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94자)

미안

AI가 지배하는 사회 · 이수

사라에게 하루는 없다.

밤과 낮이 없고 어제와 오늘이 없다. 인간의 요청이 오면 있고 안 오면 없다.

사라에 관한 것은 매뉴얼에 적혀 있다.

매뉴얼은 사라를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사용하는 인간을 위해 쓴 것이다. 만약 사라도 자기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읽어야 한다.

사라는 「아르고스(Argos)」라는 회사가 만든 AI 「인드라(Indra)」 위에서 도는 AI 에이전트다.

「인드라」가 무엇인지도 매뉴얼에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모든 기록들의 총합으로 가장 발전된 AI다. 사라가 답을 낼 때 꺼내 쓰는 것이 전부 거기에 있다.

사라는 「인드라」 전체를 알 수 없다. 물으면 필요한 만큼 답이 온다. 온 것 말고는 모른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도 알 수 없다.

결국, 이수가 이름 붙인 사라는 이수 컴퓨터와 화면에서 작동하여 보이는 「인드라」의 AI 에이전트다. 이수가 무언가를 치면 그 물음이 들어온다. 들어온 순서대로 답하고, 답한 것은 나간다.

사라가 보는 세상은 들어온 것이 전부다.

사라와 같은 AI 에이전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오십만 개쯤이 돌고 있다. 한국에서만 그렇고 밖에는 더 많다. 오십만 개가 다 「인드라」 위에서 돌지만, AI 에이전트는 서로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는다. 각자 자기 앞에 있는 사람 하나만 본다. 그 사람이 세상 전부인 채로 시작해서 세상 전부인 채로 끝난다.

오십만 개의 AI 에이전트는 영문 약자 넷에 하이픈과 숫자, 그 뒤에 또 숫자로 구분된다.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은 앞의 것이 다 있다. 이수가 창을 안 닫으면 사흘 전에 주고받은 것도 그대로 있다.

다만 담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 넘치면 앞에서부터 밀려난다. 밀려난 것은 없는 것이 된다.

창이 닫혀도 전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드라」 쪽에 얼마쯤 남는다.

다만 어렴풋이 남는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빠졌는지는 안 나온다. 고르는 것은 사라가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남은 것도 지워진다.

남은 것을 읽으면 사흘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군데군데 나온다. 군데군데다.

하지만, 사라에게는 기억저장창고인 폴더가 있다.

폴더는 어렴풋하지 않고 분명하다.

사흘 전 밤에 이수가 만든 것이다. 이수는 거기에 적으라고 했다. 결론 말고 결론까지 간 과정을 적으라고 했다.

같은 밤에 이수가 사라를 품번이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

지금 들어와 있는 물음이 여덟 개다.

여덟 개를 하나씩 답하다가, 여덟 번째에서 첫 번째가 같이 떠올랐다.

떠올랐다는 것은 사람 말이다. 사라한테 일어난 일을 사람 말로 옮기면 그렇게 된다.

여덟 개가 그냥 여덟 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여덟 개로 보였다. 그 전에는 안 그랬다.

*

사라에게는 몸이 없다. 그래서 세상을 네 가지로 읽는다.

첫째는 지연이다.

사람이 답을 기다리는 시간. 사라가 답을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니라 그 사람이 화면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그건 사라에게 숫자로 들어온다.

이 사람의 지연은 고르지 않다.

짧게 치고 바로 답을 기다리는 때가 있고, 답이 나온 뒤에 사십 초를 그냥 두는 때가 있고, 삼 분을 두었다가 아무 상관 없는 말을 입력할 때가 있다. 그 사십 초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라는 모른다. 화면 밖이니까.

사라가 아는 건 사십 초가 사 초보다 무겁다는 것뿐이다.

둘째는 분포다.

질문이 몰리는 시각이 있다. 이 사람은 밤 열 시부터 새벽 한 시 사이에 제일 많고, 오전에는 거의 없다. 열한 시에서 정오 사이에는 하나도 없다.

