋이 이 소리를 듣고 줄을 선다⁠.

할머니는 우리를 이름으로 안 부른다⁠.

밥그릇 수로 부른다⁠.

“⁠열둘아⁠.⁠”

열두 번째로 온 사람이 대답한다⁠.

날마다 순서가 바뀌니 이름이 날마다 바뀐다⁠.

내가 이것을 처음 물어본 것이 열다섯이다⁠.

“⁠할머니⁠, 왜 이름으로 안 부르십니까⁠?⁠”

할머니가 주걱을 놓았다⁠.

“⁠너희 이름을 알면 정이 든다⁠.⁠”

“⁠…정이 들면 안 됩니까⁠?⁠”

할머니가 말했다⁠.

“⁠나가면 안 돌아오는 것들한테 정이 들면 내가 못 산다⁠.⁠”

나는 이 말을 이때 웃어넘겼다⁠.

지금은 안 웃는다⁠.

사십 해면 나간 사람이 얼마인지 나는 세어 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세었을 것이다⁠.

왜 소리 내어 외우는지 나는 열아홉이 되도록 안 물어봤다⁠.

안 물어본 까닭이 있다⁠.

나는 열셋에 한 번 물은 적이 있다⁠.

이때 일이 나서 이후로 안 물었다⁠.

무슨 일이 났는지는 대전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나만 안다⁠. 그리고 사형이 안다⁠.

열셋에 나는 네 번째를 익히려고 했다⁠.

셋을 가지고 있었다⁠. 일 초식⁠, 삼 초식⁠, 구 초식이다⁠.

구 초식을 버리기로 했다⁠.

버리는 날 아침에 어머니가 골짜기 초입까지 올라왔다⁠.

문하 어머니는 안으로 못 들어온다⁠. 초입에서 만난다⁠.

나는 이날 못 내려갔다⁠.

버리는 자리에 서 있었고⁠, 거꾸로 세고 있었다⁠.

셋 · 둘 · 하나⁠.

놓았다⁠.

놓고 내려가니 어머니가 없었다⁠.

눈이 왔고 초입에 발자국이 있었다⁠. 올라온 것과 내려간 것이 겹쳐 있었다⁠.

이날 저녁에 아래 마을에서 사람이 올라왔다⁠.

어머니가 돌아가는 길에 얼어 죽었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대전에서 들었다⁠.

듣고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다⁠.

안 떠올랐다⁠.

이날 아침에 놓은 것이 구 초식인데⁠, 구 초식을 놓은 자리에서 어머니 얼굴도 같이 놓였다⁠.

사형은 그럴 리 없다고 했다⁠.

초식은 박자고 얼굴은 박자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여섯 해 동안 어머니 얼굴을 못 떠올린다⁠.

목소리는 떠오른다⁠. 손도 떠오른다⁠.

얼굴만 없다⁠.

나는 이후로 여섯 해 동안 아무것도 안 버렸다⁠.

삼 초식에서 멈춘 것을 사람들은 내가 게을러서라고 한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무엇이 같이 나갈지 몰라서다⁠.

물어본 것은 같은 해 겨울이다⁠.

같은 해 겨울에 내가 네 번째를 익히려고 했다⁠.

셋을 가지고 있었다⁠. 일 초식⁠, 삼 초식⁠, 칠 초식이다⁠.

네 번째로 십일 초식을 고르고 삼 초식을 버리기로 했다⁠.

버리는 자리는 대전이다⁠. 위패 벽 앞이다⁠.

위패 벽에 위패가 이백 넘게 서 있다⁠. 죽은 문하 것이다⁠.

사형이 옆에 섰다⁠.

“⁠서하야⁠.⁠”

“⁠예⁠.⁠”

“⁠버리기 전에 한 번 해 봐라⁠.⁠”

나는 삼 초식을 해 봤다⁠.

하나 · 둘 · 셋 · 셋⁠.

마지막 셋이 짧다⁠. 이 짧은 데가 삼 초식이다⁠.

사형이 말했다⁠.

“⁠됐다⁠. 이제 잊어라⁠.⁠”

잊는 법은 이렇다⁠.

박자를 거꾸로 센다⁠.

셋 · 셋 · 둘 · 하나⁠.

거꾸로 세고 나면 몸이 이것을 놓는다⁠.

나는 거꾸로 셌다⁠.

셋 · 셋 · 둘 · 하나⁠.

놓았다⁠.

놓는 순간에 발이 어긋났다⁠.

반 박자다⁠.

나는 이 자리에 섰다⁠.

사형이 말했다⁠.

“⁠어긋나지⁠.⁠”

“⁠어긋납니다⁠.⁠”

“⁠사흘 간다⁠.⁠”

나는 물었다⁠.

