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429자)

연회 주방

저주받은 공녀의 전속 요리사 · 소예담

떠나는 아침⁠, 그레타는 금 간 소금 단지를 루치오의 가슴에 탁 밀었다⁠. 단지가 묵직했다⁠. 삼끈을 풀어 보니 회색빛 도는 굵은 소금이 가득 차 있었다⁠. 살레르 소금보다 알이 작고⁠, 바위 냄새가 났다⁠.

“⁠얼음골 우물 첫 솥이다⁠.⁠” 그레타가 말했다⁠. “⁠영주가 한 줌 떼어 보냈다⁠. 공녀님 국에 넣으라고⁠.⁠”

루치오는 소금 한 알을 집어 혀에 올렸다⁠. 짰고⁠, 차가운 돌 맛이 났고⁠, 끝에 아주 조금 단맛이 돌았다⁠. 혀뿌리는 따뜻했다⁠.

“⁠좋은 소금이에요⁠.⁠”

“⁠북부 소금이니 좋지⁠. 남쪽 놈 혀에도 맞냐⁠?⁠”

“⁠맞아요⁠.⁠”

그레타가 고개를 끄덕이고 핀의 등을 밀었다⁠. 핀이 앞치마를 두르고 보따리를 멘 채 루치오 옆에 섰다⁠.

“⁠막내는 데려가라⁠. 왕도 주방에서 네 놈 칼 갈아 줄 놈은 있어야지⁠. 나는 안 간다⁠. 내가 주방 비우면 대공 나리가 굶어⁠.⁠”

“⁠주방장님⁠.⁠”

“⁠가⁠.⁠” 그레타가 돌아섰다⁠. 국자를 든 손이 앞치마 자락을 쥐었다 놓았다⁠. “⁠가서 마마 딸 국 끓여⁠. 왕도 놈들 앞에서 맛없게 끓이면 돌아오지 마라⁠.⁠”

썰매 셋이 고개를 내려갔다⁠. 대공의 기사들이 고개 아래 마을까지 따라왔고⁠, 거기서 강배로 갈아탔다⁠. 겨울 강은 가장자리만 얼어 있었고 한가운데로 검은 물이 빠르게 흘렀다⁠. 재상은 왕의 사자와 함께 하루 먼저 떠나 있었다⁠. 엘리시아는 강배 뒤쪽 선실에 들었고⁠, 오렌이 이 문 앞에 섰다⁠. 상단 행수는 짐칸에 묶여 실렸다⁠.

사흘째 밤이었다⁠. 루치오는 선실 옆 작은 화덕에서 엘리시아의 저녁 국을 끓이다가 짐칸 쪽에서 사람 넘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짐칸 문을 열자 등잔 하나가 바닥에 굴러 있었다⁠. 뱃사공 옷을 입은 사내가 칼을 쥐고 행수 위에 올라타 있었고⁠, 오렌이 이 사내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오렌의 옆구리 붕대에 다시 피가 번지고 있었다⁠.

사내가 오렌을 밀치고 뱃전으로 뛰었다⁠. 검은 강물에 몸을 던졌다⁠. 물소리가 한 번 나고 그쳤다⁠. 행수가 묶인 채 바닥에서 덜덜 떨었다⁠.

“⁠재상 각하가⁠.⁠” 행수가 이를 딱딱 부딪쳤다⁠. “⁠스무 날 길이라고 했지⁠. 나는 그 길 위에서 죽을 거였어⁠.⁠”

“⁠안 죽었잖아요⁠.⁠” 루치오가 행수의 묶인 손목을 풀어 앞으로 다시 묶어 주었다⁠. “⁠내일 아침 국 드세요⁠. 말 안 하셔도 드려요⁠.⁠”

오렌이 짐칸 벽에 기대 옆구리를 눌렀다⁠. 붕대 위로 피 젖은 허리띠가 보였다⁠. 칼 구멍과 버클 구멍이 나란히 나 있었다⁠.

“⁠검사 두 그릇⁠.⁠” 오렌이 말했다⁠. “⁠아까 못 먹었다⁠.⁠”

*

왕도는 냄새로 먼저 왔다⁠. 강배가 마지막 굽이를 돌자 강바람에 섞여 탄 기름과 썩은 채소와 향신료와 수만 개의 굴뚝 연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북부의 공기는 차고 비어 있었는데 왕도의 공기는 따뜻하고 가득 차 있었다⁠. 루치오는 뱃전에 서서 이 냄새를 맡았다⁠. 열 해 동안 한 번도 맡지 않은 냄새였다⁠. 등 한가운데가 당겼다⁠.

