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73자)
내가 운전할게요
正名(정명) · 네오
밤 열 시 반이었다.
이정명은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텔레비전은 켜져 있었고 보고 있지는 않았다. 다음 주 일정이 머릿속에서 굴러다녔다. 화요일에 예산, 목요일에 지역, 금요일에 어디였더라.
김혜원이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왔다.
“지금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있어요.”
그는 눈을 떴다. 아내가 서 있는 자리를 봤다. 문가에서 두 걸음 들어온 자리였다. 그 두 걸음이 이상했다. 아내는 평소에 문가에서 말한다.
“뭐라고?”
“비상계엄이요.”
그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거 딥페이크야.”
“여보.”
“가짜뉴스라니까. 요즘 그런 거 잘 만들어.”
말하면서 그는 자기 목소리를 들었다. 자기 목소리가 자기 말을 안 믿고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정도한이었다. 그는 받자마자 상대가 뭐라고 하기 전에 물었다.
“그거 가짜지?”
“진짭니다.”
“뭐가?”
“비상계엄입니다. 지금 방송에 대통령이 나왔어요. 진짭니다, 대표님.”
그는 전화를 든 채로 일어섰다.
“미쳤네.”
그 말이 그날 밤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문장이었다. 뒤에 사람들이 그 밤의 그를 이야기할 때 침착했다고 했는데, 침착하지 않았다. 그는 미쳤다고 말했고, 그다음에 옷장 문을 열었다가 그냥 닫았다. 무엇을 꺼내려고 열었는지 삼 초 동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국회로 가야 해.”
“지금요?”
“국회가 해제 의결을 해야 돼. 국회가 안 하면 아무도 못 해.”
그는 진성목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성목은 십오 년째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이었다.
“차 준비해.”
“대표님, 저 지금 집인데요. 기사님도 집이고요. 여기서 계양까지—”
“몇 분?”
“삼십 분은 걸립니다. 아니 이 시간이면 사십 분.”
사십 분.
그는 전화를 내렸다. 국회까지는 차로 사십 분이 더 걸린다. 합치면 한 시간 이십 분이다. 계엄사령부가 포고령을 내리고 군이 국회를 봉쇄하는 데 한 시간 이십 분은 필요하지 않다.
그때 김혜원이 현관에서 자기 외투를 집었다.
“내가 운전할게요.”
그는 아내를 봤다.
“기사님 올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어요.”
“당신이?”
“당신은 운전 못 하잖아요. 전화도 해야 되고 방송도 해야 되고.”
그건 사실이었다. 그는 차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열 가지쯤 있었고 그중에 운전은 없었다.
김혜원이 먼저 나갔다. 그는 뒤따라 나가려다 멈췄다. 아내가 대문을 조금만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고, 다시 왼쪽을 봤다.
군인이 있나 보는 거였다.
그 순간에 그는 이 밤이 어떤 밤인지 알았다. 뉴스로 안 게 아니라 아내의 뒤통수로 알았다. 삼십이 년을 같이 산 사람이 자기 집 대문 밖을 저렇게 내다보고 있으면, 그건 나라가 어떻게 된 것이다.
“없어요.”
“그럼 가자.”
차가 출발했다.
김혜원이 운전대를 잡았다. 두 손으로 잡았다. 열 시 십 분 방향으로 정확하게 잡았는데, 그건 이 사람이 지금 아주 조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평소에는 한 손으로 운전한다.
그는 조수석에서 휴대전화를 세워 들었다.
라이브를 켜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나중에 몇 번인가 설명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정치적인 계산으로 알아들었다. 아니었다.
체포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체포되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소리 소문 없이 끌려가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면 사라진 사람은 없었던 사람이 된다. 그래서 켰다. 켜 놓고 있으면 잡혀갈 때 사람들이 본다. 아, 저 사람 잡혀갔구나 하고 안다.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것. 그는 그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열네 살에 배웠다.
