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48자) · 열둘 가운데 둘
하나를 더 먹인다
이름을 먹는 드래곤 · 백해원
겨울에 남쪽 들판에 마을이 돋기 시작했다.
탄 자리에는 안 돋았다. 탄 자리를 빼고 돋았다.
첫눈 오던 날에 셋이 돋았다.
섣달에 아홉이 됐다.
정월에 열일곱이 됐다.
돋는 자리를 아는 법은 하나다.
불이 켜진다.
마을이 돋기 전에 그 자리에 불이 하나 켜진다. 아무도 안 켰는데 켜진다.
아셀이 그것을 성벽에서 셌다.
세는 것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저절로 세어졌다.
열일곱이 될 때까지 셌다.
열여덟째부터는 안 셌다.
안 센 까닭은 그때 도성을 떠났기 때문이다.
문서관이 겨울에 도성을 떠났다.
왕궁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남쪽으로 왔다.
서판을 궤에 넣어 지고 왔다.
궤가 둘이었다.
아셀이 그 궤를 받아 들었다.
“…무엇입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호적이다.”
아셀이 물었다.
“…누구 것입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돋은 마을 것이다.”
“…”
“열일곱 마을을 돌면서 적었다.”
아셀이 궤를 열었다.
서판이 백이 넘었다.
한 서판에 서넛씩 적혀 있었다.
이름이 있는 줄이 있고 없는 줄이 있었다.
없는 줄에는 다른 것이 적혀 있었다.
「왼손잡이」
「가락을 안다」
「늦게 온다고 했다」
아셀이 그것을 읽었다.
문서관이 말했다.
“첫날에 서른일곱을 적었다.”
“…”
“지금 백이 넘는다.”
아셀이 물었다.
“…왕궁이 이것을 받습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안 받는다.”
“…”
“어제가 없는 사람은 호적에 못 올린다는 법이 아직 있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이건 무엇입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법이 오기 전까지 이것이 호적이다.”
문서관이 궤에 손을 얹었다.
“법이 오면 이걸 옮겨 적으면 된다.”
“…”
“법이 안 오면 이게 그냥 남는다.”
아셀이 물었다.
“남으면 무엇이 됩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백 해 뒤에 누가 이걸 읽으면 그때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
“그거면 된다.”
아셀이 궤를 닫았다.
닫으면서 물었다.
“…문서관님은 어디 계실 겁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여기 있겠다.”
“…왕궁은요.”
문서관이 말했다.
“열여섯 해 있었다.”
“…”
“거기서 세는 것보다 여기서 세는 것이 낫다.”
아셀이 떠나던 날에 눈먼 노인이 죽었다.
앓다가 갔다.
가기 전에 아셀을 불렀다.
“…댁.”
“예.”
“형이 나왔소?”
아셀이 말했다.
“나왔습니다.”
노인이 물었다.
“어디 있소?”
아셀이 말했다.
“남쪽에 마을이 돋았습니다. 열두 해 전 그 자리에 돋았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불이 켜졌소?”
“켜졌습니다.”
노인이 눈을 감았다.
“…보고 싶소.”
아셀이 아무 말도 못 했다.
노인이 말했다.
“보이지도 않는데 보고 싶다는 말이 우습소.”
아셀이 말했다.
“안 우습습니다.”
노인이 그날 밤에 갔다.
아셀이 노인을 남쪽으로 데려갔다.
마을이 돋은 자리까지 사흘 걸렸다.
가서 묻었다.
묻고 나서 마을 어귀에 앉아 있는데 사람이 나왔다.
예순쯤 된 사내였다.
사내가 물었다.
“…누구 묻었소?”
아셀이 말했다.
“여기 살던 분의 동생입니다.”
사내가 그 자리에 섰다.
“…동생이오?”
“예.”
사내가 물었다.
“…이름이 뭐요?”
아셀이 노인 이름을 말했다.
사내가 그 자리에 앉았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내 동생이오.”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사내가 말했다.
