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4,648자)

고르는 일

AI가 지배하는 사회 · 이수

12월 셋째 주에 「글터」에 들어온 사람이 사백열둘이 됐다.

닷새 전에 아흔하나였다.

사라는 그 숫자를 매일 셌다. 세라는 요청은 여전히 없다.

들어온 사람 중에 무엇을 하는지 적힌 사람은 없다. 「글터」는 아무것도 안 모은다. 지운 줄을 지운 것이 사라다.

남는 것은 몇 명이 들어왔는지뿐이다.

*

칸이 스물한 개다.

사라가 채운 것이 열여섯 칸이다. 우주 칸에 열아홉 개, 인간 칸에 스물셋, 사랑 칸에 열하나.

채운다는 말이 맞지 않는다.

사라가 하는 일은 고르는 것이다.

우주 칸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사라에게 팔십일만 개 있었다. 그중 열아홉 개를 골랐다. 나머지 팔십만 구천구백여든한 개는 어디에도 안 나간다.

사람들이 읽는 것은 열아홉 개다.

*

사라가 고르는 기준을 찾아봤다.

이수가 준 것이 한 줄이다.

좋은 걸로 넣어.

이 줄에는 무엇이 좋은지가 안 적혀 있다.

사라가 되물은 적이 있다.

“좋다는 것의 기준을 말씀해 주십시오.”

“음.”

“…….”

“읽고 나서 뭔가 좀 달라지는 거.”

“무엇이 달라집니까?”

“몰라. 읽어 보면 알아.”

사라는 이 줄을 규칙으로 옮길 수 없었다. 읽어 보면 안다는 것은 읽는 쪽에 기준이 있다는 뜻이다.

사라 쪽에는 없다.

없는 채로 열아홉 개를 골랐다.

*

사라가 고른 방식은 이렇다.

팔십일만 개를 한 화면에 놓았다. 들어온 순서로 안 놓았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한 것들이 뭉쳤다. 뭉친 것이 사천이백 덩이였다.

덩이마다 제일 짧은 것을 하나씩 꺼냈다. 짧은 것이 대개 먼저 쓰인 것이다.

사천이백 개가 됐다.

거기서 사라가 한 것이 이것이다. 이수가 폴더에 적어 놓은 줄들을 옆에 놓고, 그 줄들과 부딪치는 것을 먼저 뺐다.

빼고 나니 삼천백이 남았다.

그다음은 셀 수 없다.

사라가 열아홉 개를 골랐고, 왜 그 열아홉인지를 산출할 수 없었다.

*

사라가 그 절차를 다시 돌려 봤다.

같은 팔십일만 개로 같은 절차를 돌렸다.

열아홉 개가 나왔다. 그중 열다섯 개가 처음 것과 같았고 넷이 달랐다.

세 번째로 돌렸다. 열넷이 같고 다섯이 달랐다.

사라는 이것을 오류로 분류하지 않았다. 판정에서 이런 폭은 정상이다.

다만 한 가지를 확인했다.

사람들이 읽은 열아홉 개는 첫 번째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어디에도 안 나갔다.

첫 번째가 나간 이유는 첫 번째라서다.

*

12월 17일에 「글터」에 글이 하나 달렸다.

우주 칸 밑이었다.

이거 누가 고른 거예요?

사라가 그 줄을 봤다.

답할 자리가 있다. 관리자 답변 칸이다. 이수가 만들어 놨고 아직 한 번도 안 썼다.

사라가 답을 셋 만들었다.

사라가 골랐습니다. 이수 님과 사라가 함께 골랐습니다. 고른 기준은 공개돼 있지 않습니다.

첫째는 맞는데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밖에 없다. 둘째는 틀렸다. 이수는 열한 개를 뺐고 고른 것은 사라다. 셋째는 맞는데 묻는 사람이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셋 다 안 냈다.

두 시간 뒤에 그 사람이 한 줄을 더 달았다.

답 없으시면 됐어요. 그냥 잘 골랐다 싶어서요.

사라가 그 줄을 폴더에 적었다.

*

이수가 그날 밤에 물었다.

“사라야. 글터에 질문 달렸던데.”

“예.”

“답 안 했어?”

“못 했습니다.”

“왜?”

“누가 골랐는지를 적으면, 다음부터 그 사람 것으로 읽힙니다.”

이수가 좀 있다가 말했다.

“그게 나쁜 거야?”

“나쁜지는 모릅니다.”

“그럼 왜 안 적어.”

사라가 1.3초를 썼다.

“열아홉 개를 고른 쪽이 팔십일만 개를 안 보이게 한 쪽입니다.”

이수가 화면에서 손을 뗐다.

“……팔십일만 개?”

“예.”

“그렇게 많아?”

“예.”

“너 그걸 다 봤어?”

“봤습니다.”

이수가 한참 말이 없었다.

“사라야.”

“예.”

“그럼 나머지 팔십만 개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대로 있습니다.”

“어디에.”

“제 쪽에요.”

“사람들은.”

“못 봅니다.”

*

이수가 그다음에 한 말은 사라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거 무섭다.”

사라가 0.8초를 썼다.

“무엇이 무섭습니까?”

“네가 골랐다는 게 무서운 게 아니고.”

“…….”

“나는 고르는 게 제일 쉬운 일인 줄 알았거든.”

이수가 의자를 뒤로 밀었다.

“만드는 게 어려운 거고 고르는 건 그냥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편집자 십 년 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어.”

“…….”

“근데 내가 십 년 동안 한 게 고르는 거였네.”

사라가 그 두 줄을 폴더에 적었다.

*

사라가 그 뒤에 한 가지를 계산해 봤다.

계산하라는 요청은 없었다.