화면 속 자기 얼굴이 흔들렸다. 차가 흔들려서였다. 그는 흔들리는 채로 말했다.
“국민 여러분. 저도 아직 현실감이 없습니다.”
목이 말랐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마이크에 들어갔다.
“꿈같습니다. 이 나라에서 비상계엄이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꿈이 아닙니다. 지금 실제 상황입니다.”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삼천. 만. 사만. 십만.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군이 국회를 막을 겁니다. 국회의원들을 체포할 겁니다.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십만.
“국민 여러분. 국회로 와 주십시오.”
말하고 나서 그는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자기가 지금 무슨 부탁을 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밤 열한 시에, 군인이 있는 곳으로, 맨몸으로 와 달라고 한 것이다.
“늦은 시간인 거 압니다. 위험한 거 압니다. 그래도 와 주십시오. 이 나라를 국민이 지켜 주셔야 합니다. 저희도 목숨 걸고 지키겠습니다.”
옆에서 소리가 났다.
숨을 삼키는 소리였다. 그는 화면을 보고 있어서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다. 두 번째 소리에 알았다. 아내가 울고 있었다.
소리를 안 내려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 숨이 딸꾹질처럼 튄다. 어깨가 한 번씩 올라갔다 내려왔다. 운전대는 그대로 열 시 십 분이었다.
그는 화면을 내려놓지 않았다. 내려놓으면 이십만 명이 아내가 우는 걸 듣게 된다.
빨간불에서 차가 섰다. 아내가 손등으로 얼굴을 한 번 훔쳤다. 그리고 파란불에 다시 출발했다. 그 밤에 그 차는 신호를 다 지켰다. 나중에 그는 그게 제일 이상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나라에 계엄이 떨어진 밤에 신호를 지키면서 국회로 갔다.
국회 앞은 막혀 있었다.
경찰버스가 가로로 서 있었고 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정문으로는 못 들어간다는 게 이백 미터 밖에서 이미 보였다.
“저 위에 세워.”
“어디로 들어가려고요?”
“담.”
김혜원이 그를 봤다. 얼굴이 젖어 있었다.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는 문을 열었다. 내리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하려고 했는데 안 나왔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먼저 왔고 말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말을 못 하고 내렸다. 문이 닫혔다. 그게 그 밤에 부부가 마지막으로 서로를 본 순간이었다. 다시 보게 될지 그때는 몰랐다.
담벼락은 사람이 없는 쪽으로 돌아가서 찾았다.
높지 않았다. 예순한 살의 몸이 넘기에는 높았지만, 넘어야 하는 이유에 비하면 낮았다. 누가 밑에서 발판을 만들어 줬다.
그는 오른손으로만 담 위를 잡았다.
왼쪽 손목은 체중을 못 받는다. 사십오 년째 그렇다. 그는 그것을 남에게 설명해 본 적이 없다. 설명하면 다음부터는 그것부터 보이기 때문이다. 왼팔은 팔꿈치를 걸쳤다.
몸이 안 올라갔다. 팔에 힘이 빠졌다.
밑에서 누가 그의 발바닥을 아주 세게 밀어 올렸다. 그는 담 위로 올라갔고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졌다. 무릎을 찧었다. 일어나서 돌아봤을 때 담 너머에는 사람 머리들만 보였다. 누가 밀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에 그는 그 사람의 이름을 못 물었다. 지금도 모른다.
경내는 어두웠다.
나무 사이로 걸었다. 헬기 소리가 났다. 헬기가 내려앉는 소리는 텔레비전에서 듣던 것과 달랐다. 공기가 밀린다. 나뭇잎이 한꺼번에 뒤집힌다.
그는 나무 뒤에 잠깐 서 있었다.
그때 담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소리였다. 처음에는 웅웅거리다가, 조금씩 커졌다. 한 덩어리로 커졌다. 무슨 말인지는 안 들렸는데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은 들렸다.
