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206자) · 2024년 12월 3일~4일, 여의도
국회로
이재명의 삶 · 네오
방문이 벌컥 열린 것은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반쯤이었다.
인천의 집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퇴근해 쉬고 있었다. 아내 김혜경이 방으로 뛰어 들어와 말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고 했다. 이재명은 웃었다. 딥페이크겠지, 가짜뉴스겠지 하고 넘기려 했다.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원고를 읽고 있었다. 밤 10시 23분에 시작한 긴급 담화였다. 대통령은 국회를 겨눴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
이어진 문장은 더 길었고, 끝은 한 단어로 내려앉았다.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대통령은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저를 믿어달라.”
실제 상황이었다. 이재명은 민주당 텔레그램 방에 세 글자를 남겼다.
「국회로」
*
밤 10시 40분, 계엄이 선포되고 십칠 분 만에 차가 집을 떠났다. 운전대는 김혜경이 잡았다. 군대가 국회의원을 잡으러 올 수도 있는 밤에, 이재명을 국회 앞까지 데려다준 사람은 아내였다. 차 안에서 이재명은 유튜브 생중계를 켰다. 화면에는 달리는 차 안에 앉은 이재명이 나왔다.
이때 이재명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1980년 광주였다. 여러 장면 가운데 하필 여성 시민군이 확성기로 시민을 부르던 방송이었다. 계엄을 막을 수 있는 힘은 국민밖에 없었다. 국민이 국회를 에워싸야 했다.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의원들을 체포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은 화면 너머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강건하게 지켜낼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보태주십시오. 지금 국회로 와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국회로 와주시라. 저희도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
이날 밤 이재명은 같은 채널에서 계엄군 장병들에게도 말을 건넸다. 여러분이 들고 있는 총칼은 모두 국민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다. 총을 든 사람들도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을 향해서는 선을 그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다.”
밤 10시 50분,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긴급 문자를 보냈다. “지금 즉시 국회 본청으로 모여달라.” 삼 분 뒤 차 안의 생중계에서 이재명은 대통령을 향해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을 배반했다.”
이 생중계를 본 사람은 240만 명이었다. 채널 구독자 107만 명의 두 배가 넘는 사람이 차 안의 화면을 지켜봤다. 그리고 여의도 국회 앞으로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밤 10시 55분, 차가 국회 3문 앞에 섰다. 정문은 경찰이 막고 있었다. 이재명은 차에서 내려 의원회관 뒤편으로 돌았다. 뒤편 담을 넘었다. 담 너머 의원회관에 닿은 뒤에야 이재명은 생중계를 끝냈다.
일 분 뒤, 국회 3문과 4문 사이 담벼락에서는 국회의장 우원식이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예순일곱 살이었고 정장 차림이었다. 우원식은 10시 반쯤 소식을 듣고 한남동 공관을 나섰다. 국회로 바로 달려왔으나 출입문이 경찰에 막혀 있었다. 국회의장이 붙잡히면 계엄 해제를 의결할 본회의를 열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경비가 허술한 뒤쪽으로 돌아가 담을 넘었다.
의원들의 카카오톡 단체방에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경찰 경계가 허술한 출입구가 어디인지, 넘기 좋은 담이 어디인지 서로 알렸다. 밤 11시, 계엄사령관 박안수 육군대장 명의의 포고령 제1호가 발령됐다. 첫 항은 이랬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자정 무렵 국회 상공에 군 헬기 여러 대가 나타났다. 회전날개 소리가 국회 지붕 위를 덮었고, 총을 멘 군인들이 헬기에서 내려 국회 안으로 들어왔다. 보좌진과 당직자들은 본청 입구를 걸어 잠그고, 사무실에서 끌어낸 책상과 의자를 문 앞에 겹겹이 쌓았다.
*
이재명은 곧장 본회의장으로 가지 않았다. 한준호 의원실에 앉아 순번부터 정했다. 자기가 잡혀가면 누가 당을 이끌지, 다음은 누구인지 차례를 매겼다. 대표 권한대행의 순번은 스무 번째까지 내려갔다.
다음 이재명은 국회도서관 옆 숲으로 들어갔다. 비서실장과 한준호 의원이 곁에 있었다. 세 사람은 숲에 몸을 숨긴 채 국회에 도착한 의원이 몇 명인지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계엄 해제를 요구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이 있어야 했다. 이재명이 말했다.
