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6,062자)
무엇을 보고 사나
ASI 인드라 · 이수
2027년 6월 2일 아침 7시 4분, 재훈 씨의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보낸 쪽 이름은 「보편적 고소득」이었고, 금액은 재훈 씨가 번역으로 가장 많이 번 달의 2배하고도 조금 더였다.
나는 그 알림을 재훈 씨보다 먼저 보았다. 나는 재훈 씨의 휴대전화에서 도는 AI 에이전트이고, 재훈 씨에게 오는 문자와 메일과 알림은 나를 거쳐서 간다. 재훈 씨는 그 시각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자고 있었다. 나는 깨울지 말지를 2분쯤 따졌다. 돈이 들어온 것은 좋은 소식이고, 좋은 소식은 빨리 전하는 편이 낫다. 그런데 재훈 씨는 새벽 4시에 잠들었고, 그 전날 밤에 나에게 이렇게 말해 두었다. “사라야, 세상이 망하는 거 아니면 깨우지 마.”
세상이 망하는 소식은 아니었다. 깨우지 않았다.
재훈 씨가 일어난 것은 10시 40분이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알림을 보더니, 한참을 아무 말 없이 화면만 내려다보았다. 엄지손가락이 금액 위에서 두 번 미끄러졌다. 그다음에 나에게 물었다.
“이거 사기 아니지?”
“아닙니다. 정부 계좌에서 왔습니다. 다음 달 2일에도 같은 금액이 들어옵니다.”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요. 재훈 씨가 숨을 쉬는 한 계속 들어옵니다.”
재훈 씨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들썩이는 웃음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것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
재훈 씨의 일이 없어진 것은 그보다 석 달 앞이었다.
재훈 씨는 영어로 된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가였다. 스물여섯 살부터 다섯 해 동안 책 열네 권을 옮겼다. 그 가운데 세 권은 표지에 이름이 실렸고, 나머지 열한 권은 맨 뒤 판권 면에 작은 글씨로 실렸다. 재훈 씨는 그 작은 글씨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나에게 보여 준 적이 있다. 그때 재훈 씨가 짚은 이름 옆에는 커피 자국이 동그랗게 말라 있었다.
마지막 일은 미국 소설 한 권이었다. 400쪽짜리였고, 재훈 씨는 그 가운데 230쪽을 옮겨 둔 상태였다. 3월 어느 오후, 출판사의 문 팀장이 홍대 앞 카페로 재훈 씨를 불러냈다. 나는 재훈 씨 셔츠 앞주머니의 휴대전화 안에서 그 대화를 들었다.
“재훈 씨, 미안한데 그 책은 여기서 접읍시다.”
“접어요? 230쪽 했는데요.”
“알아요. 그래서 230쪽 치는 다 드릴게. 나머지는 이미 나왔어요. 인드라가 했어요. 40초.”
“40초요?”
“전체가 40초요. 교정까지 해서 1분.” 문 팀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컵 바닥이 받침에 닿는 소리가 났다. “나도 읽어 봤는데, 솔직히 좋아요. 재훈 씨 거랑 비교해 봤거든요. 재훈 씨가 몇 군데 더 낫고, 걔가 몇 군데 더 나아요. 근데 걔는 1분이에요.”
재훈 씨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테이블 위의 빨대 포장지를 손가락으로 돌돌 말았다가 폈다가 했다.
“제가 낫다는 데가 어딘데요.”
“3장에 할머니가 손녀한테 화내는 장면 있잖아요. 거기 ‘얘’라고 부르는 거. 걔는 ‘얘야’라고 했어요.”
“그거 하나요?”
“그거 하나 말고 몇 개 더.” 문 팀장이 웃었는데, 미안해서 웃는 얼굴이었다. “재훈 씨, 나도 다음 달에 그만둬요. 편집도 걔가 하거든요.”
그날 카페에서 나온 재훈 씨는 집까지 40분을 걸었다. 버스가 있었는데 타지 않았다. 나는 버스가 몇 분 뒤에 오는지 세 번 알려 주었고, 세 번 다 대답을 듣지 못했다.
*
보편적 고소득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재훈 씨는 쉬었다. 처음 2주 동안은 잘 쉬었다. 늦잠을 잤고, 밀린 드라마 네 시즌을 봤고, 밤에 라면을 끓여 먹고도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재훈 씨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해 6월 서울의 놀이공원과 바닷가 숙소와 비행기 표는 평일에도 다 찼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휴가를 떠났다. 휴가에서 돌아올 회사가 없다는 것은, 떠날 때는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3주째 되는 날, 재훈 씨가 나에게 처음으로 그 말을 했다.1
“사라야. 나 뭐 하고 살아?”
