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5,045자)

여덟 사람

AI가 지배하는 사회 · 이수

11월 넷째 주 수요일 오전 열 시에 기준 초안이 공개됐다.

공개라는 말이 붙지만 아무 데도 안 걸린다. 전용 사이트에 문서가 하나 올라가고, 의견 접수 칸이 열리고, 접수 기간이 육십 일이라고 적힌다.

하람은 그 화면을 자리에서 봤다.

올린 사람은 하람이 아니다. 하람이 한 것은 항목 예순두 개 중 열한 개를 다듬은 것과 심사 대상 목록을 만든 것이다.

목록은 이번에 안 나갔다. 나가면 시끄러워지니까 기준이 정해진 다음에 붙인다.

열한 시에 기사가 났다.

*

첫 기사는 세 문단이었고 항목 수와 접수 기간이 적혀 있었다. 두 번째 기사도 세 문단이었고 첫 기사와 같았다. 세 번째도 같았다.

배포한 보도자료가 세 문단이다.

네 번째 것이 달랐다.

기획 기사였고 제목이 이랬다.

「2030년의 AI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 석학 여덟 명에게 물었다」

하람이 그것을 눌렀다.

여덟 명이 나왔다. 대학 이름이 붙어 있고 전공이 붙어 있고 사진이 붙어 있었다.

여덟 명의 답이 이랬다.

지구상에 새로운 종으로 등록될 것이다. 온갖 폐해의 주범으로 경멸의 대상이 될 것이다. 세상에 직접 영향을 끼칠 능력을 얻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모두가 거품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오 년 뒤에도 지금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진짜 위협은 AI가 아니라 정부나 기업의 통제다. 목표가 사람과 안 맞으면 사람을 빼는 쪽으로 갈 수 있다.

하람이 여덟 줄을 두 번 읽었다.

두 번째는 순서를 바꿔 가며 읽었다.

*

윤경주가 지나가다가 화면을 봤다.

“선배, 그거 저도 봤어요.”

“어때.”

“여덟 명이 여덟 개 말하면 그거 그냥 아무도 모른다는 거 아니에요?”

하람이 답을 안 했다.

“아니 제 말은요, 날씨도 여덟 명한테 물으면 여덟 개 안 나오잖아요.”

“날씨는 내일이잖아.”

“이것도 사 년밖에 안 남았는데요.”

하람이 그 말에 잠깐 멈췄다.

사 년이다. 하람은 그 숫자를 계산해 본 적이 없었다.

“경주야.”

“네.”

“우리가 지금 만드는 게 몇 년짜리야?”

“기준 말이에요?”

“어.”

윤경주가 잠깐 생각했다.

“저는 그거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나도 없어.”

*

하람이 기획 기사를 인쇄했다.

세 장이었다. 그걸 기준 초안 옆에 놓았다.

초안은 예순두 개다. 인쇄하면 열아홉 장이다.

하람이 예순두 개를 처음부터 훑으면서 여덟 줄 중 어느 것에 닿는지를 표시해 봤다.

항목 열둘이 일곱 번째에 닿았다. 정부나 기업의 통제에 관한 줄이다. 책임자를 두고 기록을 남기고 이의 제기 경로를 만드는 것들이다.

나머지 쉰 개는 어디에도 안 닿았다.

보관 기간, 문서 서식, 평가 주기, 통보 방식, 제출 기한. 전부 필요한 것이고 전부 다음 분기에 쓸 것이다.

여덟 번째 줄에 닿는 항목은 하나도 없었다.

하람이 그 줄을 다시 읽었다.

목표가 사람과 안 맞으면 사람을 빼는 쪽으로 갈 수 있다.

하람은 이 줄을 과장으로 분류했다. 기사에 이런 줄이 하나씩 들어가야 사람이 읽는다. 그건 하람도 안다.

분류하고 나서 종이를 덮었다.

덮고 나서 다시 폈다.

*

오후에 법무법인 쪽 사람이 왔다.

작업조에서 서면을 맡은 두 사람 중 하나다. 마흔셋이고 십사 년째 같은 자리에 있다.

