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381자)

향 한 대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진보덕이 부싯돌을 두 번 그었다⁠. 불똥이 향 끝에 붙자 가는 연기가 한 줄로 올라갔고⁠, 진보덕은 불붙은 향을 내 등짐 뚜껑의 놋쇠 향꽂이에 꽂으면서 늘 하던 말을 했다⁠.

“⁠다 타면 열 닢이다⁠. 알겠냐⁠?⁠”

만력 18년 사월 초하루⁠, 진시도 안 된 아침이었다⁠. 청하방 골목은 아직 덜 깨어 있었다⁠. 옆집 만두집 할멈이 찜통 뚜껑을 들 때마다 김이 골목 위로 구름처럼 피었다가 처마 끝에서 흩어졌고⁠, 돼지기름과 생강 냄새가 내 배 속까지 내려왔다⁠. 아침을 굶은 라이더한테는 고문이었다⁠.

우리 가게 이름은 풍운배달이다⁠. 객잔과 만두집 음식을 받아 손님 문 앞까지 나르는 상단인데⁠, 주인 진보덕은 우리를 라이더라고 불렀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냐고 물으면 “⁠빨리 달리는 놈⁠”이라고만 했다⁠. 풍운에 말은 한 마리도 없었다⁠.

가게 벽에는 「⁠한 줄 평⁠」 판이 붙어 있다⁠. 손님이 빈 찜기를 돌려주러 와서 붓으로 한 줄씩 적고 가는 판이다⁠. 「⁠만두는 뜨거움⁠. 라이더는 시끄러움⁠. 별 넷⁠.⁠」 「⁠향이 다 타서 왔는데 웃는 얼굴이 괘씸함⁠. 별 둘⁠.⁠」 둘 다 내 얘기였다⁠. 라이더 열둘이 문간 의자에 붙어 앉아 부름을 기다리는 동안⁠, 장대팔은 허리띠에 꿴 별패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셌다⁠. 짐꾼 출신이라 어깨가 문짝만 하고 입이 걸었다⁠.

“⁠스물아홉⁠. 차돌이 넌⁠?⁠”

“⁠서른하나⁠.⁠”

“⁠거짓말하네⁠. 지난달 거까지 다 합친 거잖아⁠.⁠”

“⁠지난달도 내 달이야⁠.⁠”

“⁠부름 왔다⁠!⁠”

진보덕이 쪽지를 내밀었다⁠. 「⁠취선객잔 동쪽 별채⁠, 위 공자⁠. 만두 스무 개⁠.⁠」

“⁠취선이면 서호 가잖아요⁠. 거긴 요즘 문파들이 통째로 빌려 쓰는데⁠.⁠”

“⁠그러니까 돈이 되지⁠. 무림 대회 끝날 때까지 서호 가 객잔은 칼 찬 손님 천지다⁠. 칼 찬 손님은 배가 빨리 꺼진다⁠. 알겠냐⁠?⁠”

할멈이 찜기 두 층을 묶어 건넸다⁠. 대나무 뚜껑 틈으로 김이 새어 나와 손등이 따끔했다⁠. 나는 찜기를 한 손에 받쳐 들고⁠, 다른 손으로 가게 옆 담장 기왓골을 짚었다⁠.

*

연자삼초수는 제비가 물을 세 번 차고 오르는 모양을 본뜬 경공이다⁠. 지붕 하나에 디딤은 세 번⁠. 처마 끝⁠, 용마루 앞⁠, 반대편 처마⁠. 네 번째를 디디면 기와가 깨지고⁠, 깨지면 배상이다⁠. 사부 육노인한테 배운 것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칼도 주먹도 안 가르쳐 줬다⁠. 도망만 잘하면 사람은 안 죽는다는 게 사부 말이었다⁠.

첫 지붕은 만두집이었다⁠. 처마⁠, 용마루⁠, 처마⁠. 둘째 지붕은 비단 가게⁠, 셋째는 약방이었다⁠. 약방 지붕에는 빗물 받는 항아리가 놓여 있었는데⁠, 뛰어넘다가 수면에 비친 내 꼴을 보고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부스스한 검은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리고 붉은 머리띠를 맸고⁠, 해진 회색 무명옷에 붉은 허리띠⁠, 짚신⁠. 등에는 「⁠풍운배달⁠」 네 글자가 박힌 나무 함⁠, 손에는 김 나는 만두 찜기⁠. 씩 웃는 얼굴이 꼭 만두 훔쳐 달아나는 놈 같았다⁠.

