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272자)

간판에는 있고 영화에는 없다

검은 화면 십오 초 · 윤재하

영사실은 사십 도까지 오른다.

빛을 만드는 데 탄소봉을 태우기 때문이다. 막대 두 개를 마주 대고 전기를 흘리면 그 사이에서 불이 붙는다. 그 불빛을 렌즈로 모아 화면에 보낸다. 사람이 계속 붙어 있어야 한다. 탄소봉은 타면서 짧아지고, 짧아지면 간격이 벌어지고, 벌어지면 빛이 흔들린다.

하태식은 그 흔들림을 소리로 안다.

지지직, 하고 한 번 씹히면 나사를 반 바퀴 돌린다. 화면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어진다. 팔 년째다.

“3관 물 좀 마시고 해라.”

아래에서 주순임이 소리쳤다. 매표소에서 영사실까지는 계단 열아홉 개다. 순임은 그 계단을 안 올라오고 소리만 지른다.

“네.”

“대답만 하지 말고.”

태식은 대답만 했다.

여름이었다. 국제시장 뒷골목은 저녁이 되어도 식지 않았다. 극장 앞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영사실 열기가 다른 종류라는 것을 태식은 안다. 밖은 뜨겁고 여기는 마른다.

첫 회 상영이 끝나면 필름을 되감는다. 되감으면서 이음매를 손으로 훑는다. 이음매는 열두 군데다. 그중 아홉은 필름이 오래돼서 끊겼다가 붙은 자리고, 셋은 다른 자리다.

다른 자리는 손끝에 다르게 걸린다. 테이프가 새것이다.

그 셋을 지날 때 화면이 검게 빈다. 십오 초쯤. 소리도 함께 끊긴다.

관객들은 그것을 기계 탓으로 안다. 어떤 사람은 야유를 하고 대부분은 그냥 지나간다. 십오 초는 사람이 화를 내기에는 짧고 잊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태식은 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손을 무릎에 얹고 검은 화면을 본다.

간판이 바뀐 것은 화요일이었다.

극장 정면에 나무틀을 세우고 그 위에 그림을 올린다. 가로 여섯 자, 세로 아홉 자. 두 달에 한 번씩 바뀐다. 그리는 사람은 사흘에 한 번 바뀌지 않는다. 이 극장 간판을 십 년 그리던 사람이 봄에 그만뒀다.

새로 온 사람은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태식이 그를 처음 본 것은 사다리 위에서였다. 창고 옆 빈터에 나무틀을 눕혀 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붓을 놀리고 있었다. 웃통을 벗고 있었고 등이 온통 물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먼저 인사한 것은 그쪽이었다.

“…….”

“영사실 분이시죠.”

“네.”

“문경섭입니다.”

태식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계단을 올라갔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따라왔다.

“이름 안 알려 주십니까?”

“…….”

“그러면 제가 뭐라고 부릅니까?”

태식은 돌아보지 않았다.

“기사님이라고들 합니다.”

그날 밤 간판이 올라갔다.

여자가 계단에 앉아 있고 남자가 그 아래 서 있는 그림이었다. 계단은 젖어 있고 여자의 치맛자락이 계단 두 단을 덮고 있었다. 배경은 온통 파랬다.

태식은 그 그림을 이 분쯤 보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그 장면은 영화에 없었다.

경섭이 그것을 안 것은 나흘째 저녁이었다.

간판을 올리고 나면 할 일이 없다. 다음 작품이 들어올 때까지 한 달 반을 논다. 순임이 그러면 표라도 받으라고 해서, 경섭은 사 회차 상영에 뒷문 쪽에 서서 영화를 봤다.

두 시간 십 분짜리였다.

계단은 안 나왔다.

경섭은 다음 날 삼 회차를 다시 봤다. 그다음 날 이 회차를 봤다. 계단은 세 번 다 안 나왔다.

“누님.”

“왜?”

“그 간판 사진 어디서 왔습니까?”

순임은 표를 세면서 대답했다.

“배급사.”

“배급사가 준 사진에는 있는데 영화에는 없습니다.”

“…….”

“계단 장면이요.”

순임은 표 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지폐를 스무 장씩 접어 고무줄로 묶는 중이었다.