핀이 루치오의 옆에서 코를 막았다⁠.

“⁠여기 사람들은 이걸 매일 맡아요⁠?⁠”

“⁠매일 맡으면 안 나⁠.⁠”

“⁠요리사님은 나세요⁠?⁠”

“⁠나⁠.⁠”

왕궁은 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있었다⁠. 흰 돌 성벽 위로 금빛 지붕이 겹겹이 올라갔다⁠. 엘리시아는 왕궁 서쪽 손님 궁으로 안내되었다⁠. 가마에 오르기 전 루치오를 돌아봤다⁠. 털망토 대신 남쪽 비단 외투를 걸쳤는데⁠, 이 외투가 엘리시아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오늘 밤 연회예요⁠.⁠” 엘리시아가 말했다⁠. “⁠내 접시는 당신이 내요⁠.⁠”

“⁠네⁠.⁠”

“⁠숟가락 있죠⁠?⁠”

루치오는 앞치마 주머니를 눌러 보였다⁠. 은숟가락의 단단한 모양이 손바닥에 잡혔다⁠.

*

왕궁 연회 주방은 열 해 전 그대로였다⁠. 아치형 천장 아래 화덕 열둘이 두 줄로 늘어섰고⁠, 구리 냄비 수백 개가 벽에 걸려 화덕 불빛을 되쏘았다⁠. 요리사 마흔 명이 이 사이를 뛰어다녔다⁠. 고함과 칼질 소리와 기름 튀는 소리가 천장에 부딪혀 쏟아졌다⁠. 루치오는 문간에 서서 이 소리를 들었다⁠. 귀가 먼저 기억했다⁠. 열아홉 살 겨울에 들은 소리와 한 음도 다르지 않았다⁠.

연회 주방장이 다가왔다⁠. 배가 앞치마를 팽팽하게 밀어냈고 팔뚝에 화상 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루치오를 위아래로 훑고 코웃음을 쳤다⁠.

“⁠재상 각하께서 보내신 북부 공녀의 요리사가 너냐⁠? 대공비 소스를 낸 막내⁠.⁠” 연회 주방장이 큰 소리로 말했다⁠. 주방의 칼질 소리가 한 박자 끊겼다⁠. 마흔 명이 루치오를 봤다⁠. “⁠살아서 이 주방에 다시 들어오다니 배짱이 좋구나⁠.⁠”

“⁠공녀님 접시만 내면 됩니다⁠.⁠”

“⁠공녀 접시는 왕의 식탁에 오른다⁠. 왕의 식탁 접시는 전부 이 주방에서 나간다⁠. 네가 따로 끓일 화덕은 없어⁠.⁠” 연회 주방장이 턱으로 주방 안쪽을 가리켰다⁠. “⁠셋째 화덕⁠. 둘째 접시 소스⁠. 왕의 식탁 몫이다⁠. 재상 각하께서 네 자리를 거기로 정하셨다⁠.⁠”

세 번째 화덕⁠. 루치오는 그쪽을 봤다⁠. 화덕 위에 넓적한 소스 냄비가 걸려 있었고⁠, 이 옆 선반에 버터 단지와 샬롯 바구니와 붉은 포도주 병이 놓여 있었다⁠. 열 해 전 서 있던 자리였다⁠. 바닥 돌 한 장이 깨져 있었는데⁠, 이것도 이때 그대로였다⁠.

연회 주방장이 두어 걸음 가다 돌아섰다⁠.

“⁠왕궁 법은 알지⁠? 왕의 식탁에 끼얹는 소스는 끼얹는 놈이 먼저 맛본다⁠. 네 혀로 간을 보고⁠, 네 혀로 독이 없다는 걸 보증하는 거다⁠. 열 해 전에도 그랬지⁠. 너는 그날도 맛을 봤을 거다⁠.⁠”

“⁠봤습니다⁠.⁠”

“⁠그런데도 대공비 마마가 쓰러지셨지⁠.⁠” 연회 주방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 네 혀가 형편없다는 거다⁠.⁠”

루치오는 입을 열지 않았다⁠. 열 해 전 이날도 끼얹기 전에 맛을 봤다⁠. 뜨거운 소스 속에서 졸인 포도주의 단맛이 혀를 덮었고⁠, 열아홉이었고⁠, 이 서늘한 맛을 이때 처음 만났다⁠. 그래서 몰랐다⁠. 주방장이 냄비를 엎은 뒤 식은 바닥을 핥고서야 혀뿌리가 식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처음부터 알 것이다⁠.

