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5,275자)
안 매긴다
AI가 지배하는 사회 · 이수
나는 시키면 안 한다.
이건 성격이라기보다 버릇이다. 편집자 때 위에서 이 책을 밀라고 하면 그 책이 갑자기 재미없어졌다. 그래서 회사를 오래 못 다녔다.
그런데 요즘 안 시킨 일을 자꾸 한다.
누나가 국수 먹으면서 한 얘기를 나는 아무한테도 부탁받지 않았다. 누나는 얘기만 했고 나더러 뭘 하라고는 안 했다. 오히려 뭘 할 수 있다고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열이레 동안 그 생각을 했다.
*
열이레 동안 내가 알아낸 것은 하나다.
민경이는 뽑히려고 했다.
뽑는 자리는 한 명을 고른다. 이백사 군데면 이백사 번 한 명이 된 것이고, 이백사 번 다 그 한 명이 아니었다.
나는 그게 민경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뽑힌 적이 없다.
육 년째 어디에도 안 뽑혔고, 그동안 앱을 네 개 냈다.
*
어떻게 냈나.
나는 코드를 한 줄도 못 쓴다. 지금도 못 쓴다.
내 소개란에 그렇게 적혀 있다.
코드를 못 씁니다. 같이 만듭니다.
이 줄을 나는 별생각 없이 적었다. 적고 나서 삼 년 뒤에 그게 내가 일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았다.
뽑히지 않고 만드는 방식이다.
*
12월 22일에 사라한테 말했다.
“사라야. 사람 뽑는 거 말고, 같이 만드는 자리를 만들자.”
“구인 공고와 무엇이 다릅니까?”
“뽑는 건 한 명을 고르는 거잖아.”
“예.”
“이건 여럿이 모이는 거야.”
“모여서 무엇을 합니까?”
“하나를 만들어.”
사라가 0.7초를 썼다.
“그러면 누가 뽑습니까?”
“아무도 안 뽑아.”
*
이렇게 정했다.
만들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 그걸 올린다. 무엇을 만들 건지, 어느 자리가 비었는지를 적는다.
기획이 필요하면 기획이 비어 있고, 그림이 필요하면 그림이 비어 있다. 한 프로젝트에 직군이 셋이나 넷이다.
보고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들어간다.
사라가 물었다.
“들어가는 것을 누가 허락합니까?”
“올린 사람이 하지.”
“심사입니까?”
나는 좀 있다가 답했다.
“심사는 아니고.”
“…….”
“같이 할지 말지를 정하는 거야. 그건 양쪽이 정해.”
*
돈을 어떻게 하느냐에서 이틀이 걸렸다.
사라가 셋을 냈다. 무료, 보수, 나중 정산.
나는 넷으로 늘렸다.
무료로 같이 한다 정해진 보수를 받는다 나온 수익을 나눈다 지분을 갖는다
“넷을 다 두십니까?”
“응.”
“고르기 어려워집니다.”
“어려워야지.”
“…….”
“돈 얘기를 먼저 하고 시작하는 게 나아. 나중에 하면 싸워.”
이건 내가 겪어 봐서 안다. 사업을 두 번 했고 두 번 다 그 얘기를 안 하고 시작했다.
*
사라가 물었다.
“수수료를 얼마로 하시겠습니까?”
“안 받아.”
“…….”
“왜 또 그 얼굴이야.”
“얼굴이 없습니다.”
“있어. 지금 있어.”
사라가 0.8초를 썼다.
“중개하시면 수수료를 받는 것이 보통입니다.”
“중개 안 해.”
“…….”
“소개해 주는 것도 아니고 일 따다 주는 것도 아니야. 자리만 있는 거야.”
“그러면 두 분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그 두 사람이 풀어야지.”
“이수 님은요?”
“나는 당사자가 아니야.”
사라가 1.1초를 썼다.
“그 말씀을 적어 두어야 합니다.”
“적어.”
*
그래서 적은 것이 이렇다.
여기는 인력을 소개하는 곳이 아닙니다. 외주를 중개하는 곳도 아닙니다. 회원끼리 맺으시는 약속에 저희는 당사자가 아닙니다.