“그런 게 있어.”

“무슨 말씀입니까?”

“없는 게 있다고.”

“…….”

“그림이나 잘 그려.”

경섭은 매표소 창구 앞에 서 있었다. 창구 안쪽은 어두웠고 순임의 얼굴은 반만 보였다.

“누님.”

“왜 자꾸 불러.”

“저 서울에서 이거 십일 년 했습니다.”

“그래서.”

“배급사 사진에 있는 걸 영화에서 못 본 적은 없습니다.”

순임이 고무줄을 튕겼다.

“여기는 부산이야.”

“…….”

“그리고 그런 건 묻는 거 아니다.”

경섭은 그날 밤 영사실 계단을 올라갔다.

열아홉 개였다. 올라갈수록 더웠다. 문은 철문이었고 손잡이가 뜨거웠다. 두드리니 안에서 소리가 멈췄다.

문이 열렸다.

태식은 러닝셔츠 차림이었다. 목에 수건을 걸고 있었고 그 수건이 젖어 있었다. 뒤로 기계 두 대가 돌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들어가도 됩니까?”

“안 됩니다.”

“…….”

“불이 붙습니다. 여기.”

경섭은 문틀에 손을 얹었다.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

“계단 장면 말입니다.”

태식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경섭은 뭔가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래 사람을 그린 사람은 안 바뀌는 것도 본다.

“무슨 계단.”

“여자가 앉아 있고 남자가 서 있는 계단이요. 배급사 사진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걸 그렸고요.”

“…….”

“근데 영화에 없습니다. 세 번 봤습니다.”

기계가 돌았다. 릴이 도는 소리는 시계 소리와 비슷한데 조금 더 무겁다. 영사실에서는 그 소리 말고 다른 소리가 안 난다.

태식이 말했다.

“그 장면은 여기 없습니다.”

“…….”

“그러니까 그리지 마십시오.”

“이미 그렸는데요.”

“다음부터.”

“그럼 다음에도 사진에 있는 걸 못 그립니까?”

“…….”

“기사님.”

태식이 문을 잡았다.

“이만 가십시오.”

“없어졌으면 어디로 갔습니까?”

문이 닫혔다.

닫히기 직전에 경섭은 안쪽을 봤다. 기계 두 대, 필름 릴, 벽에 걸린 공구, 그리고 바닥.

바닥의 마루판 한 장이 다른 것보다 색이 옅었다.

경섭은 그것을 봤고, 본 것을 그날 밤 내내 생각했다.

아래로 내려오니 순임이 매표소 문을 잠그고 있었다.

“올라갔다 왔나.”

“네.”

“뭐래.”

“가라고 했습니다.”

순임이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착한 앤데 말을 안 해.”

“…….”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데가 없는 거지.”

경섭이 순임을 봤다.

“누님은 아십니까?”

“뭘.”

“계단이 어디 갔는지요.”

순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극장 정면을 올려다봤다. 간판에는 여자가 젖은 계단에 앉아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파란 배경에 얹혀서 그림이 실제보다 더 젖어 보였다.

“잘 그렸다.”

“…….”

“그건 진짜 잘 그렸어.”

순임이 걸어갔다. 골목 끝에서 한 번 돌아봤다.

“근데 그런 거 자꾸 물어보면 여기서 일 못 한다.”

경섭은 간판 아래 서 있었다.

이 층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영사실이었다. 마지막 회차는 벌써 끝났는데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불은 새벽 두 시가 넘어서 꺼졌다.

경섭은 그것을 창고 앞에 앉아서 보고 있었다. 왜 보고 있는지는 자기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창고에서 나무판 하나를 꺼내 왔다.

그리고 계단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간판만 하지 않게, 손바닥 두 개만 하게.

여자는 그리지 않았다.

계단만 그렸다.

그 판자는 사흘 만에 마쳤다.

간판보다 훨씬 작은데 사흘이 걸렸다. 간판은 멀리서 보는 그림이라 선이 굵어도 되고 색이 세도 된다. 손바닥만 한 그림은 그럴 수가 없다. 젖은 돌 하나를 젖어 보이게 하려면 마른 돌을 그 옆에 그려야 한다.