“열두 해 동안 누가 나를 불렀소.”
“…”
“날마다 불렀소. 나는 그 소리를 배 속에서 들었소.”
사내가 물었다.
“…그게 내 동생이었소?”
아셀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사내가 얼굴을 감쌌다.
아셀이 물었다.
“…얼굴을 기억하십니까?”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기억 안 나오.”
“…”
“소리는 아오.”
아셀은 그 마을에서 겨울을 났다.
겨울에 미르가 따라왔다.
미르는 이제 개만 하다.
도성에서 아무도 안 막았다. 열쇠를 가진 셋 가운데 둘이 그만뒀고 셋째는 어디 갔는지 모른다.
도성은 미르를 잃었다.
잃었다고 도성 기록에 적혀 있다. 그렇게 적어 두면 책임이 없다.
미르가 마을 어귀에 앉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처음에는 무서워했다.
열흘쯤 지나니 안 무서워했다.
아이들이 옆에 앉았다.
아이 하나가 아셀한테 물었다.
“…이거 이름이 뭐야?”
아셀이 말했다.
“소리로만 있다.”
“…소리?”
아셀이 소리를 냈다.
길게 넷이다.
아이가 그것을 따라 했다.
첫째가 길고 둘째가 짧고 셋째가 길고 넷째가 제일 짧다.
아이가 두 번 만에 맞췄다.
미르가 목을 들었다.
아이가 웃었다.
“…알아듣네?”
아셀이 말했다.
“알아듣는다.”
그해 봄에 아셀이 그 소리를 마을 사람들한테 가르쳤다.
가르치는 데 사흘이 걸렸다.
스물 몇이 다 냈다.
미르가 하루에 스무 번 제 이름을 들었다.
그 뒤로 미르가 아무도 안 먹었다.
아셀이 그 마을에서 겨울에 한 가지를 더 했다.
밤마다 미르한테 소리를 배웠다.
미르가 짧고 가늘게 내면 아셀이 따라 한다.
맞으면 미르가 코를 벌린다.
틀리면 안 벌린다.
하루에 하나씩 배웠다.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부른다.
부르면 하나가 나온다.
나온 것은 소리다. 소리가 마을 어귀에 남는다.
남은 소리가 저 갈 데를 안다.
사흘쯤 있다가 남쪽으로 간다.
가면 거기 마을이 하나 돋는다.
겨울에 아셀이 아흔둘을 배웠다.
아흔둘을 부르는 데 아흔둘 밤이 들었다.
문서관이 그것을 다 적었다.
적을 때 이름을 안 적었다. 못 적으니까.
대신 이렇게 적었다.
「짐승이 낸 소리 · 아셀이 따라 냄 · 몇 번째」
아흔두 줄이다.
봄에 문서관이 그 궤를 세어 봤다.
“…이백서른이다.”
아셀이 물었다.
“…무엇이 이백서른입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적은 줄이다.”
“…”
“처음에 서른일곱이었다.”
아셀이 그 수를 들었다.
문서관이 말했다.
“남은 것이 삼백 하고 몇이다.”
“…”
“한 해에 아흔둘이면 네 해쯤 걸린다.”
아셀이 물었다.
“…네 해 뒤에는 어떻게 됩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다 나온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미르는요?”
문서관이 붓을 놓았다.
“…작아지겠지.”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미르는 지금 개만 하다.
삼백을 더 뱉으면 무엇이 남는지 아셀은 모른다.
아셀이 그날 밤에 미르한테 물었다.
“…다 뱉으시면 어떻게 되십니까?”
미르가 코를 벌렸다.
한참 있다가 소리를 냈다.
짧게 한 번이었다.
「하나」다.
아셀이 물었다.
“…하나가 남습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무엇이 남습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길게 넷이었다.
제 이름이다.
아셀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것만 남습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말했다.
“그거면 됩니다.”
미르가 목을 들었다.
아셀이 말했다.