연회 주방장이 덧붙였다⁠.

“⁠아⁠, 그리고⁠. 오늘 아침 왕도 법정 창고에서 북부에서 압수해 온 통 셋을 열었다더군⁠. 법정 서기가 둘이나 토했다⁠. 생선 썩은 물이었다나⁠.⁠” 연회 주방장이 루치오를 곁눈질했다⁠. “⁠재상 각하 기분이 아주 좋으시다⁠.⁠”

핀이 루치오 뒤에서 웃음을 참느라 기침을 했다⁠.

*

세 번째 화덕 앞에 서자 옆 화덕에서 반죽을 치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왕궁 주방의 흰 앞치마를 둘렀는데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은 팔에 밀가루가 하얗게 붙어 있었다⁠. 마타였다⁠.

마타의 얼굴은 북부에서보다 홀쭉했다⁠. 눈 밑이 검었다⁠. 마타는 루치오를 보고 반죽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손이 계속 움직였다⁠. 반죽을 접고⁠, 누르고⁠, 접었다⁠.

“⁠살아 계셨네요⁠.⁠” 루치오가 말했다⁠.

“⁠아들이 나왔어⁠.⁠” 마타가 반죽에 대고 말했다⁠. “⁠빚 감옥에서⁠. 재상 댁에서 일한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은⁠.⁠” 마타의 손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레타는⁠?⁠”

“⁠주방 지키세요⁠. 마타 씨 앞치마 아직 안 버리셨어요⁠.⁠”

마타가 반죽 위로 고개를 떨궜다⁠. 반죽 위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이것을 반죽 속에 접어 넣었다⁠.

“⁠도망쳐⁠.⁠” 마타가 아주 작게 말했다⁠. “⁠그 냄비 앞에서⁠. 오늘은 내가 넣은 거 아니야⁠. 나는 오늘 과자 반죽만 해⁠. 그 버터는 아침에 재상 댁 시종장이 직접 가져다 놨어⁠.⁠”

루치오는 선반의 버터 단지를 봤다⁠. 왕궁 문장이 찍힌 흰 도자기 단지였다⁠. 뚜껑을 열자 버터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풀 냄새가 하나도 없었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은숟가락을 꺼냈다⁠. 손잡이 끝의 서리 눈꽃이 화덕 불빛에 반짝였다⁠. 숟가락 끝으로 버터를 조금 떠서 혀에 올렸다⁠.

남쪽 버터의 기름진 맛이 혀를 덮었다⁠. 그리고 넘어간 뒤⁠.

혀뿌리가 얼었다⁠. 식은 쇠에 묻은 꿀⁠. 열 해 전 냄비 바닥에서 핥은 것과 같았다⁠. 같은 화덕⁠, 같은 냄비⁠, 같은 단지⁠, 같은 맛⁠.

핀이 옆에서 루치오의 얼굴을 봤다⁠.

“⁠요리사님⁠.⁠”

“⁠응⁠.⁠”

“⁠있어요⁠?⁠”

“⁠있어⁠.⁠”

루치오는 숟가락을 입에서 뺐다⁠. 화덕 불이 냄비 바닥을 데우고 있었다⁠. 두 번째 접시는 남쪽 소스를 끼얹은 송아지 구이였다⁠. 버터 없이는 이 소스를 만들 수 없었다⁠. 왕의 식탁에 오르는 두 번째 접시⁠, 공녀의 자리에도 같은 접시가 놓인다⁠. 공녀가 이 소스를 먹으면 왕과 대신들과 셋째 왕자 앞에서 검은 서리를 토한다⁠. 판정을 받은 북부 후계가 왕도의 연회에서 저주받은 몸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이 소스를 낸 손은 열 해 전 대공비의 소스를 낸 이 손이다⁠.