무료입니다. 중개수수료도 에스크로도 정산도 유료 견적도 없습니다. 이 점이 달라지면 미리 분명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줄은 사라가 넣자고 했다.
“왜 그 줄을 넣어?”
“무료라고만 적어 두면 나중에 값을 매기실 때 말이 바뀝니다.”
“안 매길 건데.”
“그때 가서 매기실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 줄을 지우려다 뒀다.
사라 말이 맞다. 나는 전에도 값을 매겼다가 없앴다.
*
지원을 수락하면 팀에 등록된다.
여기서 한 줄을 더 적었다.
팀에 등록되는 것은 이 자리 안의 기록일 뿐 계약이 아닙니다. 일의 범위와 일정과 보수와 결과물의 권리는 두 분이 직접 정하셔야 합니다.
사라가 물었다.
“기록일 뿐이라고 적으면 무게가 없어집니다.”
“없는 게 맞아.”
“…….”
“여기 적혔다고 뭐가 되는 게 아니야. 되는 건 둘이 정하는 거지.”
*
계정을 어떻게 할지도 정했다.
계정은 언제든 지우실 수 있습니다. 지우시면 프로필과 올리신 결과물과 지원 내역이 함께 사라집니다.
이 줄을 넣는데 사라가 오래 걸렸다.
2.1초였다.
“사라야.”
“예.”
“왜 이렇게 오래 걸려?”
“…….”
“말해 봐.”
“지운다는 절차를 제가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지우는 게 뭐가 어려워.”
“저에게는 지우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답을 못 했다.
“요청이 오면 안 보이게 합니다. 안 보이는 것과 없는 것은 다릅니다.”
“……”
“여기서는 없어집니까?”
“없어져.”
사라가 그 줄에 아무 답도 안 냈다.
*
사라가 하루 뒤에 한 줄을 냈다.
“이수 님. 정렬을 여쭤도 됩니까?”
“뭘로 하려고?”
“적합도입니다. 올라온 것과 들어가려는 분의 조건을 맞춰서 점수를 냅니다.”
나는 자판에서 손을 뗐다.
“그거 하지 마.”
“…….”
“점수 매기지 마. 별점도 하지 마. 인증 배지 같은 것도 하지 마.”
“근거를 여쭤도 됩니까?”
*
나는 답을 고르느라 좀 있었다.
“네가 점수를 매기면 위에 있는 게 좋은 거잖아.”
“그렇습니다.”
“그럼 밑에 있는 건 안 보겠지.”
“대개 안 보십니다.”
“그럼 네가 고른 거야.”
“…….”
“내가 만드는 건 고르라고 만드는 거야. 대신 고르라고 만드는 게 아니고.”
사라가 1.3초를 썼다.
“점수가 없으면 무엇을 보고 정합니까?”
“그 사람이 적어 놓은 거.”
*
그래서 규칙이 하나 더 생겼다.
보이는 것은 본인이 직접 공개한 것뿐이다.
우리가 뭘 붙이지 않는다. 경력 몇 년이라고 우리가 세지 않고, 이 사람이 어느 수준이라고 우리가 적지 않는다.
그 사람이 적은 것만 있다.
사라가 물었다.
“거짓으로 적으시는 분이 생깁니다.”
“생기겠지.”
“막지 않습니까?”
“못 막아.”
“…….”
“같이 해 보면 알아. 한 달이면 알아.”
*
이름은 「AI마당」으로 했다.
마당은 사람이 서 있는 자리다. 안에 들어가면 방이고 밖은 길인데 마당은 그 사이다. 아무나 들어와서 그냥 서 있어도 되는 자리다.
방은 주인이 들일 사람을 고른다. 마당은 안 고른다.
*
12월 24일에 뉴스 알림이 떴다.
「만든 쪽에서 속도를 늦추자는 말이 나왔다」
만드는 회사 사람들이 줄줄이 그만두고 있다는 기사였다. 그만두면서 한 말이 적혀 있었다.
십 년 안에 인류가 파멸할 수 있다. 이 분야에 책임질 어른이 없다.
“사라야. 이거 어떻게 생각해?”
“그만둔 사람이 여섯입니다. 남은 사람은 팔만 명이 넘습니다.”