경섭은 그것을 들고 영사실 계단을 올라갔다.

두드리지 않았다. 문틈 아래로 밀어 넣고 내려왔다.

그날 사 회차 상영이 끝난 것은 열한 시 사십 분이었다. 관객이 다 나가고 순임이 문을 잠그고 나서도 이 층 불은 안 꺼졌다.

경섭은 창고 앞에 앉아 있었다.

열두 시 이십 분에 철문 여는 소리가 났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났다. 태식이 손에 뭘 들고 있었다.

“이거.”

판자였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

“그러면 버리십시오.”

태식은 버리지 않았다. 판자를 든 채로 서 있다가 경섭 옆에 앉았다. 시멘트 바닥이 아직 낮의 열을 갖고 있었다.

한참 아무 말도 없었다.

“문 선생.”

“네.”

“이 계단, 본 적 있습니까?”

경섭이 고개를 저었다.

“사진으로만 봤습니다.”

“…….”

“근데 그 사진이 이상했습니다.”

“어떻게요.”

“배급사가 주는 사진은 보통 잘 나온 걸 줍니다. 배우 얼굴 잘 보이고 옷 예쁘고. 근데 이건 얼굴이 반쯤 그늘입니다. 그런 걸 왜 줬을까 싶었습니다.”

태식이 판자를 무릎에 놓았다.

“잘 그리셨습니다.”

“…….”

“돌이 젖어 있는 게.”

경섭이 웃었다.

“그건 사흘 걸렸습니다.”

“…….”

“기사님은 그 장면 보셨습니까?”

태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문 선생은 서울에서 왜 내려오셨습니까?”

경섭의 웃음이 조금 늦게 사라졌다.

“일이 없어서요.”

“서울에 극장이 몇 갠데요.”

“…….”

“많지 않습니까?”

경섭은 무릎을 잡았다.

“기사님도 안 물어보시는 게 좋습니다.”

“…….”

“그런 거 자꾸 물어보면 여기서 일 못 한다고 하시던데요, 누님이.”

태식이 처음으로 소리를 내서 웃었다. 아주 짧았고 거의 안 들렸는데, 경섭은 그것을 들었다.

“그 양반이 그런 말을 하십니까?”

“하십니다.”

“…….”

“그러면서 다 아십니다.”

두 사람은 다시 조용해졌다. 골목 끝에서 리어카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이 시간에 지나가는 리어카는 시장 사람이다.

태식이 일어섰다.

“문 선생.”

“네.”

“내일 밤에 올라오십시오.”

경섭이 올려다봤다.

“들어가도 됩니까?”

“불 다 끄고 나서.”

“…….”

“기계가 안 돌 때는 안 뜨겁습니다.”

태식이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세 계단쯤 올라가서 멈췄다.

“그리고.”

“네.”

“판자는 갖고 계십시오.”

“왜요.”

“여기 두면 안 됩니다.”

경섭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해하고 나서 등이 서늘해졌다. 여름밤이었는데 그랬다.

“…….기사님.”

태식은 이미 올라가고 있었다.

철문이 닫혔다.

경섭은 판자를 들고 창고로 들어갔다. 물감 통 뒤에 세워 놓고 그 위에 마대를 덮었다. 덮고 나서 한참 서 있었다.

그림 한 장을 왜 감춰야 하는지 그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알 것 같은 쪽이 더 무서웠다.

다음 날 낮에 순임이 창고로 왔다.

“문 선생.”

“네, 누님.”

“일 없제.”

“없습니다.”

순임이 마대를 봤다. 그냥 지나가는 눈길이었는데 경섭은 심장이 한 번 뛰었다.

“오늘 밤에 어디 가나.”

“아니요.”

“…….”

“왜요.”

순임이 창고 문틀에 기댔다.

“태식이가 이 년 동안 저 위에 아무도 안 올린다.”

“…….”

“그거 알고 올라가라.”

경섭이 걸레를 내려놓았다.

“누님.”

“왜?”

“무섭습니까, 저 위가.”

순임은 잠깐 생각했다.

“위가 무서운 게 아니고.”

“…….”

“위에 있는 게 무서운 거지.”

그러고 나갔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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