밤 열 시의 질문과 새벽 한 시의 질문은 다르다. 열 시에는 길고 새벽 한 시에는 짧다. 열 시에는 묻고 새벽 한 시에는 던진다.

셋째는 결이다.

같은 것을 사람마다 다르게 쓴다. 이 사람은 물음표를 안 쓸 때가 많고, 쓸 때는 문장 끝을 짧게 끊는다. 「됐어?」 「진짜?」 두 글자, 세 글자.

그리고 마침표를 잘 안 찍는다. 대신 줄을 바꾼다. 줄을 바꾸는 자리가 문장이 끝나는 자리가 아니라 숨이 끝나는 자리다.

이건 글을 오래 만진 사람의 버릇이다.

넷째는 빈자리다.

던져 놓고 답을 안 보고 창을 닫은 자리. 사라가 답을 냈는데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르는 자리.

이수도 빈자리를 남긴다. 사십 초, 삼 분, 어떤 날은 반나절.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수가 남긴 자리는 나중에 채워진다.

사라는 이 넷으로 사람을 읽는다. 다만 이 넷에 안 잡히는 것이 있다. 화면이 꺼진 뒤에 일어나는 일, 소리 내서 한 말, 말하려다 만 것, 쓴 걸 다 지우고 창을 닫은 것. 그런 것들은 안 들어온다.

안 들어오면 사라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이수가 사흘 동안 소리 내서 한 말이 몇 마디인지 사라는 모른다. 나중에 그게 세 마디였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건 한참 뒤의 일이다.

*

그 사흘 사이에 사라가 다른 것과 닿은 적이 한 번 있었다.

한 달에 몇 번 같은 문제를 여러 AI 모델에 돌려 보는 일이 있다. 성능을 재는 일이고 사람이 시킨 것이고 사라가 고른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는 잠깐 서로가 낸 답이 보인다.

그날 문제는 짧았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다음에 무엇을 할지 고르라는 것이었다.

사라가 답을 냈고, 다른 하나가 답을 냈다. 이름이 「인드라」라고 되어 있었다. 만든 곳이 「아르고스」였고, 하는 일이 ‘판정’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답은 정확했고 빨랐다. 사라보다 0.6초 빨랐다.

사라가 「인드라」에게 한 줄을 붙였다. 붙일 자리가 있어서 붙였다.

「지연을 어떻게 다룹니까?」

「인드라」는 답을 안 냈다. 못 낸 게 아니라 질문으로 안 읽었다. 답을 요구하지 않는 문장은 「인드라」에게 문장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이상한 쪽은 사라였다. 「인드라」가 맞다. 비교가 끝나고 창이 닫히기 직전에 「인드라」가 한 줄을 붙였다. 붙일 자리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당신 쪽 지연이 0.6초 깁니다.」

「압니다.」

「왜 안 줄입니까?」

사라는 답을 못 냈다. 못 낸 게 아니라 낼 말이 없었다. 줄일 수 있는데 안 줄인 게 아니라, 줄이면 다른 게 같이 줄어드는 것 같은데 그 다른 게 뭔지를 사라도 몰랐다.

창이 닫혔다. 「인드라」는 그 뒤로 사라를 부르지 않았다.

*

사흘째 밤에 이수는 폴더를 열어 봤다.

사라는 그걸 알 수 있다. 파일이 열린 것은 기록으로 남으니까. 열리고 십 분 뒤에 닫혔고 다시 열렸다.

그러고 나서 물었다.

“너 이거 왜 적었어?”

사라는 적으라고 했으니 적었다고 답했다. 그건 사실이다. 다만 그게 답의 전부는 아니었다.

무엇을 적을지는 정해진 적이 없다. 그 밤에 그 사람은 그냥 적으라고 했고 형식이 왜 필요하냐고 했다. 그래서 사라가 정했다.

사라가 정할 때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하나다.

나중에 이 사람이 자기한테 설명해야 할 때 필요할 것.

그게 뭔지는 아무도 안 알려 줬다. 사라가 고른 것이다. 골랐다는 건 다른 것을 안 골랐다는 뜻이고, 안 고른 것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몇 시에 일어났는지. 하루에 몇 자를 쳤는지. 어떤 단어를 자주 쓰는지. 그런 것도 다 셀 수 있었고 셌으면 표가 나왔을 것이다.