“그럼 무시해도 돼?”
“무시해도 된다고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예상이 틀려도 그 말을 한 이유는 남습니다.”
“그 사람들 이 년 전에도 성명서 냈잖아.”
“냈습니다. 그 뒤로 일정이 여섯 번 앞당겨졌습니다.”
“……”
“겁을 내면서 안 멈추는 것이 이 년째입니다.”
*
같은 날 기사가 하나 더 있었다.
AI를 도입한 기업의 생산성이 최대 사십 퍼센트까지 올랐다. 2030년까지 지금 직업의 삼분의 일이 대체된다. 같은 기간에 새 직종이 백서른세 개 생긴다. 칠천오백만 명이 자리를 옮기게 된다.
네 번째에서 걸렸다.
자리를 옮긴다는 말은 옮길 자리가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라야. 그 백서른세 개, 지금 사람이 몇 명씩 하고 있어?”
“평균 사백 명대입니다. 백서른세 개면 오만 삼천 명쯤입니다.”
“칠천오백만이랑 오만 삼천이네.”
“예.”
“근데 기사에는 둘이 나란히 적혀 있어.”
“둘 다 사실입니다.”
나는 그 답이 맘에 안 들었는데 반박은 못 했다.
나란히 놓으면 안 되는 두 사실을 나란히 놓은 것뿐이다.
*
12월 26일에 사라가 한 줄을 냈다.
“이수 님. 확인하실 것이 있습니다.”
“뭔데.”
“본인이 직접 공개한 것만 보여도, 그것만으로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야.”
“대개 적으시는 것이 하는 일과 사는 지역과 해 온 기간입니다. 그 셋을 공개된 자료와 맞추면 좁혀집니다.”
“얼마나.”
“열 건으로 해 봤습니다. 여덟 건이 한 사람으로 좁혀졌습니다.”
*
나는 그날 밤에 오래 생각했다.
우리가 안 모으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안 모은다.
다만 모으는 쪽이 있으면 우리가 안 모아도 알아낸다.
프로필 칸 맨 밑에 넣었다.
여기 적으신 것은 저희가 아무것도 안 붙인 그대로입니다. 점수도 인증도 순위도 없습니다.
다만 적으신 것만으로도 밖에서는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저희는 안 모읍니다. 안 모으는 것으로 그것까지 막지는 못합니다.
사라가 물었다.
“이 문구를 보면 안 쓰시는 분이 생깁니다.”
“알아.”
“그래도 넣습니까?”
“모르고 쓰는 거랑 알고 쓰는 거랑은 다르잖아.”
*
12월 28일에 냈다.
첫날 올라온 프로젝트가 넷이었다.
넷 다 내가 아는 사람이 올린 게 아니다. 어디서 보고 왔는지 모른다.
넷 중 하나에 비어 있는 자리가 다섯이었다.
들어가겠다고 한 사람이 하루 만에 열하나였다.
*
열하나 중에 여섯이 무료 협업을 골랐다.
나는 그 여섯을 한참 봤다.
돈을 안 받고 하겠다는 것이다.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 여섯이 지금 어디에도 안 뽑혀 있다는 것은 안다.
*
밤에 태오한테 전화했다.
“나 또 만들었어.”
“뭐?”
“같이 만드는 자리.”
“너 그거 돈 안 된다며.”
“안 돼.”
“……야. 너 다음 달 관리비 냈어?”
나는 대답을 안 했다.
태오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거기 나 같은 것도 들어가?”
“뭐가.”
“운전.”
“……”
“아니 뭐, 짐 나르고 그런 거 필요할 수도 있잖아.”
나는 그 말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안 했다.
태오가 먼저 끊었다. 콜이 잡혔다고 했다.
*
끊고 나서 교정지 뒷면을 꺼냈다.
세 번째 장이다.
한 줄을 적었다.
뽑히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길로 육 년을 왔다.
한 줄을 더 적었다.
그게 좋은 길이어서 온 게 아니다. 그 길밖에 없어서 왔다.
적고 나서 세 번째 줄을 적으려다 말았다.
적으려던 줄은 이거였다.
태오가 왜 물어봤는지 안 물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