골목 담벼락마다 관아 방이 붙어 있었다⁠. 「⁠남의 기와를 깨뜨린 자는 한 장에 동전 스무 닢을 물린다⁠. 항주부⁠.⁠」 방 옆에는 더 큰 붉은 천이 바람에 펄럭였다⁠. 「⁠서호 비무대회 · 단오 결승 · 호심정⁠」⁠. 강호 문파들이 앞다퉈 항주로 몰려든 까닭이 거기 있었다⁠.

서호가 보이자 바람이 달라졌다⁠. 물 냄새를 실은 바람이 등 뒤 향을 세게 핥았다⁠. 향꽂이 구멍으로 연기가 옆으로 누웠고⁠, 향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바람 부는 날은 향이 빨리 탄다⁠. 진보덕은 그걸 알면서 향을 한 번도 길게 잘라 준 적이 없었다⁠.

멀리 남쪽 호숫가에 뇌봉탑이 보였다⁠. 왜구가 불을 지른 뒤로 처마는 다 타 버리고 시커먼 벽돌 몸통만 남은 탑이다⁠. 항주 사람들은 탑을 보고 시각을 짐작했다⁠. 탑 그림자가 정자사 담에 닿으면 사시였다⁠. 그림자는 아직 담 한참 앞에 있었다⁠.

취선객잔은 이 층짜리 본채 뒤로 별채 셋을 거느린 큰 객잔이다⁠. 동쪽 별채 지붕까지 마지막 지붕 둘⁠. 나는 처마를 딛고⁠, 용마루를 딛고⁠, 반대편 처마를 디디려는데 짚신 바닥이 이끼를 밟았다⁠.

미끄러지는 순간에도 찜기는 수평이었다⁠. 하늘이 한 바퀴 돌고⁠, 처마 끝 풍경이 땡그랑 울고⁠, 마당의 하얀 모래가 얼굴 앞으로 다가오는 동안에도 내 손목은 찜기만 붙들고 있었다⁠. 이건 자랑할 만했다⁠. 문제는 내가 떨어진 자리였다⁠.

*

마당 한가운데 두 사람이 칼을 맞대고 있었다⁠. 하얀 도복에 매화 수를 놓은 젊은 남자 둘이었고⁠, 칼끝 둘이 딱 내 머리 위에서 엇갈렸다⁠. 둘 다 멈췄다⁠. 마당 둘레에 빙 둘러 있던 하얀 도복들이 일제히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비무 위로 떨어졌다⁠.⁠”

“⁠도전이다⁠.⁠”

“⁠아니⁠, 첩자다⁠. 지붕으로 들어왔잖아⁠.⁠”

나는 찜기를 가슴에 안고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풍운배달입니다⁠, 손님⁠. 주문하신 만두 스무 개⁠, 식기 전에 왔습니다⁠. 도전 아니고 배달입니다⁠.⁠”

비무 위를 넘으면 도전이다⁠. 강호에서 그건 젖먹이도 안다⁠. 허락 없이 비무 마당 위를 넘거나 마당 안에 떨어지면⁠, 두 사람한테 한 판 붙자고 한 거나 같다⁠. 물러날 길은 사과뿐이었다⁠. 나는 사과를 길게 했다⁠.

“⁠위 공자 계십니까⁠? 위 공자님 만두입니다⁠.⁠”

하얀 도복들이 서로 얼굴을 봤다⁠. 위 공자라는 사람은 없었다⁠. 칼끝이 내 목 가까이 왔다⁠.

“⁠누가 보냈나⁠?⁠”

“⁠진보덕이 보냈습니다⁠. 향 다 타면 저 열 닢 깎입니다⁠. 제발 빨리 정해 주십시오⁠. 첩자든 배달이든⁠.⁠”

줄 맨 끝에서 머리를 높이 묶은 여자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화산파 도복 소매가 손등을 덮었고⁠, 볼이 동그랬다⁠. 여자는 엄한 얼굴로 내 앞에 버티고 서서 찜기를 낚아챘다⁠.