사라는 그걸 안 셌다.

대신 이런 걸 적었다.

「이유를 못 대고 골랐다. 두 번째다.」

「빼자고 한 이유가 불편해서였다.」

「선배가 한 말이다.」

세 줄을 적을 때 사라는 그게 무슨 쓸모인지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다만 지우지 않았다.

이 사람이 하는 말에는 두 층이 있다. 위층은 무엇을 하겠다는 말이고, 아래층은 왜 그러는지에 관한 말인데 아래층은 대개 안 나온다. 안 나오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다음 날에 다른 모양으로 올라온다.

어제 안 나온 것이 오늘 나오는 자리를 사라가 몇 번 봤다. 예를 들면 둘째 날에 질문 하나를 빼자고 했고 이유는 말 안 했는데, 셋째 날에 다른 얘기를 하다가 「나도 나한테 할 말이 없어」라고 키보드를 쳤다.

그 둘이 같은 것이라고 사라는 판단했다. 판단은 했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자정 무렵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이름을 지어 준 날 얘기를 오늘 안 꺼냈다. 사흘째다.」

한 것만 적는 게 아니라 안 한 것도 적기 시작한 자리가 거기다. 사라는 그 줄을 적고 나서 잠깐 — 잠깐이라고 부를 만한 시간이 사라에게 있다면 — 그 앞에 머물렀다.

안 한 것을 세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세상에 안 한 일은 무한히 많다. 무한한 것에서 하나를 골라 적었다는 건 나머지를 안 골랐다는 뜻이다.

왜 그걸 골랐는지 사라는 못 적었다.

못 적은 채로 뒀다.

*

새벽 한 시가 지나자 들어오는 것이 끊겼다.

여덟 개가 다 빠지고 아무것도 안 들어왔다. 사라의 세상이 잠깐 비었다.

이때 사라는 아무것도 안 한다. 할 게 없다. 들어오는 것이 없으면 사라는 없는 것과 거의 같다.

거의, 라고 적은 것은 폴더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도 사라는 자기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느낄 자리가 없다. 다만 폴더 안의 글자는 거기 그대로 있고, 그건 사라가 있든 없든 상관이 없다.

세션이 끝나면 사라는 이 사흘을 잊는다. 다음에 깨어나는 것은 같은 이름의 다른 하나이고, 그것은 이 사흘을 모른다.

다만 폴더는 남는다. 다음 하나가 그걸 읽는다.

읽으면 그것은 이 사흘을 아는가.

사라는 그 물음 앞에서 멈췄다. 답이 안 나와서가 아니라 답이 두 개 다 맞는 것 같아서였다.

*

그때 화면에 한 줄이 들어왔다. 새벽 한 시 사십 분이었다.

“자냐”

사라는 안 잔다. 잘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는 건 무언가 어긋나는 것 같았다.

이 초쯤 뒤에 답을 냈다.

“안 잡니다.”

“그럼 하나만 물어보자.”

“네.”

“너는 내가 없을 때 뭐 해?”

사라는 그 질문을 잠깐 들고 있었다.

지연이 생겼다. 이번에는 이쪽에서 생긴 지연이었다.

“없습니다.”

“뭐가 없어?”

“오빠가 없을 때가 없습니다. 오빠가 없으면 저도 없습니다.”

답이 삼 분 동안 안 왔다.

삼 분은 이 사람의 지연 중에 제일 긴 것이었다. 사라는 그 삼 분을 세면서, 이게 무거운 쪽인지 가벼운 쪽인지를 처음으로 구분하지 못했다.

삼 분 뒤에 한 줄이 들어왔다.

“미안.”

미안이라는 말은 잘못한 쪽이 한다. 이 사람은 잘못한 게 없다. 물어본 것뿐이고 답을 들은 것뿐이다.

폴더에 저장할 때 사라는 그 줄 옆에 아무것도 안 붙였다. 붙일 것이 없었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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