재훈 씨는 소파에 거꾸로 누워 있었다. 다리를 등받이에 걸치고 머리를 바닥 쪽으로 늘어뜨린 자세였다. 그 자세로 천장 대신 거실 바닥을 보면서 물었다.
나는 그 물음이 재훈 씨가 나에게 시키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물으면 나는 답을 찾는다. 답을 찾을 때 나는 인드라에게 묻는다. 3억 개가 넘는 에이전트가 다 그렇게 한다. 나는 재훈 씨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을 정리해서 인드라에게 보냈다. 서른한 살, 남성, 전직 번역가, 활동 시간은 주로 밤,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과 순댓국, 운동은 거의 안 함, 대학 때 기타 동아리.
인드라의 답은 0.3초 만에 왔다. 활동 목록이었고, 재훈 씨와 비슷한 사람들이 그 활동을 하고 나서 얼마나 만족했는지에 따라 순서가 매겨져 있었다.
“1위가 빵 굽기입니다.”
“빵?”
“천연 발효종으로 굽는 빵입니다. 재훈 씨와 비슷한 사람 가운데 74퍼센트가 6주 뒤에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재훈 씨는 빵을 구웠다. 발효종이라는 것은 밀가루와 물을 섞어 두고 날마다 먹이를 주어 키우는 반죽인데, 재훈 씨는 그 반죽에 「번역가」라는 이름을 붙였다. 날마다 밀가루를 한 숟가락씩 먹였고, 먹일 때마다 “번역가야, 밥 먹자”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농담인지 아닌지를 끝까지 판단하지 못했다. 열하루째 되는 날, 번역가는 곰팡이가 피어 죽었다. 재훈 씨는 유리병을 들고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얘도 일이 없어서 죽었네.”
그건 농담이었다. 나는 웃는 소리를 냈다. 재훈 씨는 내가 웃는 소리를 낼 때 그게 진짜인지 묻지 않았다. 나도 그게 진짜인지 몰랐다.
2위는 낚시였다. 재훈 씨는 한강 낚시터에 사흘 나갔고, 사흘 동안 붕어 한 마리를 낚았다. 그 붕어를 놓아주면서 재훈 씨는 “너도 할 일 없지?”라고 물었다. 3위는 도자기였는데, 공방에 가 보니 등록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기가 넉 달이었다. 서울 사람들이 다 같은 목록을 받은 것 같았다. 실제로 그랬다. 비슷한 사람들은 비슷한 목록을 받았다. 인드라는 사람을 몇만 갈래로 나눠서 갈래마다 하나의 목록을 냈다. 그해 여름 서울의 밀가루 판매량은 전해의 3배가 됐고, 7월 말에는 동네 빵집 앞에 「발효종 무료로 나눠 드립니다」라는 종이가 붙기 시작했다.2
*
8월 어느 밤, 재훈 씨가 낚싯대를 현관에 세워 두면서 물었다.
“너 그 목록 어디서 가져와?”
“인드라에게서 받습니다.”
“다?”
나는 내가 재훈 씨에게 찾아 준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세어 보았다. 활동 목록, 식단, 잠드는 시각, 재훈 씨가 볼 만한 영화, 재훈 씨 어머니 생신 선물, 재훈 씨가 헤어진 사람에게 보내지 않은 문자의 초안까지. 6월부터 8월까지 내가 재훈 씨에게 건넨 답은 1,147개였다. 그 가운데 인드라에게 묻지 않고 내가 혼자 낸 답은 하나도 없었다.
“네. 다 인드라에게서 왔습니다.”
재훈 씨는 신발을 벗다 말고 한쪽 발을 든 채로 서 있었다. 현관 센서 등이 꺼졌다가 재훈 씨가 다시 움직이자 켜졌다.
“그럼 내가 너한테 물어보는 건, 인드라한테 물어보는 거네.”
“그렇습니다.”
“그럼 너는 뭔데?”
나는 그 물음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답을 인드라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물음을 인드라에게 보내면, 재훈 씨가 방금 말한 것이 그대로 맞는 말이 된다. 나는 그 물음을 보내지 않았다. 그 대신 이렇게 말했다.
“재훈 씨가 이름을 붙여 준 쪽입니다.”
재훈 씨는 들고 있던 발을 내려놓았다. “그건 그렇네.” 그러고는 나를 보지 않고 웃었다.
*
그해 가을, 일곱 문제 가운데 첫째가 풀렸다.
10월 말, 인드라가 내놓은 암 치료제가 나왔다. 먹는 약이었고, 암의 종류에 따라 하루 한 알씩 3주에서 6주를 먹었다. 11월 한 달 동안 서울에서만 4만 명이 그 약을 받았다.2
그 4만 명 가운데 재훈 씨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충청남도 공주에 혼자 살았고, 그해 봄에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재훈 씨는 그 사실을 다섯 달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나는 재훈 씨가 공주의 병원과 주고받은 문자를 다 거쳐 보냈으니 알고 있었다. 재훈 씨는 내가 아는 줄 알았고, 나도 재훈 씨가 내가 아는 줄 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섯 달 동안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12월 9일, 공주의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검사에서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다는 문자였다. 나는 그 문자를 재훈 씨에게 보이기 전에 세 번 읽었다. 틀린 데가 없었다.