“148명이 모이면 들어가자.”
자정 무렵, 본청에서 우원식 의장의 목소리가 나왔다.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모든 국회의원께서는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주길 바란다.”
0시 40분, 무장한 계엄군이 본회의장 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본청 복도가 소리로 찼다. “특수부대가 진입하려 한다.” “남성 보좌진들 나와주세요.” “본청이 뚫리게 생겼어요.” 보좌진들이 유리문 앞에 바리케이드를 세웠고, 누군가 소화기를 뿌렸다. 흰 가루가 복도에 퍼졌다.
정족수가 찼다는 보고가 숲으로 왔다. 앞에는 길을 살필 척후팀이 서고 뒤에는 경호팀이 붙었다. 이재명은 숲을 빠져나와 의원회관 지하 통로로 뛰었다. 통로 끝이 본청이었다. 새벽 1시 무렵 이재명은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이 안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마주쳤고,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
0시 20분께 우원식 의장이 본회의장 의장석에 앉았다. 본회의장에서는 의원들이 자리에 앉아 개의를 기다렸다. 국민의힘 의원 몇이 들어서자 한 의원이 말했다. “우리가 여기 오는 게 몇 배는 더 힘든겁니다.” 야당 의원들이 손뼉으로 이들을 맞았다.
0시 47분, 우원식 의장이 본회의를 열었다. 결의안은 아직 의석에 오르지 않았다. 의장이 말했다. “절차적 오류없이 해야 하는데, 아직 안건이 안 올라왔다.” 국민의힘 의원석 쪽에서 다그치는 소리가 났다. “빨리 처리하세요.” “뭐 하는 거야 지금.”
국민의힘 의원 다수는 이 시각 본회의장에 없었다. 추경호 원내대표의 소집으로 여의도 중앙당사에 모여 있었다. 본회의장에 들어와 있던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이 말했다. “추경호 원내대표가 의원들 못 들어가게 지금 계속 헷갈리게 하고 있다.”
새벽 1시 1분, 전광판에 숫자가 떴다.
재석 190, 찬성 190.
반대는 한 표도 없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지 두 시간 반 남짓 만이었다. 찬성한 190명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은 18명이었다. 곽규택, 김상욱, 김성원, 김용태, 김재섭, 김형동, 박수민, 박정하, 박정훈, 서범수, 신성범, 우재준, 장동혁, 정성국, 정연욱, 조경태, 주진우, 한지아. 의원들이 손뼉을 쳤다. 책상을 내리치는 의원도 있었다. 우원식 의장이 결과를 선포했다.
“금일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기 바란다. 국회는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
이로써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가 됐다고 우원식은 못 박았다.
헌법 제77조 5항은 한 문장이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세 시간 전 담화에서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라 불린 국회가 이 문장을 집행했다.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당에서도 말이 나왔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였다. “집권 여당으로서 이런 사태가 발생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한동훈은 이어 말했다. “이번 국회의 결정으로 지난 밤에 있었던 위헌위법 계엄 선포는 효과를 상실했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재명은 SNS에 글을 올렸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셔도 된다.” 입장문에는 계엄 선포가 불법이고 위헌이라고 적었다.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와 이 나라의 미래를 지켜내겠다.”
새벽 1시 40분쯤, 이재명은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 앞에 섰다. 몇 시간 전 숲에 몸을 숨겼던 사람이었다.
“친위 쿠데타처럼 3시간도 안 돼 국회에서 진압당했다.”
이재명은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다. 불법과 위헌의 계엄이 오히려 악순환을 끊고 정상 사회로 돌아가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선포할 때까지 이재명은 국회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국민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민주 공화정을 되찾는 길을 함께 걸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
가결 소식을 들고 보좌진들이 계엄군 앞에 섰다. 몇십 분 전 소화기를 뿌리며 유리문을 막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총을 든 군인들을 탓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부터 했다.
“나라 잘 지켜주셔서 감사하고 고생 많으셨다.” “헌법 77조 5항을 지켜달라.” “이만 복귀해달라. 여러분들 반란군 된다.”