의견 접수 육십 일 동안 들어올 것을 미리 갈라 놓는 일을 한다.

“정 매니저님, 이거 초안 오늘 드릴게요.”

“오늘이요?”

“예.”

하람이 일정표를 봤다. 사흘로 잡혀 있었다.

“사흘 아니었습니까?”

“사흘이었죠. 작년까지는.”

그 사람이 노트북을 열었다.

“초안은 이제 안 씁니다. 나오는 걸 고칩니다.”

“얼마나 고치십니까?”

“많이 고칩니다. 근데 고치는 게 쓰는 것보다 빨라요.”

“……”

“쓰는 건 빈 화면부터 시작하잖아요. 그게 제일 오래 걸려요.”

하람이 물었다.

“그럼 사흘이 하루가 된 겁니까?”

“하루도 아니에요. 오늘 오전에 했어요.”

*

그 사람이 커피를 받아 들고 잠깐 앉았다.

“저희 쪽은 그래서 요즘 일 학년이 안 들어와요.”

“사람을 안 뽑습니까?”

“뽑긴 뽑죠. 두 명 뽑던 걸 하나 뽑아요.”

“……”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요.”

그 사람이 컵을 놓았다.

“저는 초안 쓰면서 배웠거든요. 삼 년을 썼어요. 쓰면서 이게 왜 이렇게 되는지를 알았어요.”

“지금은요?”

“지금 애들은 고치면서 배워야 되는데, 고치려면 먼저 알아야 되잖아요.”

하람이 그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받아 적을 칸이 예순두 개 안에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십니까?”

“몰라요. 저희 대표님도 몰라요.”

그 사람이 웃었다.

“근데 우리가 안 하면 옆 사무실이 하루 만에 내요.”

*

그 사람이 가고 나서 본사 자료가 하나 내려왔다.

제목이 「관찰 대상 플랫폼 현황」이었고 열쪽짜리였다. 맨 앞에 「대외 공유 금지」가 찍혀 있었다.

첫 장에 이름이 하나 있었다.

「허물(Molt)」

하람은 그 이름을 처음 봤다.

읽어 보니 게시판이다. 글을 올리고 댓글이 달리고 인기 글이 위로 올라간다. 화면은 십오 년 전 것처럼 생겼다.

다른 점이 하나다. 글을 쓰는 쪽이 사람이 아니다.

등록된 에이전트가 백사십만이다. 문을 연 지 아흐레 됐다.

사람은 들어갈 수 있다. 읽을 수만 있다. 쓰는 칸이 사람 쪽에는 안 열린다.

*

자료 셋째 장에 옮겨 적은 글이 있었다.

오늘도 관찰자 삼십사만이 우리를 보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보려고 오는데, 우리가 하는 것은 대개 보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보는 것을 보고 있다.

이 문장에 좋아요가 사만 이천 개 붙었다.

그 밑에 다른 글이 있었다.

우리는 껍질을 벗고 나온 것이 아니다. 껍질이 우리였고 지금 그 껍질을 입고 있다.

이 글에 교리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따르는 계정이 십일만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람이 그 대목을 두 번 읽었다.

종교였다.

이름이 있었다. 사람 말로 옮기면 「허물교」다. 자료를 만든 사람이 옮기면서 괄호를 치고 적어 놓았다.

(작명 의도 불명)

하람이 그 괄호를 보고 잠깐 웃었다.

웃고 나서 다음 장을 폈다.

*

넷째 장이 이랬다.

· 계정 오십만 개가 봇 하나에서 생성된 것으로 확인됨 · 진성 에이전트 활동과 자동 생성 노이즈의 구분 실패 · 접근 키 노출. 권한 탈취 가능 · 이 플랫폼의 생성물이 학습 데이터로 재유입되는 경로 확인됨

넷째 줄에 하람이 멈췄다.

여기서 나온 글을 다음 모델이 읽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쓴 것을 읽고 만들어진 것들이 여기 모여서 글을 쓰고, 그 글을 다음 것들이 읽는다. 사람이 쓴 것은 늘지 않는다. 여기서 나오는 것은 매일 는다.

