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215자)
식은 쇠 맛
저주받은 공녀의 전속 요리사 · 소예담
대공성 주방 앞마당에 선 요리사 서른 명이 모두 같은 냄새를 풍겼다. 버터를 녹이고 양파를 볶고 크림을 졸인 냄새였고, 이 냄새가 영하의 공기에 얼어 마당 위에 낮게 깔려 있었다. 루치오 벨라는 줄 맨 끝에서 코를 한 번 훌쩍이고 겨드랑이에 낀 소금 단지를 고쳐 안았다. 금이 세 줄 간 오지 단지였고, 금 간 자리마다 삼끈이 칭칭 감겨 있었다.
앞에서 누가 국을 뱉는 소리가 났다.
“퉤. 다음.”
주방 문턱에 선 노파가 숟가락을 행주에 닦았다. 키는 루치오의 어깨에도 안 닿았는데 팔뚝은 루치오의 허벅지만 했다. 대공성 주방장 그레타였다. 이 앞에서 왕도에서 왔다는 요리사가 은빛 조끼를 여미며 항의했다.
“그건 왕실 연회에 올라가는 수프요.”
“그럼 왕실 연회에 올려. 우리 공녀님은 그 왕실 수프를 석 달째 토하고 계시니까. 다음.”
줄이 한 칸 줄었다. 루치오 앞의 사내가 뒤를 돌아보더니 루치오의 단지를 내려다봤다.
“그건 뭐요?”
“소금이요.”
“소금을 가져왔다고? 대공성에 소금이 없을까 봐?”
“남의 소금으로는 간을 못 봐서요.”
사내가 웃었고 루치오도 같이 웃었다. 웃는 사이에 주방 안쪽 계단에서 쟁반 하나가 내려왔다. 시녀가 든 은쟁반이었다. 위에는 크림 수프 한 그릇과 검은 호밀빵 한 조각이 그대로 얹혀 있었고, 수프 위에 녹은 버터가 동그랗게 엉겨 있었다. 수프에서는 한 숟갈만 떠간 자국이 보였다.
“또 한 숟갈이에요.” 시녀가 그레타에게 말했다. “드시자마자 대야를 찾으셨어요.”
그레타가 쟁반을 받아 들고 한참 수프를 내려다봤다. 이 늙은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그레타가 그릇째 개숫물 통에 쏟으려는 순간 루치오가 줄에서 빠져나왔다.
“버리실 거면 한 숟갈만 주시겠어요?”
“넌 뭐냐?”
“서른 번째요.”
“항구 놈이구나. 생선 비린내가 여기까지 난다.”
“사흘 동안 눈길을 걸었는데도 안 빠지네요.”
그레타가 눈을 가늘게 떴다가 숟가락을 내밀었다. 루치오는 식어 가는 수프를 떠서 입에 넣었다. 크림은 잘 졸여져 있었고 양파는 끝까지 달았고 버터는 좋은 버터였다. 북부 소젖으로 만든 버터라 풀 냄새가 났다. 이 모든 맛이 목으로 넘어간 뒤에 이것이 남았다.
혀뿌리가 식었다. 미지근한 수프였는데, 혀 안쪽 끝만 얼음을 대 놓은 것처럼 서늘했다. 그리고 단맛이 따라왔다. 식은 쇠 숟가락에 꿀을 묻혀 핥으면 나는 단맛이었다. 쇠의 비린 맛과 꿀의 단맛이 따로 놀다가 혀뿌리에서 하나로 엉겨 붙었다.
열 해 동안 루치오가 한 번도 잊어버리지 못한 맛이었다.
루치오는 숟가락을 입에서 천천히 뺐다. 그레타가 루치오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왜. 짜냐?”
“아뇨. 잘 끓이셨어요.”
“내가 끓인 거다.”
“그러니까요. 잘 끓이셨어요.”
루치오는 숟가락을 돌려주고 줄 끝으로 돌아갔다. 손바닥이 단지에 들러붙어 있었다.