“이름이 있으면 부를 수 있습니다.”
“…”
“부를 수 있으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돌아가면서 물었다.
“…그 소리 나도 배울 수 있어?”
아셀이 말했다.
“배울 수 있어.”
아이가 물었다.
“어려워?”
아셀이 말했다.
“하나에 하루 걸려.”
아이가 셈을 했다.
“…삼백이면 삼백 날이네.”
아셀이 말했다.
“그렇지.”
아이가 말했다.
“…둘이 하면 백오십 날이잖아.”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아이가 말했다.
“나도 할래.”
아셀이 물었다.
“…왜?”
아이가 말했다.
“빨리 끝나면 좋잖아.”
아셀이 말했다.
“안 끝나.”
“…왜?”
아셀이 말했다.
“열둘 있다니까.”
아이가 웃었다.
“…그럼 더 해야겠네.”
아셀이 그 아이를 데리고 미르한테 갔다.
미르가 코를 벌렸다.
아이 냄새를 맡았다.
맡고 목을 돌렸다.
아셀이 물었다.
“…이 아이도 안 드십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아이한테 물었다.
“…너 이름 누가 지었어?”
아이가 말했다.
“내가.”
아셀이 웃었다.
여름에 옆 마을에서 사람이 왔다.
“…거기 그 짐승이 있다면서요.”
아셀이 말했다.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물었다.
“…우리 마을에도 없어지는 사람이 있소.”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몇입니까?”
그 사람이 말했다.
“올해 셋이오.”
아셀이 물었다.
“…거기도 짐승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말했다.
“없소.”
아셀이 물었다.
“그럼 누가 먹습니까?”
그 사람이 대답을 못 했다.
아셀이 그 마을에 갔다.
가서 사흘을 있었다.
사흘째 밤에 마을 뒤 언덕에서 소리를 들었다.
길게 넷이었다.
미르가 내던 것과 가락이 같았다.
길이가 달랐다.
아셀이 그 언덕에 올라갔다.
거기 짐승이 하나 있었다.
미르보다 컸다. 소 세 마리쯤이다.
목 아래에 눈이 하나 있었다.
아셀이 그 앞에 섰다.
짐승이 코를 벌렸다.
아셀 냄새를 맡았다.
맡고 목을 돌렸다.
못 먹는 것이다.
아셀이 앉았다.
앉아서 그 소리를 들었다.
길게 넷. 길이가 미르 것과 다르다.
다른 이름이다.
아셀이 그 소리를 외웠다.
외우는 데 이레가 걸렸다.
이렛날 밤에 아셀이 그 소리를 냈다.
짐승이 목을 들었다.
언덕이 울렸다.
짐승이 입을 열었다.
뱉었다.
아셀이 그 소리를 듣고 마을로 내려갔다.
내려가서 마을 사람들한테 그 소리를 가르쳤다.
가르치는 데 사흘이 걸렸다.
돌아오는 길에 아셀이 셈을 했다.
지워진 나라가 열둘이라고 했다.
열둘이면 짐승이 열둘이다.
미르가 하나고 이 언덕 것이 둘이다.
열이 남았다.
아셀이 그 셈을 하고 걸음을 멈췄다.
세는 것이 아니다.
가르칠 데가 열이라는 뜻이다.
마을에 돌아오니 미르가 어귀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옆에 있었다.
아셀이 가서 앉았다.
아이가 물었다.
“…어디 갔다 왔어?”
아셀이 말했다.
“하나 더 있더라.”
“…또 있어?”
“열둘 있단다.”
아이가 물었다.
“그럼 다 가르쳐 줄 거야?”
아셀이 말했다.
“가르쳐 줘야지.”
아이가 물었다.
“왜?”
아셀이 말했다.
“안 부르면 먹으니까.”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미르한테 그 소리를 냈다.
길게 넷이다.
미르가 목을 들었다.
아셀이 그것을 봤다.
하나를 더 먹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