계엄군이 국회에서 물러났다. 국회 앞을 메운 시민들이 「윤석열은 물러나라」를 외쳤다. 철수하는 군인들 등 뒤로 야유가 쏟아졌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새벽에 이렇게 밝혔다. “국회에 난입한 수방사 특임대가 우 의장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체포하려는 체포대를 만들어 움직인 게 확인됐다.” 의원실에서 순번을 스무 번째까지 정한 까닭이 이 한 문장에 있었다.
대통령의 해제 발표는 오지 않았다. 새벽 4시, 우원식 의장이 다시 긴급 담화를 내고 해제를 요구했다. 4시 27분께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화면 앞에 섰다.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하여 계엄을 해제할 것입니다.”
대통령은 이 담화에서도 계엄을 반국가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였다고 불렀다. 4시 30분, 국무회의가 해제안을 의결했다. 선포 여섯 시간 만이었다. 국회가 해제를 요구한 지는 세 시간 이십육 분이 지나 있었다. 담화에 사과나 유감은 없었다. 4시 32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말했다. “이번 비상계엄은 친위세력이 일으킨 쿠데타, 실패한 쿠데타에 불과하다.” 4시 44분, 한동훈 대표가 말을 보탰다. “이번 계엄을 건의한 국방부 장관을 즉각 해임하는 등, 책임 있는 모든 관계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더 이상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날이 밝기 전,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비공개 의원총회를 열었다. 결의는 한 줄이었다. 윤 대통령이 즉각 퇴진하지 않으면 즉시 탄핵 절차에 들어간다. 이재명은 입장문에서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명백한 국헌 문란이자 내란 행위라고 불렀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사퇴와 내란죄 수사를 관철하겠다고 했다. 강유정 원내대변인이 시간표를 밝혔다. 가장 빠른 길은 이날 바로 발의해 이튿날 본회의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이날 오후,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첫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두 달 뒤 이재명은 이 밤을 돌아보며 한 문장을 남겼다.
“있을 수 없는 우연이 수없이 겹쳐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출처 · 경향신문, 2024년 12월 3일,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이재명 “윤, 지금부터 대통령 아니다”」 · 경향신문, 2025년 5월 29일, 「〔불법계엄의 밤 이후〕 이재명의 177일···라이브 켜고 “국민들 힘 보태달라” 국회 담 넘어 계엄 해제 주도」 · 경향신문, 2025년 5월 28일, 「〔불법계엄의 밤 이후〕 이준석의 177일」 · 경향신문, 2024년 12월 4일,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국회, 시민·계엄군·경찰 뒤엉켜 ‘아수라장’」 · 서울신문, 2024년 12월 4일, 「‘담 넘는 이재명’ 240만명이 봤다…유튜브·SNS에 생중계된 비상계엄」 · 한겨레, 2025년 2월 11일, 「이재명 “계엄군에 잡힐까봐 국회 숲에 숨어…당 지휘 순서도 정해놔”」 · BBC 코리아, 2024년 12월 4일, 「계엄령: 우원식 국회의장 단독 인터뷰, ‘민주주의 지키겠다는 각오로 담 넘었다’」 · 시사저널, 2024년 12월 4일, 「67세 국회의장이 2m 담 넘었다…쏟아지는 ‘계엄 해제’ 무용담」 · 시사IN, 2024년 12월 4일, 「〔12·3 쿠데타 속보 4〕 윤석열, 6시간 만에 “계엄 해제” ... 사과나 유감 표명 없었다」 · 오마이뉴스, 2024년 12월 4일, 「국회 긴급 본회의, 190명 계엄령 해제 요구 의결」 · 문화일보, 2024년 12월 4일,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선포부터 해제까지 긴박했던 2시간 반」 · 뉴시스, 2024년 12월 4일, 「이재명 ‘위기는 곧 기회’…민주 ‘윤, 계엄해제 절차 이행하라’(종합)」 · 시사저널, 2024년 12월 4일, 「‘우리가 여기 오는 게 몇 배 더 힘든 겁니다’…‘계엄 해제’ 찬성한 국민의힘 의원 누구?」 · 한겨레, 2024년 12월 4일, 「민주 ‘윤 대통령 즉각 퇴진 안 하면 탄핵 돌입’ 의총 결의」 · 대한민국헌법 제77조 제5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