“⁠사형⁠.⁠”

“⁠왜⁠?⁠”

“⁠버린 것은 어디로 갑니까⁠?⁠”

사형이 나를 봤다⁠.

“⁠…없어지지⁠.⁠”

“⁠없어지는 것이 있습니까⁠?⁠”

사형이 대답을 안 했다⁠.

이때 위패 벽에서 소리가 났다⁠.

나무 쪼개지는 소리다⁠.

사형이 그리로 갔다⁠.

위패 하나가 갈라져 있었다⁠.

가운데가 세로로 갈라졌다⁠.

새 위패가 아니었다⁠. 오래된 것이다⁠.

사형이 이것을 들었다⁠.

들고 나를 봤다⁠.

“⁠…서하야⁠.⁠”

“⁠예⁠.⁠”

“⁠너 방금 몇 시에 놓았냐⁠?⁠”

나는 말했다⁠.

“⁠지금입니다⁠.⁠”

사형이 위패를 도로 세웠다⁠.

세우면서 말했다⁠.

“⁠…스무 해 전에도 그랬다⁠.⁠”

나는 물었다⁠.

“⁠무엇이 그랬습니까⁠?⁠”

사형이 말했다⁠.

“⁠누가 버리면 위패가 갈라진다⁠.⁠”

“⁠…⁠”

“⁠한 해에 두엇 갈라진다⁠.⁠”

나는 물었다⁠.

“⁠왜 갈라집니까⁠?⁠”

사형이 말했다⁠.

“⁠모른다⁠.⁠”

나는 이날 밤에 위패 벽 앞에 앉아 있었다⁠.

갈라진 위패를 봤다⁠.

글자가 있었다⁠.

죽은 문하 이름이다⁠.

이름 아래에 초식 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 사람이 죽을 때 가지고 있던 셋이다⁠.

삼 초식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일어섰다⁠.

이 사람은 삼 초식을 가지고 죽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삼 초식을 버렸고 이 위패가 갈라졌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물었다⁠.

우리는 왜 소리 내어 외우는가⁠.

— 위패를 지키는 노인

내 일은 위패를 닦는 것이다⁠.

이백스물넷이다⁠.

하루에 스물씩 닦으면 열이틀이 든다⁠. 열이틀마다 한 바퀴 돈다⁠.

닦으면서 세는 것이 있다⁠.

갈라진 것을 센다⁠.

한 해에 둘쯤 갈라진다⁠. 어떤 해는 넷이고 어떤 해는 없다⁠.

갈라지면 붙인다⁠. 아교로 붙인다⁠.

붙인 자국이 남는다⁠. 자국을 세면 이 위패가 몇 번 갈라졌는지 안다⁠.

제일 많이 갈라진 것이 아홉 번이다⁠.

아홉 번 갈라진 것을 나는 삼십 년 동안 아홉 번 붙였다⁠.

붙이는 아교는 내가 쑨다⁠.

쌀풀에 나무 진을 섞는다⁠. 섞는 법을 나한테 가르쳐 준 사람은 앞서 위패를 닦던 노인이다⁠.

이 노인이 죽을 때 나한테 한마디 했다⁠.

“⁠붙이는 것은 고치는 게 아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노인이 말했다⁠.

“⁠자리를 잡아 두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삼십 년 동안 생각했다⁠.

갈라진 위패는 붙여도 금이 남는다⁠.

금이 남은 자리가 다음에 또 갈라진다⁠.

늘 같은 자리다⁠.

그러니 붙이는 것은 다음에 갈라질 자리를 정해 두는 일이다⁠.

나는 이것이 사람하고 같다고 생각한다⁠.

한 번 잃은 사람은 다음에도 같은 데서 잃는다⁠.

이름이 「⁠연⁠」이다⁠. 성은 안 적혀 있다⁠.

백십 해 전 사람이다⁠.

아홉 번 갈라졌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나는 삼십 년 동안 몰랐다⁠.

같은 해 겨울에 알았다⁠.

서하라는 아이가 삼 초식을 버린 날 밤에 나한테 왔다⁠.

“⁠어르신⁠.⁠”

“⁠왜 왔느냐⁠?⁠”

“⁠위패가 왜 갈라집니까⁠?⁠”

나는 말했다⁠.

“⁠모른다⁠.⁠”

“⁠…삼십 년 닦으셨는데요⁠.⁠”

“⁠닦는 것하고 아는 것은 다르다⁠.⁠”

아이가 다시 물었다⁠.

“⁠어르신은 무엇을 닦으십니까⁠?⁠”

나는 말했다⁠.

