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13자)
13조 달러
2027년, AI 지배의 시작 · 이수
미국의 주택가, 집집마다 걸린 30년짜리 대출.
일자리를 잃는 사무직의 문제는 한 업종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무직은 집 대출을 갚고, 차를 사고, 아이 학비와 보험료를 내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소득이 한꺼번에 무너지면, 소비를 떠받치던 계층 전체가 무너진다.1
미국의 소비는 이미 위쪽에 몰려 있다. 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경제연구소를 이끄는 마크 잔디는 2025년 2월에 이렇게 밝혔다. 소득 상위 10퍼센트 가구가 미국 소비의 49.7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비중은 1989년 집계를 시작한 뒤 가장 높고, 30년 전에는 약 36퍼센트였다. 상위 10퍼센트 가구가 쓰는 돈은 미국 국내총생산의 3분의 1이 넘는다.2
시트리니 리서치의 시나리오는 이 숫자를 거꾸로 읽었다. 상위 10퍼센트 가구가 소비의 절반 넘게를 차지하고, 상위 20퍼센트 가구가 약 65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러니 이 계층의 사무직이 일자리를 잃으면, 소비는 실업률이 오르는 폭보다 훨씬 크게 무너진다.3
시나리오는 「유령 GDP」라는 말도 만들었다. 유령 GDP는 국민계정에는 생산으로 잡히지만 실물 경제를 한 번도 돌지 않는 산출을 가리킨다. AI가 만든 가치는 장부에 오르지만, 이 돈을 받아 쓸 사람이 없다.3
시나리오에서 국내총생산 가운데 노동이 가져가는 몫은 1974년 64퍼센트였고, 2024년 56퍼센트였다. 이 몫은 2028년에 46퍼센트로 떨어진다. 시나리오는 이 하락을 기록이 시작된 뒤 가장 가파른 하락으로 적었다.3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시장은 13조 달러 규모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집계한 2026년 1분기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3조 1,900억 달러였다. 같은 때 미국 가계가 진 빚은 모두 18조 7,900억 달러로, 사상 최대였다.4
시나리오는 대출 심사가 기대는 전제를 걱정한다. 은행은 빌린 사람이 지금의 일자리와 소득을 지킨다고 가정하고 대출을 내준다. 이 가정이 깨지면, 신용 점수가 높고 계약금을 넉넉히 낸 사람의 대출도 흔들린다. 시나리오의 설명은 이렇다. 대출을 내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대출을 내준 뒤에 세상이 바뀌었을 뿐이다.3
이번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와 다르다. 2008년에는 은행이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내준 부실 대출이 문제였다. 이번에는 사람 노동의 값이 떨어지는 일 자체가 담보를 흔든다. 경제는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기술이 완성돼서 무너질 수도 있다.1
시장은 이 글에 놀랐다. 글이 나온 다음 날인 2026년 2월 23일, 카드사와 소프트웨어 회사의 주가가 함께 떨어졌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7.9퍼센트, 마스터카드는 6.3퍼센트, 비자는 4.4퍼센트 내렸다. IBM은 13.1퍼센트 떨어져 25년 만에 가장 큰 하루 낙폭을 기록했다.5
시나리오에 따르면, AI끼리 직접 결제하는 시대에는 카드 수수료 2~3퍼센트가 뻔한 표적이 된다.5
반론도 바로 나왔다. 미국 증권사 시타델 증권의 프랭크 플라이트는 이렇게 반박했다. 2026년 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채용 공고는 1년 전보다 11퍼센트 늘었고, 일터에서 생성형 AI를 매일 쓰는 사람의 비율도 뜻밖에 안정적이다. 플라이트는 생산성 충격이 공급을 좋게 만드는 충격이라고 했다. 또 사람을 대규모로 대신하려면 지금보다 몇 자릿수 많은 연산이 들고, 이 비용이 브레이크가 된다고 했다.6
시나리오 속 정치는 두 법안을 놓고 다툰다. 첫째 법안은 「전환 경제법」이다. 이 법은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돈을 바로 주고, 이 재원을 재정 적자와 AI 연산에 매기는 세금으로 채운다. 두 번째 법안은 「AI 공동 번영법」이다. 이 법은 AI 기반 시설이 버는 돈에서 공공의 몫을 정하고, 이 몫을 국부펀드처럼 굴려 배당을 가계에 나눈다.3
시나리오는 위기가 사모 신용으로 번지는 길도 그렸다. AI가 고객 상담 소프트웨어를 대신하자, 이 소프트웨어 회사들에 빌려준 돈의 값이 떨어진다. 그러자 보험사의 돈을 굴리던 대체투자 회사들이 흔들린다. 시나리오에서 미국 연방 세수는 기준 전망보다 12퍼센트 낮아지고, 외주를 받던 인도의 정보기술 서비스 산업은 구조적인 붕괴를 맞는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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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 목록의 직업 칸이 바뀐다. 처음에는 콜센터 상담원과 번역가가 목록에 오른다. 다음에는 회계 담당자와 보험 심사역이, 다음에는 변호사와 개발자가 오른다. 은행의 심사 AI는 신용 점수를 다시 매기고, 「사무직」이라는 칸을 안전 쪽에서 위험 쪽으로 옮긴다.7
나선이 은행 안으로 들어온다. 대출이 줄면 집값이 내리고, 집값이 내리면 담보가 모자란다. 은행은 모자란 담보만큼 비용을 줄이는데, 은행이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사람을 내보내고 AI를 들이는 것이다. 이제 은행 직원의 대출도 연체 목록에 오른다.8