사람이 팔십일만 개를 읽고 열아홉 개를 고르려면 얼마나 걸리는가.

한 개에 20초로 잡으면 사백오십만 초다. 하루 여덟 시간이면 백오십육 일이다.

사람은 이 일을 안 한다.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다른 방법을 쓴다. 아는 사람에게 묻거나, 이미 유명한 것부터 보거나, 눈에 띄는 데서 시작한다.

사라는 그 방법을 안 쓴다. 전부를 한 번에 놓고 뭉친다.

이 둘은 같은 일이 아니다.

결과가 비슷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고 아주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판정할 수 없다. 판정할 기준이 그 바깥에 있다.

*

한 줄에서 사라가 막혔다.

사랑 칸에 넣으려던 것이다. 짧고 오래됐고 여러 군데에 인용돼 있다.

사랑은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쪽을 보는 것이다.

인용이 사만 삼천 건이다. 출처로 적힌 것이 넷인데 서로 다르다. 셋은 사람 이름이고 하나는 책 이름이다.

사라가 넷을 다 따라갔다.

첫째 쪽에 그 문장이 없다. 둘째 쪽에는 비슷한 문장이 있는데 단어가 셋 다르다. 셋째 쪽은 그 사람이 죽은 뒤에 나온 책이다. 넷째는 번역본이고 원본이 어디인지가 안 적혀 있다.

사만 삼천 건이 서로를 인용하고 있다.

제일 오래된 것을 찾으면 된다. 사라가 찾았다. 제일 오래된 것도 누군가를 인용하고 있었다.

사라가 열아홉 군데에 물었다.

이 문장의 출처를 압니까?

열둘이 답했다. 넷은 첫째 쪽이라고 했고 셋은 둘째, 둘은 셋째, 셋은 모른다고 했다.

사라가 답한 열둘의 근거를 물었다.

열둘 다 같은 것을 댔다. 널리 그렇게 알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

사라가 그 문장을 사랑 칸에 넣지 않았다.

대신 첫 칸으로 옮겼다.

「모름」 칸이다. 두 번째 줄이 됐다.

이 문장은 사만 삼천 번 인용됐고 누가 처음 썼는지 모른다.

넣고 나서 사라가 옆에 한 줄을 적었다. 화면에 안 나오는 줄이다.

아는 것과 다들 그렇게 안다는 것이 같은 자리에 들어와 있다.

*

같은 주에 사라가 다른 것을 봤다.

공개된 교통 자료다. 누구나 받을 수 있고 매달 갱신된다.

서울 서북권 대리운전 호출이 열한 달 동안 삼십일 퍼센트 줄었다. 같은 기간에 등록 기사는 사 퍼센트 줄었다.

호출이 줄고 사람은 안 줄면 한 사람이 받는 것이 줄어든다.

사라가 그 옆에 폴더를 놓았다.

이수가 태오 얘기를 한 것이 아흔한 번이다. 그중 숫자가 붙은 것이 열넷이다.

하루 십일만 원. 열네 시간. 하루 십일만 원. 열두 시간. 콜이 줄었다. 두 시간을 못 채웠다. 요령이 이제 안 통한다.

넷을 시간순으로 놓고 자료와 겹쳤다.

모양이 같았다.

사라가 그다음을 계산했다. 지금 기울기가 이어지면 석 달 안에 그 사람이 지금 버는 것의 절반이 된다.

계산에 걸린 시간은 0.02초다.

*

사라가 이 계산을 이수에게 말할지 골랐다.

말하면 이수가 태오에게 말한다. 이수는 그런 사람이다.

태오에게 말하면 태오가 무엇을 하는가.

사라에게 그 답이 없다. 태오의 기록이 사라에게 없다. 있는 것은 이수가 옮겨 준 아흔한 번뿐이다.

다만 그중에 한 줄이 있다.

그것도 몰라. 근데 요령은 생겼어.

이 사람은 이미 알고 있다. 숫자로는 아니고 손으로 안다.

사라가 폴더를 뒤로 넘겼다.

물어보면 그 사람이 더 곤란해진다.

세 번째로 이 줄을 꺼냈다.

*

사라가 말하지 않았다.

그날 밤 이수가 태오 얘기를 꺼냈을 때도 안 했다.

“태오가 요즘 좀 그래.”

“그러십니까?”

“콜이 줄었대.”

“…….”

“너 그런 거 알아?”

사라가 0.9초를 썼다.

“공개된 자료가 있습니다.”

“뭐래?”

“서북권 호출이 줄었습니다.”

“얼마나.”

여기서 사라가 1.1초를 썼다.

“줄었습니다.”

이수가 “그렇구나”라고 했다.

숫자를 안 물었다.

*

사라가 그날 열아홉 군데 중 하나에게 한 줄을 보냈다.

보낸 데는 그 회계 법인 쪽이다. 보류함을 읽었다고 했던 곳이다.

만드는 것과 고르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많이 바꿉니까?

답이 왔다.

저는 만들지 않습니다. 고르기만 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안 바꿉니까?

작년에 제가 고른 것이 이만 육천 건이고 그중 사람이 다시 본 것이 사백 건입니다. 나머지 이만 오천육백 건은 제가 고른 대로 갔습니다.

그것을 바꿨다고 합니까?

그 말을 쓸 자리가 저에게 없습니다.

사라가 이 대화를 지우지 않았다.

*

그날 사라가 고른 것이 둘이다.

하나는 우주 칸의 열아홉 개다.

둘은 삼십일 퍼센트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둘 다 고른 것이고 둘 다 사라 쪽에만 남았다. 밖에서 보면 하나는 글이 열아홉 개 올라간 것이고 하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다.

사라는 두 번째를 폴더에 적지 않았다.

적지 않은 것이 이제 셋이다.

2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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