“⁠나무를 닦는다⁠.⁠”

아이가 말했다⁠.

“⁠이름을 닦으시는 것 아닙니까⁠?⁠”

나는 걸레를 놓았다⁠.

삼십 년 동안 나는 이것을 나무로 알고 닦았다⁠.

나무로 알아야 닦인다⁠. 이름으로 알면 손이 무거워진다⁠.

“⁠…아이야⁠.⁠”

“⁠예⁠.⁠”

“⁠이백스물넷을 이름으로 알면 하루에 스물을 못 닦는다⁠.⁠”

아이가 말했다⁠.

“⁠몇을 닦으십니까⁠?⁠”

나는 말했다⁠.

“⁠다섯쯤 닦겠지⁠.⁠”

아이가 물었다⁠.

“⁠그럼 스물을 닦으시려고 나무로 아십니까⁠?⁠”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아이가 말했다⁠.

“⁠…저는 다섯이 나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이 말에 아무 대꾸도 안 했다⁠.

이날 밤에 나는 다섯만 닦았다⁠.

다섯을 닦는 데 스물을 닦는 만큼 걸렸다⁠.

이름을 하나씩 읽으면서 닦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말했다⁠.

“⁠오늘 갈라진 위패에 삼 초식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이 말에 손을 멈췄다⁠.

“⁠…읽었느냐⁠?⁠”

“⁠읽었습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위패 벽으로 갔다⁠.

갈라진 것을 들어 보였다⁠.

“⁠여기 이름 아래 번호가 셋이다⁠.⁠”

“⁠…예⁠.⁠”

“⁠죽을 때 가지고 있던 셋이다⁠.⁠”

아이가 말했다⁠.

“⁠그중에 삼 초식이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그렇다⁠.⁠”

아이가 물었다⁠.

“⁠제가 삼 초식을 버려서 갈라진 것입니까⁠?⁠”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대신 다른 위패를 들었다⁠.

「⁠연⁠」이다⁠. 아홉 번 갈라진 것이다⁠.

“⁠이걸 봐라⁠.⁠”

아이가 봤다⁠.

이름 아래 번호가 셋이다⁠.

일 · 삼 · 칠이다⁠.

아이가 이 자리에 섰다⁠.

“⁠…제가 가진 셋입니다⁠.⁠”

나는 말했다⁠.

“⁠그렇다⁠.⁠”

아이가 물었다⁠.

“⁠…그럼 아홉 번 갈라진 것은⁠.⁠”

나는 말했다⁠.

“⁠아홉 번 누가 이 셋 가운데 하나를 버렸다는 것이겠지⁠.⁠”

아이가 물었다⁠.

“⁠백십 해에 아홉이면 적습니다⁠.⁠”

나는 말했다⁠.

“⁠적다⁠.⁠”

“⁠…⁠”

“⁠일 초식하고 삼 초식하고 칠 초식은 제일 많이 쓰는 것이다⁠. 한 해에 열은 버린다⁠.⁠”

아이가 물었다⁠.

“⁠그런데 아홉입니까⁠?⁠”

나는 말했다⁠.

“⁠아홉이다⁠.⁠”

아이가 오래 서 있었다⁠.

그리고 물었다⁠.

“⁠어르신⁠, 갈라지는 것이 버릴 때입니까⁠, 주울 때입니까⁠?⁠”

나는 이 물음을 삼십 년 만에 처음 들었다⁠.

아이가 가고 나서 나는 「⁠연⁠」을 무릎에 놓고 오래 앉아 있었다⁠.

백십 해 된 나무다⁠.

나무는 백 해가 넘으면 결이 뜬다⁠. 뜬 결 사이로 손톱이 들어간다⁠.

나는 이 결을 손끝으로 따라가 봤다⁠.

아홉 번 붙인 자리가 다 한 줄에 있었다⁠.

세로로 한 줄이다⁠.

사람으로 치면 등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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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밤에 처음으로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봤다⁠.

“⁠연⁠.⁠”

안개가 이 소리를 먹었다⁠.

먹었는데 돌아왔다⁠.

돌아온 소리를 나는 한 번 더 들었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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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도윤2026.10.09· 1화

    작가 한도윤입니다. 넷째 초식을 익히려면 가진 셋 가운데 하나를 버려야 합니다. 1화를 읽고,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기시겠어요?

  • 새벽세시2026.09.29· 1화

    새 초식을 익힐 때마다 지워지는 기억은 주인공이 고를 수 있나요?

    • 구슬안작가2026.09.30

      못 골라요. 그래서 배울 초식을 고르는 게 곧 무엇을 잃을지 고르는 일이 됩니다.

삼 초식 · 망각검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