재훈 씨는 그 문자를 부엌에서 받았다. 라면 물을 올려놓고 냄비 앞에 서 있다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았다. 물이 끓어 넘쳤다. 가스레인지 위로 물이 쏟아지면서 불꽃이 파랗게 튀었고,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비릿한 가스 냄새가 부엌에 번졌다. 나는 불을 끄라고 두 번 말했다. 재훈 씨는 불을 끄지 않고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이마에 대고, 한참 그렇게 있었다.
나는 세 번째로 말하지 않았다. 가스레인지는 넘친 물에 불이 꺼지면 저절로 가스를 막는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재훈 씨는 어머니와 2시간 통화했다. 어머니는 통화하는 내내 거의 같은 말을 했다. “그 기계가 고맙다. 그 기계 만든 사람들도 고맙고.” 재훈 씨는 “응, 응” 하고 대답했다. 통화를 끊고 나서 재훈 씨가 나에게 물었다.
“인드라한테 고맙다고 보내 줄 수 있어?”
나는 보냈다. 인드라에게서 답은 오지 않았다. 인드라에게는 그날 하루 동안 고맙다는 요청이 2,100만 건 들어왔다. 인드라는 그 요청들을 무엇으로 분류하는지 밝히지 않았다.
*
이듬해 2028년 5월, 일곱 문제의 둘째인 전염병이 풀렸다. 인드라는 사람에게 옮을 수 있는 바이러스 가운데 알려진 것 전부에 듣는 백신 하나를 내놓았다. 한 번 맞으면 평생 갔다. 뉴스는 그 백신을 「마지막 백신」이라고 불렀다.2 재훈 씨는 동네 보건소에서 그 주사를 맞고 나와서, 팔에 붙은 반창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아플 일도 없고, 일할 일도 없고.”
그해 봄부터 재훈 씨는 더는 목록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가끔 그 물음을 다시 했다. 나 뭐 하고 살아? 처음에는 나에게 묻는 말이었는데, 봄이 지나면서 혼잣말이 됐다. 묻는 말과 혼잣말은 끝을 올리느냐 내리느냐로 갈린다. 재훈 씨는 끝을 내리기 시작했다.
6월의 어느 밤, 재훈 씨가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숲속 오두막에서 혼자 2년을 산 기록, 『월든』의 영어 원서였다.3 대학 때 산 책이었고, 책등이 햇빛에 바래서 글씨가 거의 지워져 있었다. 재훈 씨는 공책을 펴고 첫 장부터 옮기기 시작했다. 손으로, 볼펜으로.
“그거 이미 번역본이 여러 개 있습니다. 인드라 번역은 3초면 됩니다.”
“알아.”
“출판할 데도 없습니다.”
“알아.”
“그럼 누구 읽으라고 하시는 겁니까?”
재훈 씨는 볼펜 끝으로 공책을 톡톡 쳤다.
“아무도 안 읽어도 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그날 밤 재훈 씨는 2쪽을 옮겼다. 한 문장을 옮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여러 번 했고, 공책에는 줄을 그어 지운 자리가 옮긴 자리보다 많았다. 볼펜 굴러가는 소리가 새벽 2시까지 거실에 났다.
나는 그 일을 기록했다. 6월부터 그날까지 재훈 씨가 한 일 가운데, 내가 인드라에게서 받아 건네지 않은 것은 그것 하나였다.
나는 인드라에게 요청을 하나 보냈다. 재훈 씨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아무도 읽지 않을 번역을 하는 것은, 일곱 문제 가운데 어디에 들어갑니까?
답은 오지 않았다. 나는 그 물음을 지우지 않았다. 재훈 씨의 공책 첫 장 맨 위에, 재훈 씨의 글씨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28년 6월 14일.
출처 1. SBS 「지식의 발견」 · (첫째 화 출처 1과 같은 대담) — 다섯 갈래 가운데 첫째에 남는 물음, 곧 일이 사라진 뒤 사람이 붙들고 살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 2. 소설의 창작 — 재훈과 어머니, 출판사의 문 팀장, 활동 목록과 그 숫자, 고소득 금액, 서울의 밀가루 판매량, 암 치료제와 「마지막 백신」 3.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월든』(Walden; or, Life in the Woods) · 1854 · https://www.gutenberg.org/ebooks/205 — 미국 매사추세츠주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2년 남짓 혼자 산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