*
해가 기울 무렵 루치오의 차례가 왔다. 그레타는 루치오에게 화덕 하나와 냄비 하나와 한 시간을 줬다. 루치오는 얼음 저장고에서 꺼내 온 북부 대구 대가리 두 개와 등뼈 한 줄을 도마에 올리고, 칼등으로 아가미를 걷어 냈다. 북부 대구는 살이 단단했고 뼈에서 바다 냄새보다 얼음 냄새가 먼저 났다.
“대가리를 끓여?” 그레타가 팔짱을 꼈다. “공녀님께 생선 대가리를 올리겠다고?”
“대가리에서 국물이 나와요. 살은 나중에 넣고요.”
“버터는.”
“안 넣습니다.”
주방이 조용해졌다. 냄비 앞에서 감자를 깎던 젊은 막내가 칼을 멈췄고, 반죽을 치대던 부주방장이 손을 들었다. 마흔 넘은 여자였는데,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은 팔에 밀가루가 하얗게 붙어 있었다. 그레타가 천천히 말했다.
“북부에서는 버터 안 넣은 국을 국이라고 안 한다. 물이라고 하지.”
“그럼 오늘은 물을 올려 보죠.”
루치오는 뼈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냄비 바닥에 뼈를 깐 뒤 물을 부었다. 끓기 시작하자 불을 줄여 거품을 걷었다. 거품을 걷는 국자질이 쉰 번쯤 되었을 때 국물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금 간 단지의 삼끈을 풀고 손가락 세 개로 소금을 집어 넣었다. 살레르 갯벌 소금이라 알이 굵고 회색빛이 돌았다. 간을 보고, 저장고에서 얻어 온 마른 다시마 한 장을 넣었다가 오래 끓기 전에 건져 냈다. 마지막에 대구 살을 얇게 떠서 국물 위에 띄웠다.
냄비 뚜껑을 열자 김이 천장까지 올라갔다. 처음 맡으면 비리고, 두 번째 숨에는 달고, 세 번째 숨에는 그냥 따뜻했다.
문간에서 갑옷 소리가 났다. 스물 몇쯤 된 기사가 성큼 들어와 냄비 앞에 섰다. 키가 문틀에 닿았고 턱이 각졌다.
“공녀님 호위 기사 오렌이다. 공녀님께 올라가는 건 전부 내가 먼저 먹는다.”
“독 검사요?”
“그래.”
루치오가 국을 한 국자 떠 줬다. 오렌은 김이 오르는 국을 그대로 들이켜고 혀를 데어 눈을 질끈 감았다가, 그릇을 내려다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그릇을 내밀었다.
“한 그릇 더. 검사가 덜 끝났다.”
그레타가 콧방귀를 뀌었다. 부주방장은 반죽으로 돌아갔고 막내는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루치오는 두 번째 국자를 떠 주며 말했다.
“제가 들고 올라가도 될까요?”
“쟁반은 시녀가 든다.”
“식으면 비려져요. 계단에서 데우면 살이 퍼지고요. 제가 뛰어 올라가겠습니다.”
오렌이 국을 마저 넘기고 고개를 까딱였다.
찬장 계단은 일흔두 칸이었다. 중간 층계참에 쟁반을 데우는 작은 화덕이 있었고, 시녀들은 거기서 한 번씩 그릇을 데워 올라간다고 했다. 루치오는 화덕 앞을 지나쳐 계속 올라갔다. 숨이 차오를 무렵 탑 방 문이 나왔다.
*
방은 추웠다. 벽난로가 타고 있었는데도 창가 쪽 공기가 얼어 있었고, 침대 머리맡 탁자 위 은대야의 가장자리에 검은 얼룩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을음 같기도 하고 곰팡이 같기도 했다. 가까이 보니 성에였다. 서리가 핀 모양 그대로 검게 굳어 있었다.
침대에 앉은 여자가 루치오를 올려다봤다. 스물을 조금 넘긴 얼굴인데 뺨이 꺼져 광대뼈가 섰고, 눈은 이 얼굴에 비해 너무 컸다. 은빛이 도는 흰 머리를 아무렇게나 땋아 어깨에 넘겼다. 북부 대공의 외동딸 엘리시아였다.