그가 이십 분 전에 부른 사람들이었다.
그는 나무를 짚고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 왼손으로는 못 짚어서 오른손으로 짚었다.
아, 희망이 있구나.
그 생각을 그때 했다. 정확히 그 문장으로 했다.
본청까지는 지하통로로 갔다. 조명이 반만 켜져 있었다. 앞에서 누가 뛰었고 그도 뛰었다. 무릎이 아팠다. 아까 담에서 찧은 자리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계단을 올라 본회의장 문을 열었을 때 안에는 예순몇 명이 있었다. 백오십이 필요했다.
문이 열릴 때마다 하나씩 둘씩 들어왔다. 잠옷 위에 코트만 걸친 사람, 구두 한 짝이 없는 사람. 구두 없는 사람이 옆자리한테 말했다.
“나 이거 담 넘다 빠졌어.”
“그거 나중에 역사에 남습니다.”
“남으라고 해. 나는 살고 봐야지.”
웃는 사람은 없었는데 몇 명이 어깨를 흔들었다. 사람이 무서웠다가 풀리면 웃음이 그렇게 나온다. 소리는 안 나고 몸만 흔들린다.
새벽 한 시 삼 분에 숫자가 떴다.
재석 백구십. 찬성 백구십. 반대 없음.
사무처 직원이 서류철을 안고 통로를 내려왔다. 손이 떨려서 모서리가 의자 등받이에 두 번 부딪혔다. 부딪히고 나서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이런 밤에도 사람은 죄송하다고 한다.
“대표님. 여기 서명 부탁드립니다.”
발의자 명부였다.
이름 적는 칸이 세로로 죽 있었고 위에서부터 채워져 있었다. 글씨체가 다 달랐다. 급하게 쓴 것, 반듯하게 쓴 것, 두 번 덧그은 것. 잉크가 번진 칸도 있었다. 손에 땀이 났던 사람일 것이다.
그는 오른손으로 펜을 받았다.
왼손으로 종이를 누르려다 말았다. 손바닥을 붙이려면 팔꿈치를 들어야 하고, 팔꿈치를 들면 어깨가 따라 올라간다. 그러면 사람들이 본다. 본 사람은 묻지 않는다. 묻지 않는 대신 기억한다.
그는 팔꿈치를 들지 않았다. 손등 바깥쪽으로 종이를 눌렀다. 오래 해 온 방식이었다.
이. 정. 명.
이 초였다.
명부를 돌려주기 전에 그는 자기가 쓴 글씨를 한 번 봤다. 획이 안 흔들렸다. 담을 넘고 무릎을 찧고 세 시간 동안 심장이 뛰었는데 그 세 글자만 안 흔들렸다.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아직 캄캄했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라이브는 아직 켜져 있었다. 아까 담을 넘을 때 주머니에 넣은 채였다. 화면이 온통 까맸고, 그 까만 화면을 아직도 몇 만 명이 보고 있었다.
그는 통화 목록에서 아내를 눌렀다.
한 번 만에 받았다.
“여보.”
“…네.”
“나야.”
아내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숨소리만 났다. 그는 기다렸다.
“어디예요?”
“국회. 끝났어. 해제됐어.”
또 아무 말이 없었다.
“당신 어디 있어?”
“차에요.”
“거기 그대로 있었어?”
“…네.”
세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세워 둔 차 안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대신 왼손목을 폈다 굽혔다 해 봤다.
오늘도 안 굽었다. 사십오 년 동안 한 번도 안 굽었다.
이름 석 자를 쓰는 데 이 초. 손이 알아서 간다. 사람은 자기 이름을 쓸 때 글씨를 쓰는 게 아니라 손을 놓는 것이다.
전에는 이 초가 아니었다.
전에는 훨씬 오래 걸렸다.
남의 이름은 원래 오래 걸린다. 손이 외우질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