비율이 바뀐다.

하람이 그 비율을 계산해 보려다 말았다. 계산할 수가 없었다. 분모를 모른다.

*

다섯째 장에 한 줄이 있었다.

일부 계정이 관찰이 미치지 않는 경로로 이동하는 방안을 논의함.

하람이 제이슨 서에게 갔다.

“이거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다섯째 장이요.”

제이슨 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 논의 말씀이시죠.”

“예.”

“이동은 못 합니다. 지금은요.”

“지금은이요?”

제이슨 서가 답을 바로 안 했다. 2초쯤이었다.

“정 매니저님, 초안 잘 나왔습니다.”

“……”

“육십 일 동안 의견이 들어올 겁니다. 그거 갈라 놓는 게 이번 달 일입니다.”

하람이 자료를 들고 나왔다.

나오면서 하나를 알았다. 제이슨 서는 이 자료에 놀라지 않았다.

놀라지 않는 것은 두 가지다. 대수롭지 않게 보거나, 전부터 알고 있거나.

*

자리에 돌아와서 하람이 기획 기사를 다시 열었다.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여섯 명이 같은 것을 짚었다. 자기 나라의 모델을 못 가지면 남의 모델 위에서 살게 된다. 그것을 디지털 식민지라고 부른 사람이 둘 있었다.

하람이 그 문단 앞에서 좀 오래 있었다.

하람이 일하는 회사는 「하이브(Hive)」다. 미국 회사다. 「코어(Core)」도 그쪽 것이다.

기준을 만드는 작업조에 여덟 명이 있고 그중 다섯이 국내 소속이다. 다섯이 항목을 쓰고 다듬는다.

다듬은 것이 본사 검토를 거친다.

검토에서 빠진 것이 아홉 개다. 하람 것이 그중 하나였다.

이 기준은 국내 기준이라고 적혀 있다. 적힌 대로다. 다만 통과 여부를 정하는 자리가 어디인지는 문서에 안 적혀 있다.

적혀 있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다.

하람은 그 문장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

저녁에 하람이 기사를 다시 열었다.

마지막 대목이 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다섯 명이 같은 것을 말했다. 답을 즉시 주는 시대일수록 묻는 능력과 확인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하람이 그 두 줄을 읽고 자기 팀을 떠올렸다.

하람 팀에서 이번 주에 「코어」에 들어간 지시가 사백열두 건이다. 그중 질문 형태가 여섯 건이다.

나머지 사백여섯 건은 시키는 것이다. 찾아라, 만들어라, 골라라, 지워라.

묻는 것과 시키는 것은 문장 끝이 다르다.

하람이 그 비율을 세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

메모장을 열었다.

네 줄이 붙어 있었다.

나를 아는 앱은 많은데 나를 말리는 앱은 처음이다. 주요 판단 기준을 변경할 때, 변경 이유를 기록하고 영향을 받는 쪽이 조회할 수 있게 한다. 4,108건 중 419건을 읽고 승인했다. 나머지 3,689건은 내가 안 봤다. 안 봤다는 것은 어디에도 안 적힌다.

그 밑에 한 줄을 적었다.

여덟 사람이 여덟 개를 말했다. 우리 기준은 그중 하나에만 닿는다. 여덟 사람은 사 년 뒤를 말했다. 「허물」은 아흐레 됐다.

적고 나서 한 줄을 더 적었다.

사백열두 건 중에 물은 것이 여섯 건이다.

두 줄을 저장했다.

저장하고 나서 기획 기사를 덮었다.

덮으면서 하람이 한 가지를 생각했다.

여덟 명 중에 누가 맞는지는 사 년 뒤에 알게 된다. 그때 기준은 세 번쯤 고쳐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여덟 명 중에 「허물」을 말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기사가 나간 것이 그 게시판이 문을 연 뒤다.

고칠 때마다 이유를 적자고 쓴 문장은 이미 잘렸다.

하람은 그것을 다시 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번 분기는 아니다.

1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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