“⁠독이 들었는지 제가 보겠습니다⁠, 사형들⁠.⁠”

뚜껑이 열리자 김이 확 올랐다⁠. 여자는 만두 하나를 집어 통째로 입에 넣었다⁠. 씹었다⁠. 하나 더 넣었다⁠. 사형들이 숨을 죽이고 여자 얼굴만 봤다⁠. 세 개째에서 사형 하나가 물었다⁠.

“⁠설매야⁠, 독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독은 천천히 퍼지거든요⁠.⁠”

네 개째가 들어갈 때 별채 문이 열렸다⁠.

*

들어온 사람은 흰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린 노도인이었다⁠. 지팡이 대신 칼집을 짚었고⁠, 걸음이 느렸다⁠. 하얀 도복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막내라는 설매는 고개를 숙이면서 찜기를 등 뒤로 감췄다⁠. 볼이 다람쥐처럼 불룩했다⁠.

“⁠결승까지 기름 한 방울 입에 대지 말라 하였소⁠. 송학이 한 말을 화산이 벌써 잊었는가⁠?⁠”

송학 진인이었다⁠. 화산파 장로⁠, 이번 대회 화산 출전자들의 사부⁠. 진인은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짚신에서 눈이 오래 머물렀다⁠.

“⁠지붕으로 온 자는 뉘시오⁠?⁠”

“⁠풍운배달입니다⁠, 도장님⁠. 향 한 대 안에 항주 어디든 갑니다⁠.⁠”

“⁠시킨 자는⁠?⁠”

마당이 조용해졌다⁠. 설매의 귀가 빨개지기 시작했다⁠. 입안의 만두 넷 때문에 대답도 못 했다⁠. 나는 설매 귀를 한 번 보고 대답했다⁠.

“⁠제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옆 객잔 주문입니다⁠.⁠”

설매가 나를 봤다⁠. 고마워하는 눈은 없었다⁠. 남은 만두를 걱정하는 눈이었다⁠.

진인이 무어라 하려는데 머리 위에서 기와 한 장 울리지 않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안 났다는 게 소리였다⁠. 별채 용마루 끝에 남자 하나가 내려앉아 있었다⁠. 검은 비단 옷에 가죽 신⁠, 등에는 붉은 칠을 한 함⁠. 함 옆구리에 「⁠비룡배달⁠」 금박 글자가 햇빛에 번쩍였다⁠.

육반석이었다⁠. 같은 사부 밑에서 같은 죽을 먹고 자란 내 사형⁠. 6년 전 연자관을 떠난 뒤로 비룡표국 표사가 됐다더니⁠, 이제는 비룡배달의 으뜸 라이더라고 했다⁠.

반석은 마당으로 내려와 진인에게 공손히 서찰을 내밀었다⁠.

“⁠비룡배달입니다⁠. 일각 배달⁠. 향 한 대가 아니라 향 한 마디면 닿습니다⁠. 비룡표국이 음식에 손댄 자가 없다는 걸 보증하고⁠, 거처 안을 엿본 라이더가 있으면 표국이 물어 드립니다⁠.⁠”

진인의 눈이 서찰과 내 짚신을 번갈아 오갔다⁠. 길게 볼 일이 아니었다⁠. 진인은 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서찰 끝에 눌렀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화산 거처의 음식은 비룡만 들인다⁠. 다른 배달꾼은 담 안에 발을 들이지 마시오⁠.⁠”

*

비룡과 풍운은 지붕 위에서 따로 마주했다⁠. 반석은 용마루에 한 발로 올라 있었고⁠, 나는 처마 끝에 쪼그려 있었다⁠. 가죽 신 아래 기와는 소리가 안 났다⁠. 내 짚신 아래 기와는 사각사각 울었다⁠.

“⁠짚신⁠, 아직도 남의 지붕에 떨어지냐⁠?⁠”

“⁠사형은 아직도 남의 손님 뺏냐⁠?⁠”

“⁠손님은 빨리 오는 놈 편이다⁠. 풍운은 이달 안에 문 닫는다⁠. 곽 국주가 그렇게 정했어⁠.⁠”

“⁠곽 국주가 정하면 하늘도 그렇게 되나⁠?⁠”

반석은 대답 대신 내 함을 턱으로 가리켰다⁠. 향꽂이에 남은 것은 손톱만 한 재 한 토막이었다⁠. 바람이 불자 재가 떨어졌다⁠.