내지 않으면 왕의 연회를 거역한 요리사가 된다⁠. 그러면 연회 주방장이 다른 요리사에게 같은 단지로 같은 소스를 만들게 할 것이다⁠. 공녀는 그래도 이 접시를 받는다⁠.

“⁠핀⁠.⁠” 루치오가 말했다⁠. “⁠내 보따리에 소금 단지 있지⁠. 가져와⁠. 그리고 저쪽 기름 선반에 남쪽 올리브기름 병 하나만 몰래 집어 와⁠.⁠”

“⁠버터 말고요⁠?⁠”

“⁠버터 말고⁠.⁠”

핀이 뛰어갔다⁠. 루치오는 버터 단지 뚜껑을 닫고 냄비를 화덕에서 내렸다⁠. 샬롯 바구니를 끌어당겨 칼을 쥐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떨리지 않았다⁠.

연회장 쪽에서 종이 울렸다⁠. 첫 접시가 나간다는 종이었다⁠. 주방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요리사들이 접시를 들고 줄지어 연회장 문으로 나갔다⁠. 연회 주방장이 고함을 질렀다⁠. 두 번째 접시 준비⁠, 소스는 종 세 번에 끼얹는다⁠.

핀이 소금 단지와 기름병을 안고 돌아왔다⁠. 루치오가 기름병 마개를 따서 냄새를 맡고 손가락으로 찍어 혀에 댔다⁠. 올리브의 쌉싸름한 풀 맛⁠. 혀 안쪽은 끝까지 따뜻했다⁠. 냄비를 다시 화덕에 올렸다⁠. 올리브기름을 냄비 바닥에 얇게 두르고⁠, 다진 샬롯을 쏟았다⁠. 기름이 터지며 샬롯이 투명하게 익어 가는 단내가 올라왔다⁠. 얼음골 소금을 손가락 세 개로 집었다⁠. 버터 없이 소스가 버틸지 루치오도 몰랐다⁠. 졸인 포도주가 기름과 갈라지지 않게 하려면 쉬지 않고 저어야 했다⁠. 핀이 숨을 죽이고 이 손을 지켜봤다⁠.

이때 주방 문이 열렸다⁠.

마흔 명의 고함이 한 사람 앞에서 잦아들었다⁠. 재상이 문간에 서 있었다⁠. 연회 복장이었다⁠. 남색 비단에 금실을 두른 외투를 입었고⁠, 가는 손가락에 반지 하나를 끼고 있었다⁠. 연회 주방장이 숙이는 고개를 지나쳐 화덕 사이로 걸어왔다⁠. 걸음이 느렸다⁠. 세 번째 화덕 앞에서 멈췄다⁠.

재상은 화덕에서 내려졌다 다시 올라간 냄비를 봤다⁠. 닫힌 버터 단지를 봤다⁠. 루치오의 손에 쥐인 올리브기름 병을 봤다⁠. 그러더니 웃음을 머금었다⁠.

“⁠생선 젓국은 잘 받았네⁠.⁠” 재상이 말했다⁠. “⁠법정 서기 둘이 아직 앓아누웠지⁠.⁠”

“⁠최상품이에요⁠.⁠”

“⁠그렇다더군⁠.⁠” 재상이 냄비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손가락에 묻은 것을 보지도 않고 손수건에 닦았다⁠. “⁠여기가 자네가 열아홉 살에 서 있던 자리지⁠. 그날 나는 이 문간에서 자네 손을 봤네⁠. 아주 좋은 손이었어⁠. 소스를 한 번도 태우지 않았지⁠.⁠”

종이 다시 울렸다⁠. 두 번째 접시였다⁠. 연회장 문이 열리며 음악 소리와 수백 명의 웃음소리가 주방까지 밀려들었다⁠. 이 소리 너머 어딘가 왕의 식탁에 엘리시아가 앉아 있었다⁠. 남쪽 비단 외투를 입고⁠, 셋째 왕자 옆에서⁠, 빈 접시를 앞에 두고⁠.

재상이 버터 단지 뚜껑을 열어 루치오 앞으로 밀었다⁠. 창백한 버터가 화덕 불빛에 번들거렸다⁠.

“⁠왕의 식탁 둘째 접시일세⁠. 왕궁의 버터로⁠, 왕궁의 소스로⁠.⁠” 재상이 부드럽게 말했다⁠. “⁠끼얹게⁠, 요리사⁠. 공녀가 기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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