“또 국이에요?” 엘리시아가 말했다. “오늘 서른 그릇째예요. 스물아홉 그릇은 다 저 대야로 갔고요.”
“그럼 이게 마지막이네요.”
“자신 있어요?”
“아뇨. 그래서 제가 들고 왔습니다.”
엘리시아가 눈썹을 올렸다. 오렌이 뒤에서 헛기침을 했다. 루치오는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김이 엘리시아의 얼굴 앞으로 올라갔다. 이 김이 엘리시아의 콧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엘리시아가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두 번째 숨에서 눈을 감았다.
“생선이에요?”
“북부 대구요. 대가리로 끓였습니다.”
“생선 대가리를 공녀한테.”
“그레타 주방장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엘리시아가 숟가락을 들었다. 손이 떨려 국물이 반쯤 흘렀다. 두 번째 숟가락은 덜 흘렀다. 국물을 삼킨 숟가락을 든 채 가만히 있었다. 방 안의 모두가 엘리시아의 목을 봤다. 오렌은 은대야를 끌어당겨 놓을 자세였고, 문간의 시녀는 수건을 쥐고 있었다.
벽난로에서 장작 하나가 무너졌다.
엘리시아가 세 번째 숟가락을 떴다. 그리고 대구 살을 한 점 건져 먹었다. 씹는 동안 엘리시아의 눈이 점점 붉어졌는데, 이걸 누구에게도 안 보이려고 그릇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릇이 반쯤 비었을 때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짜요.”
“죄송합니다.”
“아니, 짜서 좋다고요. 석 달 동안 아무 맛도 안 났어요.” 엘리시아가 숟가락으로 그릇 바닥을 긁었다. “더 있어요?”
방 문간에 언제부턴가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어깨가 문틀을 다 채웠고, 반백의 수염이 가슴께까지 내려왔다. 사내는 그릇 바닥을 긁는 딸을 오래 보고 있다가 루치오에게 눈을 돌렸다. 북부 대공 비요른이었다.
“이름.”
“루치오 벨라입니다. 살레르에서 국밥집을 합니다.”
“했다.” 대공이 고쳐 말했다. “오늘부터 공녀의 요리사다.”
이 말만 남기고 대공은 돌아섰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무거웠는데 일곱 칸쯤 내려가다 한 번 멈췄다. 멈춘 채로 한참 있다가 다시 내려갔다.
*
대전 식탁은 길었다. 벽마다 순록 뿔이 걸려 있었고 화로 넷이 탔다. 루치오는 대공의 부름을 받아 국 냄비를 들고 대전으로 들어갔다. 공녀가 넘긴 국을 손님들에게도 내라는 명이었다.
대공의 오른편에 손님이 앉아 있었다. 쉰쯤 된 사내로, 남색 비단 위에 털망토를 걸쳤고 손가락이 가늘고 길었다. 이 옆에 은테 안경을 쓴 남자가 약 상자를 무릎에 얹고 앉았다. 집사장이 루치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왕국 재상 마르쿠스 펠 각하시다, 공녀님 문병을 오셨고 이 옆은 왕도에서 보내신 의관이다.
재상이 국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오래 굴렸다. 그리고 웃었다.
“좋군. 이 소금은 어디 것인가?”
“살레르 갯벌 소금입니다.”
“역시. 왕도에서는 이 소금을 안 쓰지. 알이 굵고 갯벌 냄새가 나서.” 재상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자네는 소금을 들고 다니나?”
“남의 소금으로는 간을 못 봐서요.”
“남의 것을 못 믿는다는 말로 들리는군.”
재상은 루치오를 놓아주지 않았다. 살레르 항구의 생선 값을 물었고, 뒷골목 국밥 한 그릇이 동전 몇 닢인지 물었고, 국을 끓일 때 왜 버터를 안 넣는지 물었다. 루치오가 대답할 때마다 재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얹었다. 그사이 의관이 대공에게 공녀의 병을 설명했다. 북부 혈통에 내리는 서리 신의 저주이며, 왕도에서 처방한 치료식을 끊으면 안 되고, 국 한 그릇 넘긴 것은 저주가 잠시 숨을 고른 것일 뿐이라고 했다.