“⁠늦었네⁠.⁠”

반석이 몸을 날렸다⁠. 기와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빈손으로 지붕을 넘어 돌아왔다⁠. 찜기는 설매 손에 있었고⁠, 돈은 받지도 못했다⁠.

*

풍운 계산대 앞에서 진보덕은 내 향꽂이를 들여다보고 동전 열 닢을 내 품삯 주머니에서 덜어 냈다⁠. 한 닢씩⁠, 소리 나게⁠.

“⁠향 다 탔다⁠. 돈도 못 받았다⁠. 손님은 비룡한테 뺏겼다⁠. 열 닢이면 싸게 먹힌 거다⁠. 알겠냐⁠?⁠”

“⁠사장님⁠, 비무 위로 떨어졌는데 살아 돌아온 것도 쳐 줘야죠⁠.⁠”

“⁠살아 돌아온 건 네 복이고 열 닢은 내 돈이다⁠.⁠”

점심 무렵 담장 너머로 찜기가 하나 날아왔다⁠. 라이더 장대팔이 받아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빈 찜기 바닥에 대나무 별패 다섯 개와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별패는 손님이 만족한 만큼 넣어 주는 대나무 패다⁠. 다섯이면 꽉 찬 것이었다⁠. 쪽지에는 붓글씨가 비뚤배뚤했다⁠. 「⁠돈은 안에⁠. 맛있었음⁠. 다음엔 세 번째 창⁠.⁠」 찜기 바닥 깔개 밑에 은자 한 덩이가 숨어 있었다⁠.

장대팔이 휘파람을 불었다⁠. “⁠누군지 몰라도 손이 크네⁠. 차돌이 너 화산파 첩자 맞지⁠?⁠”

“⁠첩자는 만두를 안 날라⁠.⁠”

진보덕은 은자를 이로 깨물어 보고 나서야 열 닢 가운데 다섯 닢을 돌려줬다⁠. 나머지 다섯은 끝내 안 돌려줬다⁠. 내 머리띠가 찜기 끈에 쓸려 해졌다고 하자⁠, 머리띠는 상단 물건이 아니라 네 물건이라고 했다⁠.

해가 기울 무렵 골목이 시끄러워졌다⁠. 길 건너⁠, 오래 비어 있던 포목점 자리에 사다리가 걸쳐지고 사내 넷이 간판을 들어 올렸다⁠. 검은 바탕에 금박 용 한 마리⁠. 「⁠비룡배달 청하방 지점 · 일각 배달⁠」⁠. 간판 아래서 반석이 팔짱을 끼고 우리 가게를 건너다봤다⁠. 반석 옆에서는 배가 불룩한 사내 하나가 웃고 있었다⁠. 주먹이 내 머리통만 했다⁠. 비룡표국 국주 곽만금이라고⁠, 장대팔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곽만금이 길 건너에서 손나팔을 만들었다⁠.

“⁠진 사장⁠! 장사는 장사고 이웃은 이웃이오⁠. 내일 개업 떡 돌리리다⁠!⁠”

“⁠떡에 향 꽂아서 보내쇼⁠! 다 타기 전에 오나 보게⁠!⁠”

진보덕이 소리쳐 받았지만⁠,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비룡 간판의 금박 용은 우리 가게 문짝보다 컸다⁠.

진보덕은 한참 간판을 올려다봤다⁠. 그러다 향 한 묶음을 꺼내 무릎에 대고 반으로 뚝 꺾었다⁠. 향 가루가 계산대에 쏟아졌다⁠. 붓에 먹을 듬뿍 찍더니 문짝에 큼지막하게 썼다⁠.

「⁠반 시진 배달⁠. 늦으면 돈 안 받음⁠.⁠」

“⁠사장님⁠, 반 시진이면 지금 향 반 토막인데요⁠.⁠”

진보덕이 꺾인 향 한 토막을 내 향꽂이에 꽂았다⁠.

“⁠내일부터 이거다⁠.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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