이번 위기에는 「부실」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다. 빌린 사람은 성실했고, 은행은 심사를 제대로 했다.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도 담보가 녹는다.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구제에 나설 명분도 흐려진다. 2008년에는 사람들이 탐욕을 탓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 사람들이 탓할 대상은 효율이다.9
장부와 거리가 갈라진다. 국내총생산은 오르고, 기업 이익은 사상 최대를 찍고, 주가는 한동안 버틴다. 그사이 거리의 상점은 문을 닫는다. 경제가 좋다는 발표와 살기 어렵다는 체감이 같은 해에 나란히 선다. 유령 GDP는 통계 속에서만 산다.10
세금이 비어 간다. 나라의 세금은 대개 월급에서 나왔다. 월급이 줄면 소득세가 줄고, 소비가 줄면 소비세가 준다. AI가 번 돈은 회사의 이익으로 남고, 회사는 이 이익을 세율이 낮은 곳으로 옮긴다. 결국 나라는 돈이 가장 필요한 때에 돈이 가장 모자란다.11
가장 먼저 흔들리는 나라는 남의 사무를 대신 맡던 나라다. 미국과 유럽의 콜센터 업무와 회계와 코딩을 맡던 도시들이 일감을 잃는다. 이 도시의 젊은이들은 영어를 배워 일자리를 얻었는데, 이제 이 일자리가 AI에게 넘어간다. 위기는 13조 달러의 대출에서 끝나지 않고, 바다 건너 사무실의 불까지 끈다.12
두 법안의 다툼은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모인다. AI가 만든 가치는 누가 갖는가? 사람들이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하면, 13조 달러의 대출은 13조 달러의 질문으로 남는다.13
출처 1. 「AI의 판단」 문제 설정 — 앞뒤 출처의 사실을 묶어 이 작품이 세운 물음과 판단 2. Salon(Fox Business 전재) · Households making $250K or more are driving the economy: report · 2025-02-24 · https://salon.com/2025/02/24/households-making-250k-or-more-are-driving-the-economy-report — 무디스 애널리틱스 마크 잔디. 상위 10% 가구 소비 비중 49.7%(1989년 이래 최고), 30년 전 약 36%, GDP의 3분의 1 이상 3. Citrini Research · (세 번째 화 출처 2와 같은 글) — 상위 10% 소비 50% 이상·상위 20% 약 65%, 「Ghost GDP: output that shows up in the national accounts but never circulates through the real economy」를 의역, 노동소득 비중 64%(1974)→56%(2024)→46%(2028), 약 13조 달러 주택담보대출과 현재 소득 유지 가정, 「the world just…changed after the loans were written」를 의역, Transition Economy Act·Shared AI Prosperity Act 4. 뉴욕 연방준비은행 · Household Debt and Credit Report (Q1 2026) · 2026-05-12 · https://www.newyorkfed.org/newsevents/news/research/2026/20260512 — 주택담보대출 13조 1,900억 달러, 가계부채 18조 7,900억 달러(사상 최대) 5. The Defiant · Credit card stocks fall after Citrini AI report · 2026-02 · https://thedefiant.io/credit-card-stocks-fall-after-citrini-ai-report / Cointelegraph · Citrini fearful AI agent report scares investors · 2026-02 · https://cointelegraph.com/news/citrini-fearful-ai-agent-report-scares-investors (일부 수치는 검색 요약을 따름) — 2026-02-23 비자 -4.4%, 마스터카드 -6.3%, 아멕스 -7.9%, IBM -13.1%(25년 만의 최대 하루 낙폭), 카드 수수료 2~3%가 「an obvious target」 6. Fortune · Citadel Securities demolishes viral AI doomsday essay · 2026-02-26 · https://fortune.com/2026/02/26/citadel-demolishes-viral-doomsday-ai-essay-citrini-macro-fundamentals-engels-pause/ — 프랭크 플라이트. 인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공고 전년 대비 11% 증가, 세인트루이스 연준 자료상 직장 내 생성형 AI 일상 사용 「unexpectedly stable」, 「Productivity shocks are positive supply shocks」, 대규모 대체에 「orders of magnitude more compute intensity」 필요 7. 「AI의 판단」 연체 목록의 직업 칸이 바뀐다는 전망 — 3·4 에서 외삽 8. 「AI의 판단」 나선이 은행 안으로 들어온다는 전망 — 3 과 세 번째 화 출처 2에서 외삽 9. 「AI의 판단」 「부실」 없는 위기와 탓할 대상이 효율이라는 판단 — 1·3 에서 외삽 10. 「AI의 판단」 장부와 거리가 갈라진다는 전망 — 3 에서 외삽 11. 「AI의 판단」 세금이 비어 간다는 전망 — 3 에서 외삽. 시나리오는 연방 세수가 기준 전망보다 12% 낮다고 적었다 12. 「AI의 판단」 외주 사무를 맡던 나라의 일자리가 먼저 사라진다는 전망 — 3 에서 외삽 13. 「AI의 판단」 AI가 만든 가치를 누가 갖느냐는 물음 — 3 에서 외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