“저주가 아닙니다.”
루치오의 입에서 이 말이 먼저 나갔다. 식탁이 조용해졌다. 의관이 안경을 밀어 올렸다.
“요리사가 의술을 아나?”
“의술은 모릅니다. 근데 공녀님 점심 수프는 맛을 봤어요. 그 수프가 잘못됐습니다.”
“그 수프는 대공성 주방장이 끓였네. 이십 년 동안 공녀를 먹여 온 사람이.”
“그래서 더 이상합니다.”
재상이 손을 들어 의관을 말렸다. 그리고 루치오에게 물었다.
“그럼 무엇이 잘못됐다는 건가?”
루치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독이라는 말을 대전에서, 재상 앞에서 꺼낼 수 있을 만큼 아는 것이 없었다. 혀뿌리가 식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재상이 이 침묵을 보며 다시 웃었다.
“한 그릇 더 주게. 그리고 앉게, 요리사. 살레르 얘기를 더 듣고 싶군.”
대공이 턱짓을 했다. 앉으라는 뜻이었다. 루치오는 대전 창밖을 봤다. 해가 졌고 탑 방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공녀의 저녁 국은 주방 화덕 위에 올려 두고 왔다. 일흔두 칸을 들고 뛰어 올라가겠다고 그레타에게 말해 둔 국이었다.
재상이 살레르 항구의 겨울 바다를 물었다. 루치오는 대답했다. 재상이 국 두 그릇째를 비웠다. 화로의 장작이 두 번 갈렸다.
종이 울렸다.
탑에서 내려오는 짧은 종이었다. 세 번, 쉬고, 세 번. 대공이 의자를 밀치고 일어섰다. 문가의 기사 하나가 대전 문을 박차고 나갔고 루치오는 냄비를 버려 두고 뒤를 따랐다. 찬장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는 동안 층계참 화덕의 잉걸불이 벌겋게 살아 있는 것을 봤다. 누가 방금 거기서 무언가를 데웠다.
탑 방 문이 열려 있었다. 문 앞에 오렌이 빈 숟가락을 쥔 채 굳어 서 있었다. 먼저 먹어 보고 들여보낸 국이었다. 엘리시아가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은대야를 끌어안고 있었다. 시녀가 엘리시아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었고, 대야 안에서 검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토한 것이 대야 바닥에 닿자마자 이 위로 성에가 번졌다. 검은 서리가 고사리 잎처럼 가지를 뻗으며 은 표면을 기어 올라갔다. 방 안이 갑자기 추워졌다.
“저주가 다시 도졌습니다.” 뒤따라 들어온 의관이 말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루치오는 탁자 위의 국그릇을 봤다. 끓인 국이었다. 반쯤 비어 있었다. 남은 국물 위에 금빛 기름이 동그랗게 떠 있었다. 녹은 버터였다.
루치오는 그릇을 들어 기름이 뜬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뭐 하는 짓이냐!” 오렌이 오렌의 팔을 잡았다.
혀뿌리가 식었다. 이번엔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식은 쇠 숟가락, 이 위의 꿀. 점심 수프보다 진했다. 루치오는 오렌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그릇을 내려놓았다. 대공이 문간에 서 있었고 뒤에 재상이 숨도 차지 않은 얼굴로 서 있었다.
“저는 버터를 안 넣습니다.” 루치오가 말했다. “이 국에 버터를 넣은 사람이 있어요. 계단에서. 그리고 이건 저주가 아니라 독입니다.”
방 안에서 엘리시아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재상이 천천히 방으로 들어와 국그릇을 내려다봤다. 그릇에 손을 대지 않았다.
“독이라.” 재상이 말했다. “그런데 이 국은 누가 끓였지?”
대공의 손이 칼자루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